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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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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1147년 [[유리 돌고루키|유리 돌고루키 대공]]이 만든 도시로[* 영어 표기 Prince 때문에 가끔 '돌고루키 왕자'라고 번역된 경우도 있다. 정확히 유리 돌고루키 대공이 인근 지역 지주 한 명을 초대해 잔치를 이곳, 모스크바 지역에서 벌인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중세 시대 [[키예프 루스]]에서는 [[키예프]]나 [[노브고로드]]가 중요했으나[* 당시 노브고로드는 [[류리크]]가 세운 최초의 루스 도시로서 키예프 루스 체제가 정립된 후에도 제2의 도시이자 키예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분리주의 성향이 강한 도시였다.] 점차 키예프의 영향력이 소멸하고 [[블라디미르-수즈달]]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했다. 이후 [[몽골 제국]]의 동유럽 정벌로 [[루스]]가 쑥대밭이 되었으나 어찌저찌 노브고로드와 함께 루스의 중심 도시로 떠오르게 된다. 나중에 [[모스크바 대공국]]은 [[킵차크 칸국]]에게 다른 루스 공국들의 세금을 모아서 바치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때 조금씩 세금을 떼어 먹어 국력을 키울 수 있었다.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모스크바는 동로마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군주의 이름을 [[카이사르]]에서 딴 [[차르]]라고 하고[*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딸 소피아와 당시 모스크바 공국의 이반 3세가 결혼하면서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과거 동로마 제국이 사용했고 지금까지의 러시아의 국장에 쓰이는 [[쌍두독수리]]를 모스크바 공국의 국장으로 사용한다. 훗날 세계 최강국으로 올라섰던 영국조차도 끝내 왕국이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유럽 세계에서 황제란 아시아처럼 세력이 매우 강력해지면 자동으로 붙는 이름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후계자로서 정통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다만, [[프랑스 제1제국]]은 예외로 로마 제국의 후계자로서의 정통성은 찾아볼 수 없음에도 황제를 참칭했다.]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Третий Рим)라고 자칭했다. 그 근거로 동로마 최후의 황제와 사돈 관계라는 점, 동로마 제국과 국교가 같다는 점, [[로마]]에 7개 언덕이 있듯 모스크바도 7개 언덕이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처음에는 다른 유럽 나라들에는 씨알도 안 먹히는 주장이라 '저 촌놈들 무슨 쇼 하냐?'는 반응만 나왔다. 당시 러시아는 몽골의 지배에서 겨우 벗어나 사실상 아시아 국가 수준으로 취급 받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수백 년 후 러시아의 국력이 강력해져 열강으로 올라선 뒤에는 [[3제동맹]]을 맺은 것처럼 대충 황제국 대접을 받았다. [[적백내전]]시기에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몰린 황제파 백군 세력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모스크바를 이은 '제4의 로마'라 호칭하기도 했다.] 그리고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생긴 유민들을 흡수했다. 트베리 공국과 벌인 쟁패에서 승리한 이후 [[이반 3세]]는 킵차크 칸국에게서 [[독립]]을 달성해냈으며 모스크바는 명실상부한 러시아의 최고 중심 도시가 되었다. 1571년 [[크림 칸국]], 1610년 [[폴란드-리투아니아]]에게 털리는 수모를 겪긴 했지만 [[크렘린]] 궁은 무사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1712년 [[표트르 1세]]에 의해 [[러시아 제국]]으로 변신할 때 수도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지면서 약간 찬밥 신세가 되었다. 심지어 [[1812년]]에는 [[나폴레옹 1세|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러시아 원정]]에서 9월 12일부터 10월 19일까지 1달간 점령당한 적도 있었다. [[청야전술]]로 이미 70%가 불타버린 텅 빈 도시였지만... 나폴레옹은 이에 대단히 허탈해했고, 결국 철군하면서 [[동장군]]과 게릴라에게 탈탈 털렸다. 그래도 모스크바는 여전히 러시아의 중심지였고,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긴 후에도 역대 러시아 황제들은 모스크바에서 [[대관식]]을 올렸다.[* [[일본 제국]] 시기 천황들이 즉위식은 [[교토]]에서 했던 것처럼 옛 수도를 대우한 것이다.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서의 참사인 [[호딘카의 비극]]도 모스크바에서 일어났다.] 제국 말기에는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어 제2의 도시로 여전히 중요한 위치였다.[* 1912년 기준 인구 상트페테르부르크 2,035,600명, 모스크바 1,617,700명.] 지명은 슬라브어로 '물웅덩이'을 뜻하는 모스크바강에서 따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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