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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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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탈린의 보존 결정 == ||<tablewidth=450><tablealign=right><nopad> [[파일:external/static.guim.co.uk/Lenins-embalmed-corpse-007.jpg|width=100%]]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color=#ffd700> '''레닌의 유해''' || 1924년 1월 21일 레닌이 사망하자 그의 유해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수많은 추모의 물결이 몇 주 동안 한겨울의 추위를 뚫고 몰려왔다. 장례식이 치러진 때가 겨울이었기 때문에 시신이 부패하지 않았다. 레닌이 죽자 그의 시신을 보존해서 죽은 자를 후대에 [[부활]]시켜야 한다는 전보가 소련 정부에 쇄도했다. 여기에 영감을 받은 후임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다른 혁명동지들, 레닌의 아내이자 혁명 영웅인 [[나데즈다 크룹스카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엠버밍]]을 결정했다. 한술 더 떠 [[레프 트로츠키]]나 다른 고참 [[볼셰비키]]들도 대부분 레닌의 엠버밍을 반대했다. 특히 [[기독교]]([[러시아 정교회]])의 전통이 강한 러시아에서는 성당에 안치된 성인이나 성자의 유해가 숭배의 대상이 되었는데 트로츠키는 레닌의 유해를 보존하면 이런 미신적인 관습이 과학을 표방하는 [[마르크스주의]] 국가에서 재연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전직 신부 지망생이었던 스탈린은 대중이 숭배 대상을 찾는 경향을 잘 알고 있었고 레닌을 우상화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레닌의 제자를 자처한 자신의 집권 기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탈린이 어렸을 때 배운 신학적 지식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독교식으로 교리화했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지적된다.] 그리하여 레닌을 존경하는 일반 대중의 여론을 핑계로 레닌 유해 영구 보존을 결정했다. 시신 보존 작업을 주도한 사람들은 [[모스크바 대학교]] 생화학연구가 일리야 즈바르스키와 우크라이나 하리코프 의대의 해부학자 블라디미르 비오로비요프였다. [clearf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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