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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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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 ||<tablewidth=100%><nopad> [[파일:GrandKremlin6_edited.jpg|width=100%]] || ||<bgcolor=#FFCD01,#FFCD01> '''[[크렘린|{{{#000 크렘린}}}]]의 알현실 '안드레옙스키 홀' ''' || 러시아는 건국 이래 1905년까지 황제의 1인 독재, 즉 전제정(Самодержавие)을 유지했다. 황제는 [[입헌군주정]]과는 궤를 달리하는 권력과 부를 소유했으며, [[러시아 정교회]]의 협력 덕분에 서유럽의 군주들보다 훨씬 더 막강한 종교적 권위를 휘둘렀고 웬만한 유럽 국가들에 비교해 보았을 때 황권이 강력했다.[* 러시아 제국은 전통적으로 내부정쟁이 치열한 국가로서 전제주의를 지향하는 황권과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귀족권 중에서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 체제가 극과 극으로 바뀌었다. [[모스크바 대공국]], [[루스 차르국]] 시대를 포함하여 실질적으로 명확하게 전제정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시기는 생각보다 적다. 그 거대한 영토에서 일사불란하게 전 인민을 통제하고 군주의 의지를 강요하기란 불가능했다. 따라서 전제정은 실질적인 정치 체제보다 추상적인 정치 이념에 가까운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러시아식 전제정은 [[모스크바 대공국]]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온 전통으로, [[이반 3세]]가 [[동로마 제국]]을 모방해 전제군주제의 틀을 잡았으며 이후 17세기와 18세기를 거쳐 [[절대 왕정]]의 형태로 발전했다. 1613년에 [[혼란 시대]]를 종결하고 새로 즉위한 [[미하일 1세]] 시대까지만 해도 아직 [[로마노프 가문|로마노프 왕조]]의 힘이 약했기에 유력자들이 모인 의회에 해당하는 [[젬스키 소보르]]를 매년 개회했다. 그러다가 1682년 즉위한 [[표트르 1세]]부터 본격적인 황권 강화가 시작되어 귀족의회인 [[보야르]] 두마를 폐지한 뒤 대신 서구적인 관료제로 이를 대체시켰다. 게다가 [[정교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군주의 종교적 권위를 뒷받침하도록 했다. 표트르 1세의 급격한 서구화와 황권 강화는 필연적으로 귀족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때문에 그를 이은 [[예카테리나 2세]]는 '귀족에 대한 헌장'을 발표해 귀족들이 이전 세대 동안 쌓아온 모든 특권과 재산을 인정하고 '도시에 대한 헌장'을 연달아 발표하며 도시마다 자치 시정부를 구성토록 허락하기도 했다. 이같은 조치는 귀족층의 반발을 무마하는 효과를 냈으나 동시에 여전히 실질적인 권력은 황제와 국가 관료체계에게 있었다. 덕분에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 절대주의의 정점'이라 불릴만한 권력을 얻어낼 수 있었다. 후임 황제들은 이같은 권력을 이용해 [[알렉산드르 1세]]가 국가평의회(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сове́т)를 설치, 일종의 입법기구를 만들었으며 [[알렉산드르 2세]]는 지방자치정부인 젬스트보와 독자적인 [[사법부]]를 설치했다. 하지만 여전히 1905년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러시아에는 국가 단위의 제대로 된 입법부도,[* 국가평의회는 어디까지나 황제의 조언기구로 실질적인 입법부로 보기에는 그 한계가 명확했다.] [[헌법]]은 당연히 존재하지도 않았다. ||<tablewidth=100%><nopad> [[파일:tumblr_m8znghHJcV1qjuryuo1_r1_1280.jpg|width=100%]] || ||<bgcolor=#FFCD01,#FFCD01> '''[[겨울궁전|{{{#000 겨울궁전}}}]]에서 열린 무도회 ''' || 황제는 국가 권위의 화신 그 자체로서 국가와 신민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전제군권을 휘둘렀다. 황제는 '전러시아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이 정한 법률의 범위 안에서, 자신이 정한 국가기관과 인물들에게, 자신이 정한만큼의 권한만을 부여했다. 