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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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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서방 황제 등극 ==== 로마 제국의 서방은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의 세력으로 분할된 상태에서 콘스탄티누스가 막센티우스의 아버지인 막시미아누스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적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 중에서 먼저 행동을 개시한 것은 콘스탄티누스였다. 콘스탄티누스는 AD 311년 동방의 정제인 리키니우스와 동맹을 맺어 막센티우스의 반란을 토벌한다는 명분을 얻은 후 AD 312년 4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하였다. 막센티우스의 병력 총 10만명에 비해 병력 숫자는 적었지만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는 로마 제국의 최전선 중 하나인 라인강을 지키던 정예병으로 실전 경험이 풍부하였다. 또한 이탈리아 북부의 요충지인 토리노와 베로나를 점령한 뒤 살인과 약탈, 방화 등을 금지시키면서 민심까지 얻었다. 결국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의 도시들이 별다른 전투없이 항복하기 시작했고 이에 막센티우스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서면서 10월 28일 로마 북부의 밀비우스 다리에서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밀비우스 다리 전투가 벌어지기 전날 콘스탄티누스의 꿈 속에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그리스 문자인 '라바룸'('카이'(Χ)와 '로'(Ρ)를 겹친 모양(☧))이 나타났고 "이 표시로 이기리라"라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 전설의 사실여부를 떠나서 전투가 시작되자 막센티우스는 테베레 강변에 배수진을 펼쳤지만 전투경험이 풍부한 콘스탄티누스군의 공격에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막센티우스는 로마로 후퇴하여 농성전을 펼치기로 결심하였으나 밀비우스 다리는 대병력이 한꺼번에 퇴각하기에는 너무 좁았다. 수많은 말과 병사들이 다리에서 떨어졌고 막센티우스도 강물에 떨어져 익사했다. 콘스탄티누스는 강물에서 막센티우스를 건져낸 뒤 그의 목을 잘라 장대에 걸고 로마로 입성하였다. 본래 로마시민과 원로원은 막센티우스를 지지했었지만 이제는 서둘러 콘스탄티누스를 정제로 추대하였고 로마인끼리의 내전에서는 축조된 적이 없는 개선문을 세우기로 결의까지 하였다. 이로서 콘스탄티누스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되어 로마 제국 서방의 유일한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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