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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레닌/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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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제 정책(1921) == 신생 [[소련]]은 내전에서 승리했으나 경제가 심하게 침체된 상황이었다. 내전 직후 소련의 경제 상황은 '침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들 만큼 심각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중공업의 꽃이자 중공업 발달 수준의 척도인 철강 생산량이 내전 이전에 비해 1/5 이하로 격감했었고, 또한 기록적인 가뭄으로 농업생산량이 급감하면서 기근까지 일어났던 참담한 상황이었다. 레닌은 경제를 복구하려고 1921년에 [[신경제정책]](НЭП, NEP)을 도입했다. 레닌에 의하면 NEP는 혁명 성공의 초기 단계가 지나면 실행되기로 원래부터 계획된 정책이었다. 레닌 스스로부터가 당시 단계에서 소련은 성공적인 사회주의의 구축을 위한 [[자본주의]]적 물적 토대가 부족하다는 것을 냉철히 인식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회주의로 넘어가기 위한 전 단계로써 과도기적인 형태로 도입된 자본주의적 체제에 대해 레닌은 '국가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소규모 사업 및 자유 소매업을 허가하는 것을 시작으로, 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선진 기업들을 초청하며 자본의 투자를 장려하고자 했다. 다만, 레닌이 공산주의 국가의 고립을 바란 게 아니었다는 주장에는 반론도 있으니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공산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는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할 수 없고, 상대를 완전히 극복하기 위해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은 마르크스가 제기하여 레닌주의의 공식 입장이 된 것에 가깝다. 레닌 이후 트로츠키와 스탈린이 벌인 권력투쟁의 이론적 기반이었던 일국사회주의론 VS 연속혁명론의 논쟁에서도 양측 모두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의 공존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이 면에서 보면 레닌의 신경제정책은 자본주의 국가와의 공존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물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과도적 정책으로서 시행된 것에 가깝다. 또한, 레닌 시대의 소련이 이후 스탈린 시대보다 훨씬 더 심각한 외교적 고립 상태였다는 점 역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 [[냉전]] 이후 시기에 자본주의 진영과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기는 했지만, 세계를 양분했다고 평할 정도로 상당한 수의 우방국, 또는 위성국가군을 거느리고 있던 데 비해 레닌 시대의 소련은 위성국인 [[몽골 인민공화국|몽골]] 이외에는 거의 교류 상대가 없었다. 비교하자면, 나중에 [[중국]]의 [[덩샤오핑]] 같은 경우 '모두가 가난한 것이 사회주의는 아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했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와의 공존과 공산주의를 위한 물적 토대 마련이라는 2가지 목적을 모두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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