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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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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 조직 == 소련 공산당은 혁명을 준비하던 시기 때부터 [[러시아 혁명]], [[러시아 내전]], [[대숙청]], [[제2차 세계 대전]]과 [[페레스트로이카]], [[소련 해체]]까지 굴곡진 역사를 겪어온 만큼 워낙 구조가 많이 변했다. 다음은 소련 중, 후반기에 정리된 대략적인 구조다.[* 이후 등장한 [[공산권]] 국가들도 대부분 조직구조를 그대로 따라했다. [[북한]], [[중국]], [[베트남]]과 같은 현존 공산권 국가들의 구조도 당대회-중앙위원회-정치국으로 내려가는 중앙당 구조와, [[지방자치]]를 담당하는 지방당이 중앙당에 지배를 받는 구조, 감사위원회나 서기처 등 거의 비슷하다.] * '''[[소련 공산당대회]] (Съезд КПСС)''' 소련 공산당의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회의. [[1898년]]부터 [[1991년]]까지 총 28번 개최되었으며, 위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명실 상부한 '''소련 최고의 권력기관'''이었다. [[스탈린]] 시기까지는 정치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었으나, 스탈린 사후 5년을 두고 개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당 대회에서는 전반적인 당의 운영노선과 중앙위원회를 선출했다. *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Центральный Комитет КПСС)''' 소련 공산당 [[전당대회]]에 선출되어, 전당대회가 없는 평상시 당의 운영을 책임졌던 기관. 소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뽑힌 당의 지도부... 이기는 했지만 사실 정치국에 가려 빛을 많이 못봤다. 물론 그래도 당의 실무를 담당하고 조율한다는 점에서 나름 영향력있는 기관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당이나 국가 내 중요한 직책은 전부 '''정치국''' 출신이 독점하다보니 사실상 당의 실무를 조율하는 기관에 가까웠다. 그래도 정치국이 소속된 기관이라는 점에서 나름 최고 권력이라면 권력이었다. [[흐루쇼프]]는 자신을 제거하려는 정치국 기반의 정변(?)을 중앙위원회에서 뒤집기도 했다. 중앙위원회에서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드러내는 인물이 모인 부서는 '''정치국(Политбюро)''', 당의 [[행정]]이나 [[재정]], 기타 실무 쪽을 주로 맡는 부서는 '''사무국(또는 서기국, Секретариат)'''으로 분류했다. 이 서기국의 수장이었던 [[서기장]]이 수장 격이긴 해도 [[UN 사무총장]]보다도 못한 권력으로 일반적인 사무업무만 맡다가, [[이오시프 스탈린]]의 지도 하에 서기국의 수장이 정치국에서 점점 영향력을 높이더니 중앙위원회의 수장이 되고, 나아가 소련 공산당의 수장이 되며 권력이 급성장한 것이다. *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Политбюро ЦК КПСС)''' 말그대로 '''소련 권력의 핵심.''' [[1952년]]부터 [[1966년]]까지는 '''상무회(Президиу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옛날 소련이 존재하던 시절, 누군가가 정치국원이었다는 것은 권력의 최종 핵심부에 있다는 것을 뜻했다. 소련에서 '''[[서기장]]'''을 포함해, [[소련 장관회의|장관회의]] [[주석(직위)|주석]]이나 [[소련 최고회의|최고회의]] 주석, 심지어 나름 이름을 알린 정치인 중 정치국 출신이 아닌 인사는 매우 드물었다. 심지어 '''정치국원 후보(Кандидат члена Политбюро)'''까지 따로 선출해서 둘 만큼 정치국은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누구보다도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즉, '''차기 서기장 후보'''이거나 '''서기장의 최측근들'''이 포진한 권력의 핵심부가 '''정치국'''이었다. [[파일:Politburo_CPSU_1989.jpg]] ▲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들의 사진(1989년) * '''소련 공산당 중앙감찰위원회 (Центральная контрольная комиссия КПСС)''' 중앙위원회와 마찬가지로 당 대회에서 선출되어, 당 내에서 당원들의 당규 위반, 혹은 도덕적 타락, 사기, 권력 남용과 같은 범죄들을 감시하고 심판하였던 기구. 현대의 정당으로 따지면 당기위, 윤리위원회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중앙감찰위원회에 소속된 위원들은 중앙위원회 대의원이 될 수 없었고, 이러한 감찰 구조로 인해 소련의 경영체계 품질 향상을 꾀했다. * '''소련 공산당 중앙감사위원회 (Центральная ревизионная комиссия КПСС)''' 소련 공산당 내부의 감사를 위한 기구. 중앙감찰위원회와는 다르게 중앙감사위는 예산과 같은 당 내 재정 문제에 목적을 맞췄고, 당 대회에서 재무보고를 담당하였다. 제 3대 중앙감사위원장 미하일 블라디미르스키는 중앙감사위의 목적을 '중앙위원회 사무국의 재무 관리를 확인, 사건의 적시성이나 정확성을 기준으로 하여 중앙위원회 사무국의 업무를 감사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총 37명의 위원이 당 중앙위원회에서 선출되었다. * 당내 [[교육기관]] 이렇게 소련 공산당은 소련 내에서도 워낙 절대적인 위치에 있다보니, 독자적인 학교와 연구소를 소유할 만큼 세가 강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소(Институт Марксизма-Ленинизма)라던지 당상급학교(Высшая партийная школа)를 운영하면서 공산주의 이념을 다듬고 차기 당을 이끌어갈 엘리트를 체계적으로 교육시켰다. * 당 상급학교(Высшая партийная школа) 당 상급학교는 당 운영을 위한 인물 양성을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입당한 지 3년이 넘은 당원이 지역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입학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에 위치한 중앙위원회 산하 당 상급학교를 비롯, 15개 국가 내의 당 중앙위원회가 직속으로 설립한 당 상급학교, 그리고 각 지역당마다 설립한 당 상급학교가 존재하였다. 