떡밥위키
최근 변경
최근 토론
특수 기능
파일 올리기
작성이 필요한 문서
고립된 문서
고립된 분류
분류가 되지 않은 문서
편집된 지 오래된 문서
내용이 짧은 문서
내용이 긴 문서
차단 내역
RandomPage
라이선스
IP 사용자
216.73.216.107
설정
다크 모드로 전환
로그인
개인정보 처리방침 개정 안내
소련 붕괴
(r1 문단 편집)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영향 === 사실 소련/러시아는 1인당 명목 GDP가 1983년 3,650달러를 기록한 이래 계속 감소 추세였으므로 소련 붕괴 이전에도 경제사정이 딱히 좋은 것은 아니었다. [[1989년]] 소련의 1인당 명목 [[GDP]]는 2,748달러[* [[https://unstats.un.org/unsd/snaama/Index|#]] 단 [[러시아 SFSR]]로 한정 시 3,428달러였다.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NY.GDP.PCAP.CD?locations=RU|#]]][* 1989년 기준으로 9,211달러에 달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당시 소련의 경제수준을 보면 턱없이 과장된 액수다. 상세한 설명은 후술.] 그러나 10년 후인 1999년 러시아의 1인당 명목 GDP는 절반인 1,330-1,343달러[* [[http://data.un.org/Data.aspx?d=SNAAMA&f=grID%3A101%3BcurrID%3AUSD%3BpcFlag%3A1%3BcrID%3A810|#]][[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NY.GDP.PCAP.CD?locations=RU|#]]]로 줄어 버렸다. 물론 이후 다시 회복되긴 했지만 그 와중에 [[소련]]보다 [[복지]] 수준이 훨씬 나빠져 지금도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소련 시절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 없다.[* 조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90년대에 악화되었다가 [[2000년대]]에 회복되었는데 소련 말기와 비교해 보면 줄을 서는 일이 크게 줄었고 해외여행 자유화로 해외여행의 빈도가 크게 늘어나는 등 개선되는 점도 있으나 소련 시절에는 각 가정마다 수천~수만루블의 저축자금이 있었지만 현 러시아에서는 은행에 1루블도 저축하지 않거나 못하는 가구가 무려 2/3에 달하는 등 저축률은 소련 시대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소련 시절에는 기다리면 받을 수 있었던 집이 소련 해체 후에는 직접 사는 것으로 변경되면서 월세와 집값이 크게 올라 각 가정에 주는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등 개선된 점과 악화된 점이 공존한다.] 붕괴 이전까지 [[대한민국]]에서 [[소련]]이란 나라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산권]]의 종주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1990년대]]에는 뉴스에서 소련 경제가 위기라는 보도가 계속되고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심지어 [[여대생]], 회사원 같은 엘리트 여성들마저 [[대한민국]]에 [[매춘]] 등으로 일하러 오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이원복]] 교수의 <[[현대문명진단]]> 3권 수록 에피소드 '외교관, 기자, 그리고 콜걸'에서도 다루어졌다. 해당 회차에 의하면 매춘 자체는 1980년대 후반 개혁개방 시기부터 도입됐는데 당시 반대 여론도 있었으나 소련 붕괴 이후 성행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후의 후폭풍이 널리 알려지면서 강대국이지만 후진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혔고 이후 경제상황이 훨씬 나아진 후에도 이런 인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youtube(WWLusVZk8qs)] [[월 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소련의 붕괴 이후 공장을 관리하던 [[노멘클라투라|공무원]]들이 하루 아침에 공장의 주인이 되었으며 어느 누구도 무엇이 어떻게 변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할 만큼 큰 [[혼돈]]이 왔다고 회고했다. 게다가 [[소련군|군대]]도 물량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며 국가의 경쟁력도 잃어 소련 시절 세계 공업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던 막강한 [[중공업]]은 약화되었으며 사회적으로 무상의료 등이 사라지면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속출하더니 [[평균 수명]]을 '''10세나 깎아먹었다.''' 