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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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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르살루스 전투의 결정적 승리 ==== 폼페이우스는 디라키움 공방전의 대승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를 뒤쫓지 않고 여전히 소극적 태도를 일관했다. 이러한 폼페이우스의 소극적 태도 덕분에 카이사르는 테살리아를 손쉽게 장악하였고 흩어진 병력을 모으면서 재기를 도모했다. 뒤늦게 폼페이우스도 추격을 시작하면서 디라키움 공방전의 2달 뒤인 8월 9일에 파르살루스 평원에서 2번째 대결이 벌어지게 되었다.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카이사르 군은 약 22,000명이었고 폼페이우스 군은 그 2배가 넘는 45,000명이었다.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의 우측면을 집중공격하기 위해 정예기병 7천기를 좌익에 배치하고 그 지휘를 티투스 라비에누스에게 맡겼다. 라비에누스는 갈리아 전쟁 당시 카이사르의 부하로 참전하였으나 내전이 시작되자 폼페이우스 측으로 전향한 상태였다. 이에 대항하여 카이사르 역시 자신의 우측면이 취약한 것을 눈치채고 갈리아 전쟁 당시부터 활약한 고참 병력을 우익의 기병 뒤에 배치하고 카이사르 자신도 우측면에 위치하였다. 파르살루스 전투가 시작되자 처음에는 폼페이우스의 예상대로 카이사르의 우익 기병대를 손쉽게 물리쳤다. 그러나 그 배후에 대기하고 있던 카이사르의 고참 병사들은 당황하지 않고 반격에 나섰다. 이에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의 중장보병으로 하여금 먼 거리를 달리게 하여 지치도록 만든 후 역습에 나서고자 하였으나 7년간 카이사르와 함께 갈리아의 수많은 전장을 누빈 카이사르의 고참 병사들은 스스로 진격을 멈춘 후 호흡과 전열을 가다듬은 뒤 재차 돌격에 나섰다. 이에 폼페이우스가 기병대를 투입하였으나 이번에도 카이사르의 고참 병사들은 기병을 막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킨 뒤 배후의 다른 카이사르 군과 함께 포위해버렸다. 이로서 폼페이우스가 처음에 계획하였던 기병대를 좌익에 집중하여 카이사르 군의 배후를 돌아서 공격하는 전술이 봉쇄되고 말았다. 초반 열세를 딪고 우익의 공방전에서 승리를 거둔 카이사르 군은 그대로 폼페이우스 군의 좌익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미 폼페이우스의 좌익 기병대가 모두 괴멸된 상태였고 카이사르의 고참 병사들이 교묘하게 폼페이우스 군의 오른쪽 배후로 돌아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전황이 점점 폼페이우스 군에게 불리해져 갔다. 결정적으로 카이사르가 최후방에 남겨 둔 예비병력까지 투입하자 폼페이우스 군도 더이상 버티지 못했다. 이미 오랜 전투를 벌이며 지칠데로 지친 폼페이우스 군으로는 후방에서 대기하며 힘을 비축한 카이사르의 예비병력을 당해내지 못한 것이었다. 결국 폼페이우스도 견디지 못하고 라리사로 달아났다. 폼페이우스 군은 15,000명의 전사자가 발생했으나 카이사르 군의 피해는 200명에 불과할 정도로 카이사르의 대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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