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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레닌/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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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이후 [[엠버밍]] == 레닌은 필요할 때는 주저없이 독단적이고 과감하게 폭력을 휘둘렀지만, 일단 상황이 안정되었을 때는 이념이 다르더라도 상대방을 끌어 안을 줄 알아 적지 않은 수의 [[멘셰비키]][* 멘셰비키의 수장 율리 마르토프 또한 [[독일]]에서 망명 생활을 했는데, 그를 쫓아낸 레닌의 지원을 받아가며 영위하였다. 어찌됐건 레닌과 마르토프는 오랜 옛 친구이다.], [[사회혁명당(러시아)|사회혁명당]]원, [[아나키스트]] 등의 [[볼셰비키]]와 대립했던 좌익들은 이 내전 중에 그를 적대했더라도 용서받고 새로운 소련 체제에 정착할 수 있었다. 마르토프, 사회혁명당 당수 빅토프 체르노프 같은 지도부들도 레닌 시절에는 직접 죽이기보단 망명이 더 일반적인 경우였고, 그 아래 평당원, 조직원들의 경우 이때 옛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원, 아나키스트였던 사람들이 대거 공산당에 입당했다. 레닌이 이전에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시절도 혁명의 완성을 위한 견해 차이라고 생각했고, 혁명이 이루어지고 혁명 역량이 싸그리 날아가는 최악의 상황에 봉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여러 수단을 썼던 것뿐이었다. 혁명 이후 안정화 시기에 여러 계파를 받아주고 다양한 견해를 수용해 주었다. 그러나 레닌이 죽자, 레닌이 인식한 자유에 대한 의식과 거리가 있었던 스탈린이 집권하고 [[대숙청]] 때에는 스탈린 계파를 제외하고 전직 비 볼셰비키를 포함한 계파들이 스탈린에게 전부 숙청당했다. 대숙청의 피해자 숫자로 제시 되는 수십만 단위의 처형인들 중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레프 카메네프, [[니콜라이 부하린]] 같은 유명한 볼셰비키 원로를 제외한 나머지 다수는 이렇게 레닌 시절 포용되었지만, 이후 스탈린 시절 마치 현대 민주국가의 법적 논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소급입법된 판결에 따라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파일:external/static.guim.co.uk/Lenins-embalmed-corpse-007.jpg]] 레닌의 시체는 보존처리[* 레닌이 죽자 많은 참배객 인파를 본 스탈린은 그를 기리자는 의미에서 이것을 제안하였다.]가 되어 '''10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붉은 광장]]에 있는 [[레닌 영묘]]에 전시되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독소전쟁]]을 일으켜 [[독일 국방군]]이 [[모스크바]]로 진격하자 임시로 레닌의 시체를 일시적으로 소련 동방 지역인 [[튜멘]]에 위치한 국립과학연구소로 보낸 적이 있다.][* 실제로 레닌, 호찌민, 김일성 뿐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마오쩌둥과 스탈린과 김정일까지 여러 공산국가의 지도자들이 사후 시체가 엠버밍 처리 되었다. 그 중 스탈린의 경우는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탈린 격하 운동 당시 따로 매장되었다. 또한 북한 금수산 시체보관소나 베트남 호치민 영묘의 엠버밍 역시 러시아 회사에서 맡고 있다. 김일성과 호찌민은 평범하게 무덤에 묻히길 원했지만 후대가 가볍게 씹고 엠버밍했다.] 크룹스카야도 영묘 전시에 반대했으나, 스탈린은 레닌의 시체를 영구보존하는 방법을 연구하라고 [[과학자]]들을 닦달했다고 한다. 다만 아무래도 엠버밍이 처음이다보니 기술이 완벽하지는 않았어서 코와 귀에 문제가 생겨서 밀랍으로 그 부분을 대체했다고 전해진다. 사진의 귀를 자세히 보면 귀의 밑부분은 검은색이 도는 반면 윗쪽은 매우 깨끗한 걸 알 수 있다. 일부 반공적인 러시아인들이 레닌이 어머니 옆에 묻히길 바랐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그게 정설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것은 러시아어 위키피디아에서도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나오며 레닌은 유언장에서 정치적인 내용만을 남겼다. 다만 실제 러시아 의회에서도 레닌을 어머니 옆에 모시자는 주장이 나왔긴 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3740|#]] 레닌의 시신은 스탈린 격하 이후 소련의 해체 시점까지 붉은 광장에 전시되어 있었고, 현재도 그대로 있다. [[소련 해체]] 이후 경제난으로 지지율이 떨어진 옐친 대통령이 자신이 불리할 때마다 정국 전환용으로 레닌 시신 이장 얘기를 꺼낸 적이 있지만, 꼭 우상숭배가 아니라도 20세기 [[세계사]]를 새로 쓴 역사적 인물을 보고 싶어하는 전세계의 관광객에서 창출될 쏠쏠한 관광수입을 생각하면 그냥 이장시키기엔 좀 아깝기도 하고 제1야당 [[러시아 공산당]]에서도 강하게 반대한 데다가 당시 경제난이 레닌 시신 이장 문제로 덮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지라 딱히 화제전환도 잘 되지 않아서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예산 나가는 문제야 옐친이 집권한 1991년 진작 끊어서 문제가 없어졌고, 그 이후 엠버밍 회사가 자사 기술력 홍보를 위해 비용을 알아서 부담해왔다. 지금도 레닌의 시신 보존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이를 통한 광고효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훨씬 크다고 한다. 옐친 이후 집권한 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집권 초기부터 레닌 매장 반대를 분명히 밝혔으며, 2015년 레닌 영묘에 대한 예산 지원을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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