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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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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 관련 === * [[http://nohitnorun.com/306|불암콩콩코믹스 레전드 선동열편]] * 굉장한 학구파다. 일본 용병으로 건너간 시절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야구 지식도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스포츠 신문에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241&aid=0003061493|야구 컬럼을 연재]]했는데 그 퀄리티가 놀라운 수준이다. 투구학 개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리즈를 일독해보자.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는데 열려있고, 메이저리그의 투구이론은 물론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한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감독 시절만 해도 올드스쿨이라며 욕을 많이 먹었는데 오히려 감독 은퇴 이후 뒤늦게 세이버메트리션이 된 특이한 케이스다. 때문에 이전과는 달라졌다며 팬들 사이에서 다시 감독으로 영입하자는 의견이 시즌 끝날때마다 나온다. * 2006년 [[https://www.youtube.com/watch?v=EbqIhNxEBl4|올스타전 식전 행사로 열린 25년 올스타 vs 연예인야구단과의 경기]]에서 1회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하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던지면서도 130km/h가 넘는 공을 던졌다. 결과는 1이닝 동안 이휘재, 윤종신, 허준호를 상대로 각각 삼진, 파울 플라이, 삼진을 얻어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최고구속은 134km/h. [[https://youtu.be/d-Bf-LHiGd0|허준호 삼진잡는 장면]]. 이 2006년 경기는 준비를 거의 하지 않고 던져서 저런 공이 나온 것이다. 몇 주간 준비를 하고 나왔던 2005년 올드스타전에서는 경기 전 구속 측정 이벤트에서 138km/h로 2위를, 경기를 마무리하러 나와서는 무려 140km/h를 던졌는데, 다음날 올스타전 방송인터뷰에서 [[손민한]]과 [[권오준]]은 전날 경기를 보고 자신들에게 한숨이 나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 때 [[김태원(야구선수)]]도 140km/h를 찍었지만 선동열 때문에 묻혔다. *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있을 당시 [[박한이]]에게 "지금 던져도 너 정도는 문제없다."라고 일침을 가한 적이 있다고 한다. * 은퇴 이후 현역 때의 공을 던질 수 있다면 가장 붙어보고 싶은 타자로 [[이대호]]를 꼽았다. '''삼구 삼진'''으로 잡을 자신이 있단다.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011300100301060018726&servicedate=20101130|[10대1 인터뷰] 선동열 "현역 때 공이면 이대호 삼진 잡겠지"]] * [[이대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KBO 역사상 최고의 기록으로 선동열의 통산 평균자책점 기록을 꼽은 바 있다. 그것도 상당히 확고하게 꼽았는데, 자신의 7관왕이나 연속홈런 기록, 이승엽의 56홈런 기록보다도 확실히 더 위대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심지어 진행자가 영상에 안 나온 [[최동원]]의 기록과 비교했을때도, 롯데 선배인 최동원을 굉장히 존경하는 이대호조차 "그럼 그것과 1, 2위를 경쟁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래도 난 선동열 감독님의 기록이 여전히 1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시즌이 아니라 KBO 선수생활 전체 통산에서 그런 말도 안되는 평균자책점 수치가 나온다는 건, 미래에도 다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https://youtu.be/6gxp9ZQVH1Y|이대호가 말한 선동열의 기록]]. * [[파일:attachment/선동열/사본_-11_0019657.jpg]][br][br]2006년도에 2년차 투수 [[오승환]]은 아직 자신과 비교하려면 멀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자기는 16m 지점에서 공을 뿌렸는데 오승환은 18.44m 지점에서 공을 놓으니까. [[http://foto.sportschosun.com/news/ntype2_o.htm?ut=1&name=/news/sports/200609/20060923/69w01001.htm|선동열 감독, "오승환 나보다 못해!"]] 실제로 오승환이 18.44에서 놓는건 아니고 더 배워야 한다는 말. 공 끝이 좋다는 칭찬도 같이 해주었다. * [[파일:attachment/b0051210_4cbd91159fa09.jpg|width=600]] >'''스포츠 세계에서 2등은 꼴찌하고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유명한 짤. [[2010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한국시리즈|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꼴찌를 기록해서 감독직에서 잘렸다는 우스갯소리도 돌곤 했었다.