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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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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폰투스 정벌과 폼페이우스 잔당 토벌 ==== 카이사르가 이집트에서 밀회를 즐기는 사이 아나톨리아 반도의 폰투스가 로마 내전의 혼란을 틈타 세력 확대에 나섰다. 처음에는 시리아 속주를 맡은 도미티우스가 폰투스 군을 공격하였으나 카이사르가 이집트 내란에 개입하면서 2개 군단을 차출했기 때문에 결국 폰투스 군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에 BC 47년 6월 이에 카이사르가 직접 아나톨리아 반도로 향했고 BC 47년 6월 [[파르나케스 2세]]의 폰투스 군을 [[젤라 전투]]에서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 카이사르는 로마 원로원에 보고하는 승전보고서에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라는 또 하나의 명언을 남겼다. 폼페이우스가 죽은 이후에도 북아프리카는 여전히 카이사르에 반기를 들고 있었다. 북아프리카 속주에는 폼페이우스의 장인 [[메텔루스 스키피오]]와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그리고 히스파니아에서 카르사이에게 거짓약속을 한 후 폼페이우스에게 합류했던 페트레이우스와 아프라니우스가 있었다. 이들은 10개 군단에 달하는 병력과 누미디아 왕국의 지원까지 받고 있었지만 BC 46년 4월 탑수스 전투에서 카이사르는 누미디아군이 도착하기 이전에 이들을 모두 괴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즉각 누미디아로 처들어 가 누미디아 왕국도 멸망시켰다. 탑수스 전투에서 패배한 메텔루스 스키피오와 페트레이우스, 카토는 자살하고 누미디아의 왕인 유바 1세도 자결을 선택했으며 아프라니우스는 도적의 습격을 받아 살해당했다. 북아프리카의 폼페이우스 잔당을 모두 토벌한 카이사르는 로마로 되돌아 가 개선식을 거행했지만 이듬해 히스파니아에서 탑수스 전투에서 살아남은 폼페이우스의 두 아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와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그리고 카이사르의 부하장수였다가 폼페이우스 편으로 돌아섰던 라비에누스가 폼페이우스의 잔당을 모아 봉기를 일으켰다. 이에 카이사르는 다시 히스파니아 원정을 떠났고 문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 폼페이우스의 잔당을 모두 토벌했다. 그나이우스와 라비에누스는 전사하였고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만이 겨우 시칠리아로 도망칠 수 있었다. 탑수스 전투를 마지막으로 마침내 내전은 끝났고 로마는 이제 카이사르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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