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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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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삼두정치의 붕괴 === BC 56년 루카 회담에 따라 BC 55년 집정관으로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가 나란히 선출되고 이듬해 전직 집정관 신분으로 폼페이우스는 히스파니아로, 크라수스는 시리아로 각각 원하는 속주의 총독이 되었다. 그러나 제1차 삼두정치 일원 중 스파르타쿠스 반란의 진압 이외에는 별다른 군사적 업적이 없던 크라수스가 동방의 파르티아 원정을 야심차게 추진하였으나 BC 53년 카르하이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고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하여 제1차 삼두정치의 한 축이 무너져버렸고 더욱이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를 연결해주던 카이사르의 딸이자 폼페이우스의 아내인 율리아가 이미 전년도에 병사한 상태였기 때문에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결혼동맹도 깨져 있었다. 비록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퇴역병사에 대한 토지지급을 승인하지 않은 원로원에 대한 반감으로 카이사르의 제1차 삼두정치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술라의 원로원 중심 통치체제를 옹호하는 벌족파이고 갈리아 전쟁을 통해 얻은 카이사르의 군사적 명성을 시기하고 있었다. 집정관 임기 종료 후 폼페이우스는 히스파니아의 속주 총독으로 임명받았으면서도 부임지로 가지 않고 로마에 머물며 부관을 통해 대리통치를 하고 있었고 그 사이 원로원 보수파에 설득당해 점차 카이사르를 견제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여 제1차 삼두정치는 붕괴되었고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마침내 충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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