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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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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폼페이우스의 죽음과 클레오파트라 7세와의 밀회 ==== 폼페이우스가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패배하자 동방 속주들이 카이사르 편으로 돌아섰고 카이사르는 그라에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에게 3개 군단을 맡겨 동방 속주를 수습하도록 하였다. 동방 속주마저 돌아서자 폼페이우스는 시리아 속주로 향하려던 생각을 버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북아프리카로 가서 재기를 도모하고자 우선 이집트로 향했다. 당시 이집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예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지배하고 있었고 폼페이우스는 BC 55년 이집트 내전에 개입하여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복위를 도운 적이 있었다. BC 51년에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죽고 그의 어린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누나인 클레오파트라 7세와 결혼하여 공동통치자로 즉위한 상태였으나 폼페이우스는 여전히 이집트가 자신을 지원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9월 28일 폼페이우스가 도착하자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부하들이 폼페이우스를 살해하고 만다. 폼페이우스를 추적하여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의 참수된 머리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리아에 머무는 동안 이집트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클레오파트라 7세 사이에 권력다툼이 발생했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카이사르의 세력을 이용하여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카이사르에게 접근했고 이에 카이사르는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클레오파트라 7세가 공동통치자로 이집트를 지배하도록 중재했다. 이에 반발한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병력이 적은 카이사르를 공격하였고 이에 카이사르는 동방 속주에 파견보낸 도미티우스의 3개 군단 중 2개 군단을 이집트로 차출했다.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버티는 동안 지원병이 도착했고 결국 BC 47년 3월 27일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군대는 패배하고 프톨레마이오스 13세도 도망치다가 익사하고 말았다. 이후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 7세와 2달 동안 나일강을 유람하는 등 연인관계로 발전했고 나중에 진짜인지 의심스러운 카이사르의 아들 카이사리온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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