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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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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 [[인도군]]도 예상 외로 문민통제가 잘 되는 편이다. 다른 많은 수의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인도는 독립 후에 군사 쿠데타를 겪지 않았다.[* 이웃나라인 파키스탄은 쿠데타가 자주 일어난 것과는 반대다. 당장 한국만 해도 [[5.16 군사정변]], [[12.12 군사반란]]을 겪었고 중국(중공+대만)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일본도 제국 시절에 쿠데타가 자주 일어났고 전후인 1961년 [[삼무 사건]], 1970년에 [[미시마 유키오]]가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했다. 남베트남은 [[응오딘지엠]] 사후 쿠데타가 밥 먹듯이 일어났고 캄보디아 역시 [[론 놀]]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나서 공화정으로 갔으며 태국은 쿠데타가 자주 일어났고 필리핀은 민주화 후인 198~90년대에도 쿠데타가 자주 일어났다.] 이는 영국 정부의 노력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 설립 이후에 군통수권을 인도 정부에게 이양한 것도 그렇고 이양할 당시에 인도 식민지군의 규모를 축소시켜 놓고 이양했다. 즉, 영국 입장에선 단물 빼먹고 나갈 심산으로 그런 것이었지만 이게 오히려 인도군 자체의 예산이나 전력을 약화시켜 놓았을 뿐더러 정부수립 이후 군이 창설된지라 권력구조가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게끔 바뀐 탓에 쿠데타를 일으키기 힘든 구조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인도의 핵개발|핵개발]]조차 군을 배제하고 진행하는 바람에''' 핵개발 이후에도 핵무기 운용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였다. [[인도]]의 독립은 [[알제리]]나 대한민국처럼 식민지 체제에서의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영국 식민당국과의 협의와 제도적인 규범 내에서 독립을 맞이해서 제도적인 단절을 겪지 않았다. 물론 인도인들의 독립 투쟁은 격렬했지만 독립 이전부터 [[인도 제국]]의 인도인 정치엘리트들은 선거와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제한적으로나마 참여하면서 나름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도의 정치엘리트들은 독립 이후의 국가를 구성하고 국가발전의 지향점과 전략을 설정하는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947년 8월 15일에 독립하고 [[인도 국민회의]]의 [[자와할랄 네루]]가 주도하는 정부가 들어선 후 민간 권력의 통제를 벗어난 군부에 의해 정치체제가 위협받는 상황을 막아내는 것을 주요한 국정 과제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인도 국민회의]] 정부는 [[인도 제국군]] 시절부터 이어지던 직업적 전문인으로서의 군인들로 조직된 [[모병제]] 군대의 전통을 살리면서도 무력을 동원한 반란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대표적으로 군인들이 문화적·언어적·종교적·지역적 동질성을 가진 집단으로 묶이지 않도록 출신지에서 먼 곳으로 다양한 지역 출신들과 섞어 배치하는 것과 군의 정치개입과 사회적 영향력 행사가 불가능하게 하는 것, 특히 쿠데타를 일으키기 쉬운 육군을 억누르기 위해 군 최선임자를 육해공군 비율이 1:1:1이 되도록 인사조치해 3군간 상호 견제케 하는 것, 장교들의 처우를 상류층보다는 중산층 집단에 가깝도록 강등하는 것 등등이었다. 독립 이후 인도에서는 군 고위 장교의 공적이고 정치적인 발언이 금기시되었고, 군총사령관직이 철폐되었다. 수많은 다양한 특수부대와 준군사조직이 군이나 국방부 소속이 아닌 조직으로 신설되고 유지되었으며, 수도방위를 맡는 별도의 군사조직이 구성되어 수도 주변에 배치되었다. 같은 [[인도 제국]]의 구성원이었던 [[미얀마]][* 1885년부터 1937년까지 [[인도 제국]]의 한 주였다.]와 비교해 보면 정부수립 및 군 창설을 주도하던 [[아웅 산]]이 미얀마 독립 이전에 암살당하는 바람에 혼란한 정국 속에 군이 폭주하면서 개막장이 되었지만 인도는 [[자와할랄 네루]]라는 군, 경, 민간을 아울러 인도인들의 정서에 맞는 구심점이 살아있는 덕도 있었다. 1984년 당시 전 인도 수상 [[인디라 간디]]가 같은 해에 있었던 황금사원의 시크교도 반란 강경진압에 분노한 시크교도 경호원에게 말 그대로 '''벌집'''이 되어 죽은 적이 있긴 하다. 대신 이는 군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일개 경호원의 개인적인 종교적 원한 문제였다. 역으로 인디라 간디는 사실상의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장악한 적이 있는데 정작 이 때도 군을 동원하지 않았다. 이웃한 [[파키스탄]]이 무하지르와 군대의 담합으로 총리를 결정하면서 제 임기를 다 채운 총리가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문민통제는 인도 정국을 크게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인도 방산업계와 유착한 정계 때문에 무기 도입이 지지부진해서 군부가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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