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밥위키
최근 변경
최근 토론
특수 기능
파일 올리기
작성이 필요한 문서
고립된 문서
고립된 분류
분류가 되지 않은 문서
편집된 지 오래된 문서
내용이 짧은 문서
내용이 긴 문서
차단 내역
RandomPage
라이선스
IP 사용자
216.73.216.107
설정
다크 모드로 전환
로그인
서버 점검 공지
|
개인정보 처리방침 개정 안내
로마 제국/역사
(r1 문단 편집)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베스파시아누스의 거병 ==== 베스파시아누스는 동명의 아들인 티투스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와 함께 유대반란 진압에 나섰다. 장남 티투스는 클라우디우스의 친아들 브리타니쿠스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동고동락하며 자랐는데, 네로에게 브리타니쿠스가 독살될때 함께 정신을 잃었던 과거가 있었다. 그렇지만 티투스는 네로에게 찍히지 않아, 성인이 된 이후 브리타니아와 게르마니아에서 복무하면서 많은 군무 경험을 쌓았다.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는 AD 67년 봄에 불과 몇 주 만에 갈릴리를 장악하고 AD 68년이 되자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 왕국의 대부분의 영토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AD 68년 6월 네로가 죽자 전투를 중단하고 로마의 정황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베스파시아누스는 새로운 황제 갈바를 인정하고 티투스를 축하사절로 보냈지만 티투스는 로마에 도착하기도 전인 AD 69년 1월 갈바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대로 아버지에게 되돌아왔다. 그리고 로마에서 오토와 비텔리우스 사이의 내전이 벌어지자 베스타시아누스 자신도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조용히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기 시작했다. AD 69년 4월 오토가 패배하여 죽고 비텔리우스가 즉위하였으나 거듭된 실정으로 인기가 떨어지자 AD 69년 7월 베스타시아누스가 마침내 거병하였다. 베스파시아누스의 거병에 대해 함께 유대 전쟁을 치르던 베스파시아누스 휘하의 로마 군단은 물론 시리아와 이집트에 주둔 중이던 로마 군단도 지지를 선언하였다. 베스파시아누스는 군사적 전공을 위해 유대 전쟁을 재개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시작했고 이후 아들인 티투스에게 유대 전쟁의 지휘권을 일임하고 베스파시아누스 자신은 로마의 주요 곡물 수입지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향하여 로마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였다. 또한 자신을 따르기로 한 시리아의 속주 총독인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를 발칸반도의 디라키움(지금의 알바니아 두러스)에 파견하여 그곳의 함대를 손에 넣도록 하였다. 그러던 중 AD 69년 8월에 도나우 강에 주둔 중인 5개 군단까지 베스파시아누스의 지지를 선언하고 도나우 강 군단장 중 하나인 안토니우스 프리무스가 이탈리아로 진군하여 비텔리우스의 라인강 군단을 물리치고 12월 20일 로마에 입성했다. 비텔리우스는 퇴위를 간청했으나 결국 살해당하며 AD 69년에 죽은 마지막 황제가 되었고 최종적으로 베스파시아스가 황제가 되면서 로마는 AD 69년 한 해동안 황제가 4명이나 교체되는 진통 끝에 겨우 혼란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
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 BY-NC-SA 2.0 KR
또는
기타 라이선스 (문서에 명시된 경우)
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216.73.216.107)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사용자
216.73.216.107
IP 사용자
로그인
회원가입
최근 변경
[불러오는 중...]
최근 토론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