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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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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옐친 시대 === 소련 시절에는 국부의 능으로 추앙받은 곳이지만 소련 말기의 혼란과 소련 붕괴를 거쳐 [[러시아 연방]]으로 체제가 전환되면서 그에 대한 존경심이 점차 식어 가자 레닌을 이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특히 소련을 악마화하고 부정하려던 [[보리스 옐친]]은 레닌 영묘를 없애고 싶어해 집권 직후인 1991년에 보존 및 관리를 위한 정부 예산 지원을 중단했고 소련 시절 최고지도자들이 레닌 영묘에 올라 [[승리의 날]] 기념식에서 [[열병식]] 사열을 받는 전통도 한사코 거부하다가 1995년에야 레닌이라는 이름을 가리고 올랐다. 소련 몰락 이후 주류 종교로 자리잡은 [[러시아 정교회]]도 시신을 전시하는 것이 교리에 어긋나므로 레닌을 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단 레닌은 유아세례를 받았으니 나중에 [[냉담자]]가 되었다고 해도 러시아 정교회 신자라고 주장할 수 있었고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시신 매장만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한창 매장 여론이 강했을 때는 러시아 연방 산하지만 [[불교]]가 국교인 [[칼미키야 공화국]]에서 레닌의 친할머니가 [[칼미크인]]이라는 점을 들어 레닌을 땅 속에 묻느니 레닌 묘를 자국으로 옮기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레닌은 위인을 꼽으려면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인물이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에서도 이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영묘에 대한 예산 지원이 끊겼을 때도 오직 민간의 기부금만으로 유지비를 모두 충당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레닌을 당의 시조로 삼는 [[러시아 연방 공산당]], 영묘를 랜드마크로 삼는 관광업계, 그리고 레닌을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선전해 세계 각지의 고객을 끌어모으던 시신 보존 업체의 반대도 만만찮았다. 소련 시절부터 이미 관광 명소가 되었고 현재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데다 [[엠버밍|시신을 보존하는]] 전문 업체의 입장에서는 시신을 보존하는 기술이 어떤지에 대한 광고도 되기 때문에[* 실제로 [[김일성|북]][[김정일|한]]이나 [[호치민|베트남]] 등지의 엠버밍을 연간 15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받으면서 진행하는 러시아 엠버밍 회사 입장에선 아주 쏠쏠한 사업이다.] 관광업계와 시신 보존 업체에서 레닌의 이장을 반대했다. 여담으로 옐친이나 [[반공주의]]적인 러시아인들은 레닌이 어머니 묘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유언장의 내용[* 다만 원본은 공개되지 않았다.]은 공개되어 있으며([[https://sourcebooks.fordham.edu/mod/lenin-testament.asp|영어 번역판]]) 정치적 내용만 있을 뿐 자신의 장례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다. 다만 레닌의 아내 [[나데즈다 크룹스카야]]는 스탈린의 레닌 사체 보존 결정에 반대하며 평소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과 거리를 두고 소박한 생활을 지향했던 레닌은 어머니 옆에 묻히고 싶어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그녀가 쓴 편지나 동료들의 회고를 통해 드러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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