커리큘럼은 2년제와 4년제로 분류되었고, [[경제]]나 [[역사]] 위주의 커리큘럼이었으나, 이외에도 마르크스 [[철학]]이나 조직사업, [[외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위주.]등을 공부하였다. * 아동 및 청년기관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소련 역시 [[유아]], [[청소년]]들의 이념교육에 신경을 많이 썼고, 그 결과물이 바로 [[옥타브랴타]], [[피오네르]], [[콤소몰]]로 이어지는 공산당 내 청년기관이었다. 보통 공산당에 가입한 [[소련인]]은 7세부터 9세까지는 옥탸브랴타, 9세부터 14세까지는 피오네르, 14부터 28세까지는 콤소몰, 그 이후부터는 정규 당조직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 지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러시아]]를 제외한 소련의 14개 [[공화국]]들은 소련공산당 지부를 두고 있었으며, '''공화국 국명+공산당''' 명칭을 사용했다. 예를 들면 '''소련공산당 우크라이나 지부'''는 '''우크라이나 공산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각 공화국 공산당들은 소련 공산당과는 별도의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러시아를 제외한 14개 공화국 출신의 소련 정치인들은 우선 공화국 공산당에 입당한 뒤, 능력을 인정받아 소련공산당으로 진출하는 방식의 테크트리를 탔다. 소련의 대부분을 차지해 사실상 소련과 같은 취급을 받았던 [[러시아 SFSR|러시아]]는 소련 공산당의 직할통치를 받다가 [[1990년]]에 '''[[러시아 SFSR]] 공산당''' 창당이 허용되었으나, 1년뒤에 소련 공산당 보수파가 [[8월 쿠데타]]라는 자폭을 저지르는 바람에 소련 공산당이 해산당하자, 러시아 SFSR 공산당을 비롯한 개별 공화국 공산당들도 해산당했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공산당 시절과 다른 당명으로 재창당한 경우도 있고, 다시 공산당이라는 이름으로 재창당한 경우도 있다. * [[우크라이나 SSR]] 공산당 - [[우크라이나 사회당]][* 소련 공산당이 해산되자 [[올렉산드르 모로즈]]를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 SSR 공산당원들이 [[1989년 동유럽 혁명|먼저 공산정권이 무너진 동구권 국가들]]의 옛 공산당들이 [[사회당]]으로 재창당한 것을 벤치마킹하여 창당했다.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합법정당으로 활동했으나, 외교적으로 [[친러]]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다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불법화되었다.]과 [[우크라이나 공산당]][* [[1993년]]에 우크라이나에서 공산당 창당이 재합법화되자, 사회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SSR 공산당원들과 일부 사회당 탈당파가 함께 창당했다. [[199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1999년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페트로 시모넨코 [[서기장]]이 [[결선투표]]까지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줬지만 현직 [[우크라이나 대통령|대통령]] [[레오니드 쿠치마]]에게 패하여 낙선했고, 이후에는 친러 [[빅 텐트]] 정당인 [[지역당]]에게 지지 기반을 빼앗겨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가,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 1년 후인 [[2015년]]에 불법화되었다.]이 계승 * [[벨라루스 SSR]] 공산당 - [[벨라루스 공산당]]이 계승[* 현재 [[루카셴코]] 대통령을 지지하며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 [[몰도바 SSR]] 공산당 - [[몰도바 공화국 공산당]][* [[2000년대]]에 블라디미르 보로닌 대통령을 당선시키면서 '''단독 집권'''까지 성공했지만, [[2010년대]]부터는 [[몰도바 공화국 사회주의당]]에게 지지 기반을 빼앗겨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상태다.] * [[카자흐 SSR]] 공산당 - [[카자흐스탄 공산당]]이 계승 * [[투르크멘 SSR]] 공산당 - [[투르크메니스탄 민주당]]이 계승[*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당명만 민주당으로 바꼈을 뿐 독재정당인 건 공산당 시절과 마찬가지인데다]], [[1989년]] 이전의 소련처럼 [[일당제]]로 회귀하여 [[반동(정치)|오히려 소련 말기보다도 민주주의가 퇴보했다.]] 그러다가 [[2008년]]에 야당 창당을 합법화하여, [[투르크메니스탄 농민당]]과 [[투르크메니스탄 상공업자기업가당]]이라는 야당이 생겼지만 [[구색정당]]에 불과해서 [[일당우위제|실질적으론 일당제 시절과 다를 바 없었다.]] 또한 최근에는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대통령]]의 아들 [[세르다르 베르디무하메도프]]가 후임 대통령에 당선되어 '''[[독재자/세습|부자 세습까지 성공]]'''함으로써, 그냥 소련 시절보다도 후퇴한 정도가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북한]]'''으로까지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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