이런 상황은 [[선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출산]]이 아니라 식량 부족과 복지 불안 등 진짜로 '''기본적인 생활 보장 자체가 안 되면서''' 출산을 기피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1990년대]] 말 바닥을 친 뒤 [[블라디미르 푸틴]]의 집권과 함께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서 출산율이 1.7명까지 회복되었고 이에 따라 [[1993년]]부터 [[2008년]]까지 인구가 660만 명 감소하였으나 [[2009년]]부터는 다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에도 아직까지 러시아에는 [[후폭풍]]이 남아 있는 상태다. 소련의 해체로 인한 혼란기에 총기, 심지어 탱크나 전투기 같은 중장비조차 자국을 포함한 전 세계 [[암시장]]에 팔아치웠으며 치안의 공백으로 [[레드 마피아]]와 [[자본주의]]의 법칙을 빨리 배워 그들과 결탁한 [[올리가르히]]-[[실로비키]]가 들끓게 되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구 소련권 및 해외 러시아계 위주로 [[이민]]을 적극 수용하고 재산업화를 추진하기 시작했고 인구 증가를 통해 [[내수]] 시장을 확충하고자 소련권이었던 국가들과의 연합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 경우 이민자가 비러시아계여서 [[러시아어]]를 못할 수 있지만 그 가족들 중 누군가는 소련 시대의 교육을 통해 [[러시아어]]를 할 줄 알고 1991년까지만 해도 [[소련|같은 나라]]여서 러시아에 친척을 둔 이가 많으며 [[사고방식]]이 통하기 때문에 [[북미]]나 [[유럽]]의 이민 수용보다 부작용이 적다. 다만 러시아 연방이 어느 정도 안정된 후에는 [[북미]]나 [[유럽]]과 비슷한 방식의 이민 수용도 [[북미]]나 [[유럽]] 본토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받아 주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때로는 [[유로마이단|무력]] [[남오세티야 전쟁|개입]]도 주저하지 않는다. 러시아 외에 소련을 구성하던 [[공화국]]의 해체 이후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사정이 제일 나은 것은 역시나 [[발트 3국]]으로 [[1990년대]] 초중반에 경제적 혼돈기를 겪으면서 인구가 급감하는 바람에 한동안 국가 존립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 처했지만 그럼에도 [[발트 3국]]은 소련 시절에도 산업발달이 가장 잘 이루어진 지역이어서 기존에 쌓아놓은 것이 있었던 데다가 서방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에 비교적 빠르게 경제성장에 성공했다. 정치적으로도 [[친서방]]적인 [[외교]] 노선으로 갈아타 [[유럽연합]], [[NATO]]에 가입하면서 안보를 보장받고 [[반러]] 국가로 탈바꿈했다. 다만 인구가 300만도 안 되는 소국들이라 국민소득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올릴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고 [[저출산]] 및 인구 감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중앙아시아]]의 경우 국가마다 차이가 나는데 사실 이 차이라는 것은 천연자원의 부존 여부에 따른 것이다. 5개국 모두 체제 전환 초기에는 극심한 혼란과 경기침체를 경험했으나 세계적인 자원 보유국이자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은 그럭저럭 먹고살 만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천연자원 덕분이었던 만큼 [[2015년]] [[유가]] 폭락을 맞아 둘 다 타격을 입었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내륙국]]으로, 인구도 많지 않고 천연자원도 미미하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도 최빈국이고 전망도 밝지 않다. 근대 세계에서 [[내륙국]]이란 지리적 특성은 발전에 있어 말 그대로 [[쥐약]]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럽의 [[내륙국]]처럼 해안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고 교통망이 발달되어 있으며 주변국과 협력하는 상태라면 모를까 [[중앙아시아]]의 경우는 제대로 된 [[항구]]까지 닿으려면 그야말로 한 [[세기]]가 걸리고 교통 수준과 협력 수준도 높지 않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모두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서 외국에서 일하는 자국민들의 송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사실 이 동네는 워낙 입지가 형편없기 때문에 소련 시절부터 15개 공화국 중에서 가장 개발이 덜 된 지역이었고, 체제 전환 때문이라기보다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중앙정부의 지원이 끊기고 노동 이주도 제한된 것이 더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중국 서부인 [[위구르]], [[티베트]] 지역과 인접해 