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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레닌/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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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과 후계자 지명 == 레닌은 총상의 후유증과 그동안 누적된 과로 때문에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고, 1922년 독일 의료진을 불러 총알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그 직후 [[뇌졸중#s-4.2]]을 일으켜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점점 권력의 자리에서 밀려나기 시작한다. 결국 마지막 1년은 [[실어증]][* 언어 기능에 장애가 발생하는 질병]까지 겪으면서 병상에서 지내다가 1924년 1월 21일 사망하였다. 죽기 직전까지도 레닌은 소련의 상황에 대한 냉정한 시각을 잃지 않았으며,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이오시프 스탈린]]의 세력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결국 스탈린의 지나치게 흉포한 성격을 경계해야 하며, 당 중앙 위원회에서 스탈린을 제명시켜야 한다는 유명(遺命)을 남겼으나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스탈린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최고위원들을 다 까는 바람에''' 인기가 떨어질 것을 걱정한 최고위원들이 알아서 쉬쉬하며 묻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뇌일혈이 심해진 바람에 스탈린에게 매일 욕설과 폭언을 한 뒤 울면서 사과하는 모습을 반복하였기 때문이다.[* 트로츠키는 '지나치게 자신감을 지녔다고 깠으며, 심지어 레닌이 가장 신뢰했던 위원인 부하린마저 '마르크스주의자라기엔 상당히 현학적인 자'라고, 스탈린을 성실하지만 위험하다며 승계자가 무능해도 상관 없으니 '''갈아치울 수 있는 한 갈아치우라고''' 깠다. 다만 "승계자가 무능해도 상관없으니 스탈린은 갈아치우라" 는 의미라고 해석한 부분은 지나치게 결과론에 기반한 일종의 오독이다. 애초에 레닌 생전 스탈린이 받았던 평가는 “그렇게 똑똑한 사람은 아니지만 성실하고 사람좋다”는 것이었고, 당시 스탈린과 경쟁하던 다른 최고위원들에 비하면 전혀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 못했다. 스탈린의 최대 정적이던 트로츠키의 경우 "나는 레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차르]] 정부를 박살냈고, 그 뒤에는 레닌이 해외로 탈출한 상황에서 임시정부를 한 방에 박살내고 다시 레닌을 맞아들이기까지 했는데 스탈린 너는 대체 혁명 과정에서 한 일이 뭐냐?" 고 조롱할 수 있는 입장이었고([[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외국 공산주의자들은 러시아 혁명 이후 볼셰비키 정부를 <레닌과 트로츠키의 정부> 라고 간주할 정도였다.) 이런 트로츠키에 맞서기 위해 스탈린과 손잡은 지노비예프, 카메네프만 해도 각각 두 수도의 소비에트 의장과 [[코민테른]] 의장, 전 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 주석 등을 역임했다는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정확히는 스탈린은 코바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시기에 음지에서 초기 볼셰비키에게 재정적으로 매우 중요했으나 러시아 제국에 체포되어 오랫동안 시베리아에 구금되어 있었기에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세우기 힘들었고 오랜 체포기간까지 합쳐져 잊혀졌다.] 덕분에 스탈린은 위기에서 벗어났고 손쉽게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이 부분 역시 레닌의 유언장이 비공개되고 다른 정치국원들이 오판하면서 스탈린이 어부지리로 권력을 장악했음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스탈린의 권력 장악 과정은 전혀 손쉽지 않았다. 당시 후보군 5명 중 스탈린은 딱히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고, 이 상태에서 자신보다 강력한 정적을 꺾기 위해 먼저 카메네프 및 지노비예프와 손을 잡기 위해 트로이카를 결성하고 트로츠키를 실각시킨 뒤, 다시 부하린과 손을 잡고 카메네프 및 지노비예프를 실각시키고 나서 마지막으로 부하린까지 실각시킨다는 복잡한 정치공학적 계략을 사용해야 했다. 이 과정이 단기간에 끝난 것도 아니고, 스탈린이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은 1925~1927년 사이지만 1920년대 후반이 되면 해도 한때 스탈린과 손잡았던 지노비예프 및 카메네프가 이번에는 트로츠키와 손을 잡고 스탈린에게 맞서려고 시도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런 경쟁자들을 모두 숙청하는 데 성공한 것이 1934~1940년의 일이었다.] 말년에 스탈린을 경계하라는 유언장[* 소련 바깥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대공황]] 이후 반공주의자로 전향하는 미국인 트로츠키주의자 [[맥스 이스트먼]]이 이를 유출시키면서였다. 그러나 이를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인물들은 거의 없었는데, 상술하듯 이미 뇌일혈로 레닌은 사실상 치매에 가까운 정신상태였기 때문.]을 남기고, [[보안]]을 염려하여 5중의 자물쇠가 달린 금고에 보관하는 치밀함까지 유지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말년에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데다가 손짓으로 겨우 대화하던 중환자로, 때문에 자신의 모든 서류작업은 대필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일을 한 [[비서]][* 다름 아닌 스탈린의 두 번째 아내인 나댜 알릴루예바였다.]의 밀고로 이내 스탈린이 알아챌 수 있었다. 다만, 흔히 말하는 <레닌의 유언장>은 단순히 모든 최고위원들을 까고 스탈린을 당 중앙위원회에서 내보내라는 내용이라기보다는 죽음을 앞 둔 상황에서 자신의 사후 소련 공산당의 후계구도를 정리하려는 정치적 의사표명에 가까운 내용이다. 이를 단순히 <모든 최고위원들을 다 깠다>고 해석하기는 어려운 것이, 이 유언장에서 거론된 트로츠키, 스탈린, 카메네프, 지노비예프, 부하린의 다섯 인물에 대한 평가에는 명확한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의 경우 "오만하고 독단적이다" 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는 하였으나 동시에 "중앙위원회에 가장 적합한 인물" 로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은 트로츠키가 자신의 문제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 라고 주문하고 있고, 카메네프, 지노비예프, 부하린 세 명의 경우 그 인물들이 가진 장점을 열거하여 칭찬한 후 "하지만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어 최고지도자로써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계를 지적하고[* 예를 들어 부하린의 경우 당 내의 주요 인사 중 가장 널리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라는 칭찬을 받았지만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자로써는 충실하지 못하다(변증법적 유물론자가 아닌 기계론자이다)는 평가를 받았다.] 있는 것이다. 즉 레닌은 이 유언장을 통해 <자신의 사후 소련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로는 트로츠키를 추천한다. 하지만 트로츠키는 너무 오만하고 독단적이라는 문제점이 있으니 트로이카를 중심으로 다른 볼셰비키 지도자들이 그 오만함이나 독단성이 문제가 되지 않도록 보좌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일종의 집단지도체제를 주문한 것. 다른 최고위원들이 이 유언장의 공개를 반대한 것 자체가 당시 정치국 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존재인 동시에 많은 정적을 가진 것이 트로츠키였는데, 이 유언장이 공개되면 그 트로츠키가 정권을 잡게 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유언장을 공개하지 않고 트로츠키를 실각시킨 결과 스탈린이 집권했고, 집권한 스탈린은 레닌이 예상한 그대로의 잔혹성을 드러내며 당시 동료였던 정치국원들을 90% 이상 숙청했다. 한때 스탈린과 손잡고 트로츠키를 실각시킨 지노비예프 같은 경우 결국 스탈린에게 숙청당하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는 트로츠키와 손잡지 않은 것이다" 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다.] 마침내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레닌의 유언을 숨기고 서기장이 되어 정적인 트로츠키를 숙청한다. 그리고 레닌을 신격화해서 그 후계자인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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