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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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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권의 인식 ==== 이슬람 세력은 동로마의 강역을 '빌라드 알 룸(Bilād al-Rūm, بلاد الروم)', 즉 '로마인들의 땅'으로, 지중해(특히 동지중해)를 '바흐르 알 룸(Baḥr al-Rūm)' 즉 '로마의 바다'로 불렀다. '비잔티움 = 로마' 라는 인식에 기반하여 [[만지케르트 전투]]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1077년 아나톨리아에 새 나라를 세운 셀주크 일족은 과거 이곳이 룸(Rum, 로마)의 땅이었음을 이유로 자신들의 나라를 [[룸 술탄국]]으로 명명했다.[* 이러한 명명법은 서유럽인들이 세운 [[라틴 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라틴 제국의 정식 명칭이 로마니아 제국(Imperium Romaniae), 다시 말해서 '로마 땅의 제국'이었다.] 그리고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오스만의 [[메흐메트 2세]]는 자신이 Kaysar-i Rum, 즉 '''로마의 황제'''[* 서유럽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로마 제국의 정통성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스만이 로마 제국과는 관계 없는 이슬람 국가였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였으며, 이를 시작으로 이후의 오스만 술탄들은 '카이세리 룸'을 자신의 타이틀에 포함시켰다. [[이븐 바투타]]도 자신이 방문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룸'의 수도라고 했고 그곳 사람들을 '로마인'이라고 기록했다. 발칸 반도 지역은 로마인의 땅이란 뜻인 '루멜리아'라고 불렀다. 오스만 제국 말기 그리스가 독립해 나간 뒤에는 독립국가의 그리스인들은 '유난(Yunan)', 제국 치하에 남은 그리스인들은 '룸(Rum)'이라고 불러 구분하기도 했다. 이런 용법은 현대 [[튀르키예]]에서도 통용된다. 1923년 인구교환 이후에도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과 인근 섬에 잔류한 그리스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정통성 논쟁과 관련하여 튀르크 세력은 비당사자 위치에 있다. '스스로 로마라고 주장한 동로마'나 '그리스 운운하며 동로마의 정통성 흠집 내기에 바빴던 서유럽' 모두 로마의 정통성 논쟁과 관련한 직접 당사자였기에 저마다의 주장에 객관성이 흠결될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비당사자였던 튀르크 세력의 판단은 이러한 논쟁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있었다. 만약 이 때 이슬람 세력마저 동로마를 '고대 로마 멸망 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새로 들어선 별개의 나라'라고 인식해버렸다면, 동로마의 로마 정통성 주장은 누구 하나 인정하는 이 없이 자기 혼자서만 그리 우기는 '자뻑'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쉴레이만 1세]]는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차지했다는 정통성을 내세워 동로마 제국의 후계국임을 자처했다. 정치적, 영토상으로는 시작부터 1453년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동로마 제국의 영토를 침식하며 적대, 경쟁한 무슬림 튀르크계 지배자들 입장에서도 정치적 대립과 별개로 당시 이슬람권과 기독교권을 초월한 보편적인 지중해권의 정치 사상사적 관점에서 '''동로마의 로마성'''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무슬림 정복제국, 특히 오스만국 입장에서도 본인들은 '''로마의 정복자'''라는 타이틀이 훨씬 더 위엄쩔지 당대에는 지리적, 문화언어학적 명칭에 불과했던 '''그리스'''의 정복자 따윈 영 폼이 안 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로마의 로마성을 계승하는 관점에서 오스만 제국은 16세기 까지도 각종 외교 문서에서 서방, 특히 신성 로마 제국의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 황제들을 '''[[빈(오스트리아)|빈]]에 위치한 [[독일왕]]''' 따위로 부르며 절대 황제로 인정하지 않다가 국력상으로 오스만 제국이 더이상 일방적인 군사적 우위에 있지 않다는게 확인된 1606년, 15년간의 對오스트리아 장기 전쟁을 끝낸 [[지트바토로크 조약]]에서야 '''독일의 황제'''(Padishah)라 부르게 되었다. 이슬람 세계의 로마에 대한 관점은 아예 이슬람 경전 [[꾸란]]의 30번째 수라, "수라 알 룸(الروم)", 즉 '로마장(The Romans)'[* [[수라]]는 [[꾸란]]의 각 장(chapter, 章)이다.] 2~4절에서 613년 안티오키아 전투에서 사산조 페르시아에게 동로마가 크게 패배한 것을 두고 '로마는 가까운 곳에서 패배하였다. 그러나 이 패배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10년 이내에 다시 승리할 것이다. 