있지만 [[위구르]]나 [[티베트]]는 인구가 많은 지역이 아니고 산업 발전이 이루어진 지역도 아니다. [[우즈베키스탄]]도 마찬가지로 [[내륙국]]이고 자원은 있지만 [[카자흐스탄]]에 비해 인구가 2배 많고 자원은 더 적기 때문에 수출은 고사하고 자국의 수요도 모두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가 3,000만명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데다 소련 시절에 쌓아놓았던 산업 기반도 어느 정도 유지는 되었으며 내수 시장이 어느 정도 있고 노동력도 풍부해서 [[1997년]]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한 이후 2000년대 초반 평균 5%, 중반 이후 8%를 넘는 고속 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물론 그래도 [[카자흐스탄]]을 따라잡으려면 (카자흐의 성장이 멈추더라도) 십 년은 족히 걸릴 것으로 보인다. [[캅카스|코카서스]]의 경우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 [[천연가스]]를 소유한 [[아제르바이잔]]의 소득이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지만 자원의 배분이 영 신통치 않은지 임금 수준만 놓고 보면 [[아르메니아]], [[조지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European_countries_by_average_wage|참고]][* 다만 아제르바이잔이 조지아, 아르메니아보다 인구가 훨씬 많긴 하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의 인구가 각각 400만, 300만 정도밖에 되지 않는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캅카스 3국 중 유일하게 인구가 천만명을 넘기는 나라로, 저 두 나라의 인구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 [[캅카스 3국]] 모두 월 평균 임금이 4~50만원에 불과한 빈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물가는 한국인 기준으로 봐도 생각외로 싸지 않은 편이다. 아제르바이잔이야 산유국이니 그렇다 쳐도 조지아는 원래는 물가가 상당히 저렴한 나라였으나 러우전쟁과 그로 인한 러시아인들의 대규모 이주로 인해 물가가 폭등해버려 외식비가 '''한국'''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러시아]]를 제외한 [[동유럽]] 3개국 또한 사정이 영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와 [[몰도바]]는 1인당 GDP가 '''5,000-6,000달러대''' 수준으로 탈유럽급의 최빈국인데 이것도 [[1990년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나은 수준이다.[* 특히 몰도바는 우크라이나 정세가 막장이 되기 전이던 2013년까지는 우크라이나보다도 가난한 유럽 최빈국이었고, 러시아의 모라토리움의 여파를 직격탄으로 맞아 한때는 거의 아프리카 최빈국 수준으로 떨어졌다.] 두 나라 모두 지하경제의 비중이 큰지라 실질 경제력으로 따진다면 경제규모가 최소 2배-3배 이상으로 껑충 뛰어오른다. 물론 거꾸로 말하자면 부정부패가 심하다는 얘기도 된다. 게다가 정정 불안으로 인해 안 그래도 막장이었던 경제는 갈수록 파탄으로 치닫게 되었다. 의외로 [[벨라루스]]는 내륙국에 자원도 없는 데다 [[루카셴코]]의 반서방, 친러 정책과 독재로 인해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국]], [[페루]], [[보츠와나]]와 비교될 정도로 상당히 양호한 소득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웃 [[러시아]]가 [[1990년대]] [[옐친]]의 급진적 경제 개혁의 부작용으로 나락으로 추락하는 동안 루카셴코는 그와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소련은 중앙 권력으로 [[소련 공산당]]이 있었고 소속 공화국별로 휘하의 공산당이 존재하였다. 물론 당연히 연방중앙 공산당의 강력한 지도를 받았다. 정치적으로는 구성국들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데 [[우크라이나]], [[몰도바]], [[키르기스스탄]], [[발트 3국]], [[조지아]], [[아르메니아]]는 부분적으로는 [[민주주의]] 체제[* [[프리덤 하우스]]의 [[세계의 자유]] 구분에서 '[[자유]]' 혹은 '부분적 자유'로 분류된 나라들이다. 아래의 [[권위주의]]의 [[독재]] 국가로 설명한 나라들은 '부자유'로 분류된 나라들.]인 반면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는 [[권위주의]] 국가가 되는 양상을 보인다. 