황제는 은유적으로 '''국부(國父)'''라 불렸으며 모든 신민들은 자애로운 황제의 자녀들이었다. [[러시아 정교회]] 역시 이와 같은 인식을 앞장서서 퍼뜨렸는데 대표적으로 이 당시 정교회 기도문들만 봐도 "царь-батюшка", 즉 '사랑하는 아버지 차르'라는 표현이 흔히 등장한다. 서유럽에서 [[정교분리]]가 일어나던 와중에 러시아에서는 오히려 [[정교일치]]가 이뤄졌다. 황제는 다른 유럽 군주들에 비해 훨씬 높은 비율의 토지와 기업들을 소유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미하일 카투코프]], [[니콜라이 카람진]] 등 저명한 작가들조차 러시아에는 강력한 군주가 필요하며 서구의 '''[[공화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러시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유럽과 미국의 역사학자들은 [[냉전]] 시기 이를 근거로 러시아 제국의 후진적이고 전제적인 통치 체제 때문에 전체주의적인 [[소련]]이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독재와 세습, 맹목적인 복종이라는 특성이 [[러시아인]]의 유전자에 깊게 남아 소련이라는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했다고 여겼던 것. 허나 이들의 관점은 러시아인이 미개하고 '아시아적'인 [[타타르]]의 피를 이었기 때문이라는 [[인종차별]]적 시선을 그대로 담고 있었으며, 현재는 합리적인 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1905년 제1차 러시아혁명 이후 [[국가두마]]가 창설되면서 두마 군주정(Думская монархия)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두마 군주정은 상당히 정의하기 어려운 [[혼종]]이었다. 유럽인들은 당시 러시아를 '독재자 황제 아래의 입헌군주정'이라고 썼는데, 당시 러시아의 [[과도기]]적인 체제를 상징하는 표현. 1905년 10월 이전까지 러시아의 법에는 황제의 권력이 '전제적이고 무제한이다'라 쓰였으나 이후에는 '무제한'이라는 표현은 삭제되었다. 황제는 여전히 [[국가두마]]가 통과시킨 모든 법률을 무제한으로 무력화할 수 있었지만[* 이는 국가두마에 진출하면서 혁명세력을 지원하는 [[입헌민주당(러시아)|입헌민주당]], 혁명을 목적으로 국가두마를 이용하기 위해 진출한 [[사회혁명당(러시아)|사회혁명당]] 등을 유사시 찍어누르기 위함이었다.][* 입헌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정도로 (비록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지만) 우호적이었던 [[표트르 스톨리핀]]이 혁명세력과의 커넥션을 끊으라고 발언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황제 마음대로 법률을 통과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여서 모두 선출된 의회의 의결을 거쳐야만 했다. 당시 러시아는 '절대군주가 자체적으로 본인의 권력을 제한하는 군주정'으로써, 내내 이를 계속 군주의 재량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법으로 못박아 제한할 것인지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으며 결국 [[러시아 혁명]]으로 종결된다. 개혁주의 움직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러시아 지도부 대부분은 [[보수주의]] 성향이 매우 짙었다.''' 러시아 보수주의는 근본적으로 지식인 계층의 [[비합리주의|반이성주의]], 정교회의 종교주의, [[농노]]와 지주들로 이루어진 토지사회의 전통주의, 군대 장교들의 군국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반이성주의를 선호하던 러시아는 당시 서유럽에 몰아닥치던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낭만주의]]를 불편해했다. '진보'라는 명백히 [[자유주의]]적인 이념은 러시아에 들어와서는 '기존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최신 기술만의 도입'이라는 보수적 근대화 개념으로 격하됐다. 일부 러시아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발전된 근대 기술의 도입이 독재정치의 도구로 전락할 것을 우려했고 [[알렉산드르 게르첸]]은 황제 독재 하의 러시아가 '통신 기술을 가진 [[칭기즈 칸]]'이 되어버릴까봐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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