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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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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호 == 동로마에서는 통상적으로 자국을 가리켜 '로마니아(Romania, 로마인의 땅)'[* 의역하면 '로마 국(國)'이라는 의미이다. 이탈리아반도에 존재하는 '로마 시(市)'와의 혼동 여지를 없애려고 이런 명명법이 쓰였다. 의미도 영문 표기법도 [[루마니아]]와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에 현대에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Rhomania라고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Romania로 검색하면 루마니아밖에 안 나온다.], 보다 공식적으로는 '임페리움 로마눔(Imperium Romanum, 로마의 통치권)'[* 의역하자면 '로마 황제의 영토', 곧 '로마 제국'이 된다.]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당대부터 이미 이 나라는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비잔티움]](비잔틴)'[*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즉 현 [[이스탄불]]의 옛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다.], '동로마'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는데[* '당대에는 방위 없이 로마라고만 불렸으며, 동로마는 후세의 역사학자들이 붙인 명칭이다'라고 오해되기도 하지만 '동로마'는 당대에도 엄연히 쓰인 이름이다. 가령 10세기 편찬된 백과사전 ⟪수다⟫{{{-2 ''Souda''}}}에서는 5세기 역사가인 프리스쿠스가 ⟪비잔티움의 역사⟫{{{-2 ''Istoria Byzantiakē''}}}라는 역사서를 저술했다고 언급한다. 프리스코스가 정말로 이런 제목을 썼는지는 검증이 필요하지만, 아무리 늦게 잡아도 10세기엔 이 나라의 별칭으로서 '비잔티움'의 용례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프리스코스의 원본은 현전하지 않으나, [[콘스탄티노스 7세]] 포르피로예니토스{{{-2 (Kōnstantinos VII Porphyrogennētos, 재위 913-59년)}}}의 ⟪역사서의 발췌⟫{{{-2 ''Excerpta Historica''}}}에 남아있는 내용을 보면, ⟪비잔티움의 역사⟫{{{-2 ''Istoria Byzantiakē''}}}는 로마 제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로마인을 '동로마인'과 '서로마인'으로 구별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고대에 멸망한 서로마와 동로마를 구별해야 할 실질적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마 제국이 4세기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제국의 중심지가 라틴 문명권에서 그리스 문명권으로 이전되었고, 중심지 변화에 따른 시대 구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관습적 구별법은 한국사에서 475년 한성 함락 이전의 한성백제와 이후의 웅진백제 및 사비백제를 구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중국/역사|중국사]]의 [[북송]]과 [[남송]]([[카이펑]]→[[항저우]]) 및 [[서진]]과 [[동진]]([[장안]]→[[난징|건강]]), [[독일/역사|독일사]]의 [[서독]]과 [[독일]]([[본(독일)|본]]→[[베를린]])[* 공식적으로는 분단시대나 통일 이후나 같은 독일연방공화국이고, 통일은 동부지방의 주들(=동독)이 연방에 각자 추가 가입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러시아/역사|러시아사]]의 [[루스 차르국]]과 [[러시아 제국]]([[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도 이와 유사한 경우이다. 로마 제국의 동서 분열은 엄밀히 말하면 '''제국의 분열'''이 아니라 '''통치권{{{-2 ''Imperium''}}}의 분할'''로 봐야 정확하다. 통상 제국{{{-2 (帝國)}}}이라는 한자어로 번역되는 Imperium은 1차적으로는 '공간적 의미의 나라'가 아니라 '통치권, 지배, 권세' 등을 의미한다.[* 이는 통상 왕국{{{-2 (王國)}}}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Basileia도 마찬가지다. '왕의 다스림', '왕정', '왕권'을 의미한다.] 곧 로마市가 서부의 통치권을 거머쥐고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동부의 통치권을 거머쥐어도 '제국'이 두 개 있는 게 아니라 '통치권'이 두 개 있는 것일 뿐이다. 오늘날 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의 구분과 관련한 오해는 '''현대의 국가 관념이나 동아시아의 종묘사직 개념을 로마에 적용'''해서 생각하는데서 발생한다. 유럽 문명은 도시{{{-2 ''Polis''}}} 중심의 문명이고, 여기서 도시 로마가 다른 도시들을 자기 영역으로 만든 것이 '로마의 통치권'{{{-2 ''Imperium Romanum''}}}이다. 그렇기에 로마시의 이 통치권을 둘로 쪼개더라도 똑같은 '로마의 통치권'인 것이다.