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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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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징 == >'''[[마오쩌둥]]은 대중을 해방과 혁명의 주체로 설정하고 대중을 믿고 대중의 요구를 중심으로 투쟁할 때만이 승리한다는 자신의 대중노선을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이해하고 이를 [[중국]]의 정치체제 속에서 관철하고자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마오쩌둥은 다당제하의 서구 민주주의 모델도 거부했지만 [[공산당]] 일당체제에 의한 전면적인 독재가 실행된 소련 [[사회주의]] 모델을 지향했다고도 할 수 없으며, [[파리코뮌]]을 모델로 하는 대중의 직접적인 통치에 의한 사회주의 실현, 즉 대중주의적 통제에 기반하는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치체제의 건설을 최고의 민주주의적 체제로 인식하고 이를 꿈꾸었던 것이다.''' >---- >개혁개방 이전 중국의 민주주의 인식: 변화와 영향 - 이홍규 >'''마오주의는 [[유교]]를 명시적으로 부정했지만,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마오주의는 그 고대의 이념적 원칙과 동일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다. 다시 말해서 마오주의는 다수를 하나로 통합하는 상호 연계성을 구현했다. 그리고 과거의 중국 황제들처럼 마오쩌둥도 학자 겸 관료들을 동원하여 이념적 원칙을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지만, 마오쩌둥 시절의 학자 겸 관료들은 유교 경전을 공부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마오주의의 주요 저작에 관한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 > '''[[시황제]]와 [[수 문제]], [[수 양제]]와 마찬가지로 마오쩌둥도 지나치게 잔인한 방식으로 웅대한 목표를 추구했기 때문에 그가 서거하자마자 역풍이 불었다.''' >----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 타밈 안사리 > 세상에, 이게 무슨 마르크스주의라는 건가. 이건 '''완전히 [[봉건주의]]잖아.''' >---- >- '''[[스탈린]]'''이 [[마오쩌둥]]이 쓴 이론을 읽고 (The Coldest Winter, [[데이비드 핼버스탬]], p.532) 마오이즘은 [[중국공산당]]의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 전략에서 모델을 따왔다. 주로 도시 노동자, 혁명가들로 이루어진 정당(政黨) 중심 혁명을 주장했던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노동자 외에도 [[농민]]과 소수민족을 포섭하려 했던 [[레닌주의]]를 넘어 아예 농촌과 농민을 혁명의 중심으로 삼았다. 마오이즘의 대표적 경향을 따진다면 바로 이 부분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러시아 혁명]]당시의 [[https://ru.wikipedia.org/wiki/%D0%9F%D0%B0%D1%80%D1%82%D0%B8%D1%8F_%D0%BB%D0%B5%D0%B2%D1%8B%D1%85_%D1%81%D0%BE%D1%86%D0%B8%D0%B0%D0%BB%D0%B8%D1%81%D1%82%D0%BE%D0%B2-%D1%80%D0%B5%D0%B2%D0%BE%D0%BB%D1%8E%D1%86%D0%B8%D0%BE%D0%BD%D0%B5%D1%80%D0%BE%D0%B2|좌파 사회혁명당]]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마오주의에서의 목표는 [[파리코뮌]]의 재림, 급진파의 경우는 아예 국가의 전면적인 철폐와 중화코뮌의 설립이였던데 반해서 좌파 사회혁명당은 노동자들의 노동자 공화국 (비(非)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의) 설립이 목표였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1920년대 혁명 투쟁 과정에서 형성되어 '''[[정강산 투쟁]]''', [[중화소비에트공화국]], '''[[대장정]]''', [[국공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바뀌었으며 [[문화대혁명]] 이후 당내는 물론 전국적으로 급진 좌파들이 일소되며 국가주의적 사회주의로 바뀌었다. 급진좌파는 [[파리코뮌]] 모델을 넘어서서 아예 국가의 전면적인 철폐를 통한 중화코뮌의 설립을 시도했던 이들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조직이 후난성에서 조직한 ‘후난성 프롤레타리아계급 혁명파 대연합위원회’(省無聯)이며, 이 조직의 활동 강령을 이론화한 글이 양시광(楊曦光)의 대표적 논설 <중국은 어디로 가는가(楊曦光, 1968)> 였다. 양시광은 중국에서 관료계급이 형성되었으며, 홍색자본가 계급의 대표자를 [[저우언라이]] 총리로 규정하고, 당이 주도하여 건립된 혁명위원회 대신 이에 대항해 파리코뮌 모델과 국가장치 파괴 테제에 입각해 ‘중화코뮌’을 건립하여야 한다고까지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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