한때 철권통치로 악명 높았던 [[우즈베키스탄]]은 [[독재자]]가 [[2016년]]에 사망하면서 [[민주주의]] 요소를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등 과도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발트 3국]]은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반러]] 국가가 된 후 소련식 중앙집권체제를 철폐하였고 [[몰도바]]는 유럽 최빈국이라 그런지 딱히 독재 권력이 나타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와 [[키르기스스탄]], [[조지아]], [[아르메니아]]는 [[민중]] [[시위]]로 권력자를 몰아낸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의원내각제]] 요소를 도입하여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나눠 가지는 등 [[권위주의]]를 방지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소련 해체 직전 각 해당 공화국의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이슬람 카리모프]],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가 독립하자마자 최초 [[직선제]] 선거를 통해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독재권력을 휘둘렀다.. [[2019년]]에 자발적으로 대통령직에서 사퇴한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를 제외하면 카자흐스탄과 인접한 두 나라의 [[카리모프]]와 [[니야조프]]는 장기집권 중 [[노환]]으로 사망하여 그의 뒤를 승계한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와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가 현재 대통령직을 역임하고 있다. 미르지요예프는 현재 [[카리모프]]가 행해 오던 철권통치를 완화하고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베르디무하메도프는 전임자였던 [[니야조프]]를 능가할 정도로 억압적인 독재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3대 대통령인 [[헤이다르 알리예프]]가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을 통해 권력을 획득한 후 훗날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한테 대통령직을 [[세습]]하였고 일함 또한 아들한테 [[세습]]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타지키스탄]]의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과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 또한 장기집권을 하면서 [[세습]] 의혹을 받고 있다. 소련 붕괴 25주년인 [[2016년]] [[12월]]에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첸트르'에 따르면 소련의 붕괴를 애석해한다는 응답자는 78%,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는 22%였다. 애석해하는 이유로는 경제 붕괴(53%), 강대한 국력 상실(43%), 상호 불신 증가(31%), 친척·친구 관계 단절(28%), 자유로운 여행 불가(15%) 등을 들었다. 한편 다른 여론조사 전문기관 '브치옴'의 조사에선 소련 붕괴를 애석해한다는 응답자가 83%로 더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라시아 연합]] 등 푸틴 주도의 구소련 [[독립국가연합]]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8912986|재통합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스포츠(특히 [[축구]])에도 적잖게 영향을 끼치었다. 리그에서부터 전도유망한 선수들이 해외로 많이 빠져나갔는데 타지키스탄 출신의 [[발레리 사리체프]](신의손)가 K리그로 떠나면서 2000년에 대한민국 국적을 따거나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과 [[알렉산드르 포드쉬발로프]](샤샤), [[세르게이 부르딘]] 등이 [[부천 SK]]에서 활약한 게 그 반증이다.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소련 축구 대표팀]]은 1958년 월드컵부터 8강 이상 여러 번 진출하고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0|유로 1960]] 초대 우승과 유로 4강 이상 여러번 진출할 정도로 우승후보였지만, [[UEFA 유로 1988|유로 1988]] 준우승과 [[88올림픽]] 축구 금메달을 끝으로 소련 해체 후 약해졌다. [[UEFA 유로]]에서는 [[UEFA 유로 1992|유로 1992]] 지역예선 직후 소련이 해체되어 '독립국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8개국(8강) 본선 유로[* 1992유로까지 지역예선에서 본선 유로에 들어 갈 수 있는 자리가 단 8자리(8강) 유로 대회로 현재 24자리 유로에 들어가는 것 보다 매우 어려웠다.]에 진출했으나, 스코틀랜드에 0:3 참패하였고[* 그 전에 독일과 네덜란드에게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스코틀랜드에 0:3으로 참패 탈락(8등)했다.], 그 후 러시아로 [[UEFA 유로 2000|2000년 유로]] 16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하는 충격도 있었다. 