[[https://m.dcinside.com/board/alternative_history/799485?headid=220&recommend=1|알기 쉽게 정리된 글]][* 후대의 [[신성 로마 제국]] 역시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 역덕후들의 희화화와 달리 신성 로마 제국은 스스로를 로마國과 분명하게 구별하였고, [[카롤루스 대제]]와 [[오토 1세]]는 스스로를 로마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대공위시대]]를 거쳐 [[막시밀리안 1세(신성 로마 제국)|막시밀리안 1세]] 대에 들어서는 아예 [[독일인]]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동로마는 신성 로마 제국에 대해 "당신들은 로마인입니다"라고 인정한 게 아니라 "(아니꼽지만) 당신들은 서방의 통치권을 가졌습니다"라고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당대 로마인들에게 동서로마의 분할은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둘로 나누어 복수의 황제가 다스린 개념이었고, 그들에게 분할은 서기 3세기 [[발레리아누스]], [[갈리에누스]] 부자의 협동황제 개념을 발전시킨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사두정치]]의 연장선이었다. 쉽게 말하면, 서기 4세기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 때 로마법과 국제상 물리적으로 드넓은 제국을 복수의 황제가 각자 임페리움을 통해 협치 개념으로 복수의 정부로 통치하는 통치방법이었다. 따라서 395년 동서로마 분할로 알려진 시기 이후의 속주관할권 재편 역시 별개의 국가가 이를 놓고 협상을 벌인 국제적 외교가 아니었고, 로마 제국은 15세기까지 존속했다. 이런 이유로 정확히 어떤 시기에 '비잔티움 제국'이 성립되었는지 말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로마 제국과 같은 국가를 학문상 개념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짐작되듯, 학설과 관점에 따라 동로마 제국이라는 정부가 언제 생겼다고 말하기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애당초 기원전 753년 건국된 로마 제국이 동쪽에서 수도만 바뀐 채 살아있는 상황에서 '멸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건국됨' 같은 정석적인 루트가 아니다. 그럼에도 학문상 비잔티움 제국, 동로마 제국으로 구분해 설명할 경우, 대체적으로는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년 ~ 337년)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인정하고 330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창건하고 수도로 삼은 이후의 제국을 다수설, 통설적 개념으로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특정 시점을 잡아 특정하게 확대 해석하여 동일 여부를 따진다면 굳이 [[아르카디우스]]를 시작으로 하는 '동로마'만 부각할 이유가 없다. 있다면 그건 그저 편의적인 역사 해석을 위함을 다시 유념해야 하겠다. 어차피 모든 고중세 국가들은 종교를 국가 이념의 일부로 중시할 수밖에 없으며 그건 로마든 동로마든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중심 이념이 다신교나 [[폰티펙스 막시무스]] 지위에서 기독교와 기독교 주교들을 보다 중시하는 걸로 이행하는 현상은 그저 어떤 나라가 역사를 이어나가면서 겪은 변화지, 그걸로 동일 여부까지 가릴 수는 없다. 굳이 나눠서 분리하자면 물론 기원전 753년~아르카디우스 이전 로마와 아르카디우스 이후~1453년 로마가 같은 실체로 볼 수는 없으나 그런 정도 구분과 분리라면 이런저런 계기들을 모아서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는 것이다. 테오도시우스 이래로 다신교 이념이 국가 중심에서 밀려났다지만 이는 그전부터 계속 진행되던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융합 및 상호 영향에서 비롯된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지 테오도시우스 혼자서 바꾼 게 아니며, 이 이후에도 대놓고 다신교 이념의 추종자임을 표방하던 학자들이 적어도 7세기까지는 여럿 있었고 별 탄압 없이 학문활동을 계속 했으며, 민간에서도 다신교 신앙 특유의 미신적 관념이나 신앙 습속들은 무려 11세기까지도 여전히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카이사르~티베리우스 시기를 거친 황제정 전환 이전과 이후, 그리고 디오클레티아누스~콘스탄티우스 2세 시기를 거친 전제정 전환 이전과 이후가 중요한 구분과 계기가 되듯, 종교 정책의 변화가 중요한 분수령인 건 사실이다.] 한편 별칭으로 [[그리스 제국]]이란 일종의 비하어도 주로 서방쪽에서 타자화해서 비하할 때 몇 번 쓰이긴 했다.[* 근현대에는 그리스 민족주의에 따라 그리스인 스스로도 많이 쓴다.] 동서분열 이후에는 어쨌든 제국 내에서 그리스인의 비중이 가장 컸기 때문. [[소련]]보고 [[러시아]]라고 많이 불렀던 것과 비슷한 셈이었다. 다만 이건 동서 분할 이전에 로마인들이 서로를 가끔은 일종의 지역감정으로 타자화하던 추세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해야 한다. 이미 벌써 오현제 시기에도 이탈리아 본토인들이 자기네가 제국 동방보다는 진짜 로마인에 가깝다는 인식을 몇 번 내비쳤고, 한편 역으로 안티오키아 같은 제국 동방 대도시 시민들은 페르시아나 게르만 변경 지대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자기네가 더 로마인이라고 자부했었다. 혹은 선조가 몇십 년 혹은 백여 년 전 제국 서부에서 이주해온 바 있는 주민들도 주변 토박이들에게 그러했던 사례가 있었다. 따라서 이미 로마 제국의 쇠퇴 이전에 있었던 지역감정이 제국의 강역 변화와 함께 일종의 나라 간 감정으로도 비화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한국 넷상에서 로마가 아니라는 비아냥을 듣는 신성 로마 제국도 사실 바로 그렇기에, 고대 로마의 후예지만 [[국가승계|국가 계승성]]이 동로마 제국에게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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