[* 선동열이 해태 선수 시절에는 단 한번도 한국시리즈에서 [[2등|꼴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표현은 스포츠에서 1등만이 살아남는 프로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과 승부의 냉정함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물론 냉정하게 말하면 2등과 꼴찌는 제법 큰 차이가 있긴 하다. 당장 [[콩진호]]만 봐도 2등의 대명사였지만 당시 스타리그의 꼴찌와 달리 오늘날까지 유명하다. 1등과 라이벌리가 될 정도면 더 그렇다. 설령 유명하지 않더라도 받는 금액에서 엄연한 차이가 있다. 선동열 입장에선 1등이 되기 위한 승부성을 강조했다고 보면 될듯.] 2022년 본인이 작성한 칼럼에서도 다시 한번 언급했다.[[https://n.news.naver.com/sports/kbaseball/article/144/0000827429|#]] * 1993년 시즌을 앞두고 [[스포츠서울]]의 제의로 '''선동열의 실전강의''' 라는 타이틀의 특집 시리즈를 지면에 게재했는데 당대의 최고 투수인 선동열이 [[장종훈]], [[김기태(1969)|김기태]], [[이정훈(1963)|이정훈]], [[장효조]] 등 당시 국내의 유명 타자들을 어떻게 공략하는 지 집중 분석하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선동열 자신의 영업 비밀인 타자 별 볼 배합 등 피칭 요령을 만 천하에 까발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특집이었지만 선동열은 의외로 흔쾌히 취재에 응하여 20회 분을 연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0회 정도 연재되었을 즈음에 스포츠서울을 본 [[김응용]] 감독이 "아니 이 미친놈이 지금 뭐하는 짓이야?!" 라고 노발대발 하며 선동열을 부르자,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짐작하면서 김응용에게 갔다. > 김응용: 야 이 멍청한 녀석아, 너 야구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 선동열: (모르는 척 능청떨며)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 김응용: 여기 [[스포츠서울|신문]]에 나온 기사 말이야! 타자를 상대하면서 네 비밀을 몽땅 털어놓는다는게 말이 되냐? 그러고도 네가 앞으로 계속 투수로 뛰겠다고? 앙? 지금까지 누구누구 했어? > 선동열: 아 네, [[김재박]]하고 [[이해창(1953)|이해창]], [[박종훈(1959)|박종훈]], [[장효조]]... 아무튼 은퇴한 타자들만 했습니다.[* 사실 대부분 현역 타자들을 대상으로 한 내용이었지만 머리 좋은 선동열은 순간적인 판단으로 은퇴 선수들만 주워섬긴 것이었다.] 미쳤다고 현역 선수들 공략법을 말하겠습니까? > 김응용: 그래? 그나마 좀 낫군. 아무튼 더 이상은 안돼. 절대로 하지 마. > 선동열: 네 알겠습니다. 사실 김응용이 더 [[극대노|격노]]한 이유는 선동열이 지난 해인 1992년 어깨 부상으로 시즌을 말아먹었는 지라 1993년 시즌 선동열의 [[부활]]이 가능할 지 미지수인 상황에서 본인의 무기를 공개하겠다는 것에 화들짝 놀란 것이었다. 하지만 선동열은 '''"내가 직구를 던진다고 하고 던져도 못 치는데 어느 정도 피칭 노하우를 공개해도 지장은 없지 않겠는가?"''' 라는 자신감으로 거리낌 없이 기사를 연재한 것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특집은 김응용의 제지가 들어왔지만 그나마 모양 사납지 않게 자연스레 끝낼 수 있었고, 선동열은 그 해 [[마무리 투수]]로 전업하여 [[평균자책점]] 0.78에 41세이브포인트를 거두는 맹활약을 보이며 이 특집기사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 현역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는 1982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1982년|세계야구선수권 대회]] 결승전, 1987년 [[최동원 vs 선동열|최동원과의 15이닝 완투 무승부]] 등을 주로 꼽곤 한다. 모교 [[고려대학교]]의 학보인 고대신문과의 [[https://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8284|인터뷰]]에서는 [[고연전|고려대-연세대 정기전]]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기도 했다. 자리가 자리다 보니 [[립서비스]]일 수 있겠지만, 세계야구선수권 때보다 고연전 등판 때가 더 떨렸다고. *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약하였던 덕분에 주니치 관련 뉴스가 나오면 십중팔구는 그의 이름이 따라나온다. 2022 시즌 종료 후 은퇴했던 [[후쿠도메 코스케]]는 2022시즌 내내 그의 거취에 대한 기사에 선동열, [[이종범]] 그리고 [[이병규(1974)|이병규]]까지 세트로 딸려나왔을 정도였다.[* 후쿠도메는 선동열의 현역 마지막 시즌이던 1999년에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다만 그 당시엔 2군에 오래 있었고 이종범과 같이 외야훈련을 받던 처지였다(이종범이 유격수에 안 맞다고 외야로 보내고 후쿠도메로 유격수를 세우려 했으나, 그 후쿠도메도 이종범과 맞먹는 수준으로 유격수에는 맞지 않았기에 결국 둘 다 외야로 갔다. 그 빈 자리를 차지한 건 [[쿠지 테루요시]]). 이후 [[2007년 일본시리즈]]에서 이병규와 같이 주니치의 우승을 이뤄냈다.] 2015년에 은퇴했던 [[야마모토 마사]], 2022~2024 주니치 감독을 역임했던 [[타츠나미 카즈요시]]도 마찬가지로, 기사에 전부 선동열이 딸려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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