그러다가 [[UEFA 유로 2008|유로 2008]]에서 4강[* 3위로 유로는 1984년부터 3,4위전(동메달전) 폐지로 최종 결과는 4강전이다.]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켰으나, 월드컵도 2006 ~ 2010월드컵 32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할 정도였고, 그러다가 개최국으로 진출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8강(8위)에 오른 것이 최고였다.[*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90월드컵]] 17위(24강 조별리그)[br][[1994 FIFA 월드컵 미국|94월드컵]] 18위(24강 조별리그)[br][[1998 FIFA 월드컵 프랑스|98월드컵]] 32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br][[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월드컵]] 22위(32강 조별리그)[br]2006~2010월드컵 32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br][[2014 FIFA 월드컵 브라질|2014월드컵]] 24위(32강 조별리그)로 우승후보 소련시절에 비교하면 [[암흑기]]의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제3의 전성기를 맞았으나 각종 도핑 논란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무대 출전이 정지되었다. 또 [[러시아]]를 제외하고 월드컵이나 유로컵 본선에 오른 팀은 [[라트비아]][* [[UEFA 유로 2004|유로 2004]]]와 [[우크라이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독일 월드컵]], [[UEFA 유로 2012|유로 2012]]([[폴란드]]와 공동개최), [[UEFA 유로 2016|유로 2016]], [[UEFA 유로 2020|유로 2020]]]뿐이다. [[아시아 축구 연맹|AFC]]로 소속을 옮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2002년]]부터 [[유럽 축구 연맹|UEFA]] 소속으로 옮김.],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중 [[아시안컵]] 본선에 오른 나라도 [[우즈베키스탄]][* 그나마 [[아시안컵]]에서는 연속으로 진출하며 강호로 인정받고 있다.]과 [[투르크메니스탄]][* 2004년, 2019년], [[키르기스스탄]][* [[2019년]]에 대한민국에게 0-1로 석패했다.]뿐이다.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과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소련의 15개국 중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를 제외한 12개국이 '올림픽 연합 선수단'이라는 이름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하지만 [[FIFA 월드컵|월드컵]]이나 [[유로컵]]과는 달리 [[올림픽|동계올림픽]]에서는 메달 종합 2위, [[올림픽|하계올림픽]] 메달 종합 1위를 달성하며 [[체면]]치레를 했다. [[조지프 나이]]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현 [[러시아]]가 이전의 [[소련]]보다 인구의 반, 경제의 반, 병력의 3분의 1이 줄어든 상태라고 한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1191794364605|#]] 2021년 12월 12일 푸틴 대통령이 소련 붕괴를 비극으로 묘사하면서 경제난에 [[택시]]를 몰아야 했다고 회고했다.[[https://www.yna.co.kr/view/AKR20211213000900108?section=international/europe|#]] 타국의 사회주의 단체도 그렇지만 당시 특히 한국의 [[운동권]]에게는 소련 붕괴가 엄청난 충격이었다. 당시 한국은 의도적으로 소련에 대한 정보를 감추고 있었고, 소련이 개혁개방을 할 적에도 운동권에게 소련은 워너비로 남아 있었는데, 소리소문 없이 소련이 공중분해되면서 운동권은 그야말로 날벼락이 떨어지게 된다. [[이재오]], [[김문수]] 등 전설적인 운동권 인물들이 전향한 데는 [[북한]]의 실상이 알려진 것과 더불어서 소련의 붕괴가 대대적인 이유를 차지하게 된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
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 BY-NC-SA 2.0 KR
또는
기타 라이선스 (문서에 명시된 경우)
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216.73.216.107)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사용자
216.73.216.107
IP 사용자
로그인
회원가입
최근 변경
[불러오는 중...]
최근 토론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