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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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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갈등과 화해 ==== 필리피 전투 이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레피두스는 새로운 협정을 맺었다. 이에 따라 안토니우스는 갈리아를, 옥타비아누스는 이탈리아 반도와 히스파니아를, 레피두스는 북아프리카 속주를 통치하도록 합의되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옛 연인인 클레오파트라 7세가 반 카이사르파를 지원했다는 혐의로 소환하였지만 곧 클레오파트라 7세와 사랑에 빠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아예 눌러 앉아 버렸다. 그러던 중 BC 40년 초 안토니우스의 동생인 루키우스 안토니우스와 안토니우스의 세번째 부인인 풀비아가 공모하여 옥타비아누스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는 일이 벌어졌고 옥타비아누스는 루키우스 안토니우스와 공모한 혐의로 로마 원로원 의원 300명을 대거 숙청해버렸다. 이때 죽은 폼페이우스의 아들인 섹스투스 폼페이우스가 시칠리아를 중심으로 해적단을 조직하여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이탈리아 반도로 향하는 식량수송을 방해하고 있었는데 옥타비아누스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섹스투스폼페이우스의 처제인 연상의 이혼녀 [[스크리보니아]]와 결혼하고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에게 사르데냐, 코르시카, 시칠리아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넘기는 조건으로 휴전을 맺었다. 이집트에 머물던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자신의 동생과 부인이 축출되고 자신의 파벌 사람들이 대거 숙청된 사실과 옥타비아누스가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 굴욕적인 휴전을 맺었다는 사실에 분노하였다. 이때 오리엔트 지방에서 파르티아 제국이 로마의 시리아 속주를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지만 안토니우스는 먼저 옥타비아누스를 응징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에 옥타비아누스 역시 이탈리아의 브룬디시움에 병력을 집결시켰지만 내전이 다시 시작되는 것을 우려한 양 군의 백인대장들도 종군을 거부하였다. 때마침 안토니우스의 아내인 풀비아가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에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의 누나 옥타비아와 재혼하는 조건으로 극적인 화해가 성사되었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는 로마 속주를 다시 나누기로 하고 옥타비아누스가 서방 속주를, 안토니우스가 시리아를 비롯한 동방 속주를 통치하는 대신에 레피두스에게는 북아프리카 속주가 그대로 맡기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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