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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방위군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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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모스크바 공방전]]을 상징하는 군가. 가사는 수르코프가 [[독소전쟁]] 발발 직후인 [[1941년]]에 쓴 시였고, 여기에 작곡가 모크로우소프가 곡을 붙여 [[1942년]]에 발표했다. 모스크바 공방전은 [[독소전쟁]]이 한창일 때 [[스탈린그라드 전투]]과 함께 [[나치 독일]]의 기세를 꺾은 매우 중대한 사건으로, [[레닌그라드]]와 달리 [[모스크바]]에는 [[독일군]]이 근접하긴 했으나 핵심적 도시 기능을 수행했다. [[모스크바]]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종점이자 대도시로, [[시베리아]] 등지에서 몰려드는 보급품이나 병기 인프라를 정비하고 배치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므로 만일 [[독일군]]에게 빼앗겼거나 도시 기능이 상실되었을 경우 타격은 컸겠지만 [[히틀러]]의 능력 상 [[나치 독일]]이 제대로 지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장이나 기업들을 모조리 철수시키거나 [[레닌 영묘]][* [[블라디미르 레닌]]의 시신은 이미 [[시베리아]]로 반출한 뒤였으나, 건물 자체가 [[랜드마크]]이고 엄청난 정성을 들여 지은 것이라 폭격될까 봐 일반적인 [[공장]] 건물로 위장했다.] 등 국가 주요시설을 위장하는 일련의 사건 때문에 시민들이 크게 동요하게 되어 모스크바는 도시기능이 상실될 지경에 이르나, [[스탈린]]이 수도를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부터 혼란이 자츰 사그라들 수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 선언 이후 불안하고 애가 타서 미칠 지경이 되는데 실제로 그만큼 [[독소전쟁]] 당시 [[소련]]의 상황이 나빴다. 실제로 너무도 절박했던 스탈린은 [[크렘린]] 구석에 있는 작은 [[예배당]]에 매일 같이 들러 하느님에게 ''''[[야훼|당신]]을 [[공산주의자|버려서]] 죄송합니다. 전쟁에서 이기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 예배당은 아직도 보존되어 있으나,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이라 [[다큐]] 등에서만 볼 수 있다.] [[1965년]]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20주년 기념으로 모스크바는 [[영웅도시]] 칭호를 받는다. 이 곡이 작사된 것은 이미 모스크바 공방전이 시작된 [[1941년]] 11월로[* 전투가 시작된 것은 10월로 간주된다.], 시인이었던 알렉세이 수르코프가 [[11월 3일]] "붉은 군대 프라우다"라는 신문에 이 군가의 가사가 되는 시를 써서 실었고, 이후 보리스 모크로우소프라는 작곡자가 이 시에 곡을 붙이면서 군가가 완성된다. 이후 이듬해 1월 모스크바 공방전이 끝날 때까지 전투의 상징과도 같은 곡으로 사랑받았으며, 당시 보르디노를 비롯한 [[모스크바주|모스크바 근교]]의 전황을 촬영한 [[다큐멘터리]]의 음악으로 채용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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