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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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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사르의 암살 ==== 이제 명실상부하게 로마의 1인 지배자가 된 카이사르에게 종신 독재관을 비롯한 각종 특권과 특전이 부여되었다. 카이사르는 각종 사회정책(식민·간척·항만·도로건설·구제사업 등)을 추진하고 달력을 율리우스력으로 개정하는 등의 개혁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BC 53년 크라수스가 파르티아인에게 당했던 참패를 당했던 카르하이 전투를 설욕하고자 대규모 원정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카이사르 반대파를 자극했다. 카이사르에게 이미 많은 권력이 집중되어 많은 사람들이 왕위를 탐내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었는데 카이사르가 또다시 엄청난 군사적 명성을 얻게 된다면 카이사르가 왕위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결국 원로원의 공화정 옹호파는 마르쿠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롱기누스를 앞세워 BC 44년 3월 15일 원로원 회의장에서 카이사르를 암살하고 만다. 카이사르가 죽은 다음날인 3월 16일에 암살자의 대표인 마르쿠스 브루투스가 카이사르 암살의 정당성을 호소했으나 성난 카이사르파 군중들에게 공격당했다. 이때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의 유언장을 공개했는데 유언장에는 당시 18세인 카이사르의 조카, 옥타비아누스가 제1후계자로 지목되어 있었고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또 다른 브루투스인 데키무스 브루투스가 제2후계자로 적혀 있었다. 군중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암살파와 카이사르파는 종신독재관 지위를 제외한 나머지 카이사르의 정책은 모두 그대로 이어받기로 합의하였고 3월 18일 카이사르는 화장되었다. 그러나 유해는 때마침 내린 비에 모두 씻겨 내려갔기 때문에 카이사르는 무덤조차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카이사르는 역사 속에서 퇴장하고 이제 로마는 카이사르가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 약관의 소년에 불과한 옥타비아누스를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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