알라께서는 과거와 미래를 모두 통치하시는 바, 신자들은 이날 크게 기뻐하리라(The Romans are vanquished, In a nearby land, and they, after being vanquished, shall overcome, Within a few years. Allah's is the command before and after; and on that day the believers shall rejoice)'고 자신들의 경전에 '(서방에서 소위 말하는 고전 시대의) 로마 제국 = 동로마 제국'이라는 역사관을 명시해 놓았다.[* 참고로 과거 무료로 배포되던 한국어판 번역본에서는 번역자의 배경 지식 부족으로 2절이 “로마는 망하였으되”로 번역되어 있다. 애초에 해당 번역본은 “파라오족”같은 정체 불명의 어휘가 튀어나와서 읽는 사람들 뒷목을 잡게 하는 일이 많다.] 이와 같은 사례는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로마 황제 [[이라클리오스]]에게 보낸 편지 및 이를 기록한 하디스에서도 발견된다. 628년 메카의 쿠라이시 부족과 휴전조약(후다이비야(Hudaybiyyah) 조약)을 체결한 무함마드는 곧이어 이슬람교로의 개종을 권유하는 편지를 주변의 통치자들에게 보냈는데, 여기에 이라클리오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편지에서 무함마드는 당대의 상식대로 이라클리오스를 '로마'의 군주라고 지칭했다.[* 현대에는 이러한 사료들을 '비잔티움'이라고 번역한다.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역사왜곡일 수 있다. 다만 비잔티움이라는 단어 자체는 학계에서 쓰는 용어이기 때문에 마냥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당대에 쓰지 않았던 단어이니 고증 오류라 주장할 수는 있다.] 하디스에서는 당시 아랍인들이 동로마 사람들을 로마인, 혹은 “바니 알 아스파르”[* 동로마 제국의 유명한 장수 중 한 명 아스파르의 이름에서 따온 어휘로 아스파르의 부족이라는 뜻이다.]라고 칭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https://muflihun.com/bukhari/1/7|#]] 14세기에 활동한 이슬람 역사 학자 [[이븐 카시르]]가 쓴 쿠란의 주석본(타프시르) 및 역사서에도 동로마를 '로마'로, 동로마인들을 '로마인'으로 지칭했다. 여러 타프시르들 중 이슬람교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이븐 카시르의 타프시르는 로마인들이 어떻게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해 놓았다. 메시아(예수)의 출현 이후 300년간 로마인들은 그리스 지역의 종교를 믿었다는 점, 콘스탄티누스 1세가 모후 헬레나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를 공인했다는 점[*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이븐 카시르의 관점은 개신교 학자들이 가진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와 흡사했다. 이븐 카시르는 자신의 역사서 및 탑시르에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은 정치적인 목적이 강했으며 개종 이후에도 기독교와 이교 이중 신앙을 가졌다.”는 식의 서술을 남겼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세움과 더불어 전국 각지에 성당들을 건립했다는 점 등. 뒤이어서는 로마의 '카이사르' 이라클리오스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사산조 페르시아의 [[호스로 2세]]를 물리치게 되었는지도 자세히 서술해 놓았는데, 여기서 이븐 카시르는 이라클리오스를 '가장 지혜롭고 단호하고 기민한 인물'이라며 훌륭한 리더십으로 로마인들을 다스렸다고 크게 호평하였다. 다만 물론 이슬람인들이 전반적으로 동로마 제국을 로마 제국 자체로 보면서 어느 정도 경외심을 갖고 있었고, 바로 그 이유로 이슬람 제국이 여러 차례 치명적인 대패를 당하기 전까진 로마 제국을 완전 멸망시키는 걸 단념하지 않았던 것이며 오스만 제국은 바로 그 로마 제국을 멸망시켰기에 훗날 죽자꾸나 싸우게 되는 맘루크 왕조에게서도 찬사를 받긴 했어도, '''꼭 긍정적인 이유로만 그렇게 본 건 아니었다.''' 우마미야조부터 아바스조까지 문명, 과학, 기술, 인문학 모든 분야에서 최정점에 다다라 있었던 이슬람 제국의 이슬람교도들은 고대 그리스 학문을 이룬 그리스인들에게 상당한 존경심이 있었으나, 다름 아닌 이슬람 제국에게 여러 차례 패배해서 지중해 일각으로 몰려 경제든 학문이든 과학기술이든 꽤나 쇠퇴하여 오히려 최신 기술을 이슬람 제국에게 수입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동로마 제국은 '''과거의 위대한 그리스와 무관한, 공학 기술이나 수공예, 군사과학 분야만큼은 쓸만하지만 그 외 분야에선 무지한 '로마인들'''이라고 생각했다. 동로마 제국이 경제나 문화적 면에서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고 이슬람 제국 자기네도 쪼개져서 칼리파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10세기부터는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으나, 적어도 7~9세기에 이슬람 제국이 동로마 제국 사람들을 '로마인'으로 일컬을 때는 '너무나도 학문적 역량이 딸려 그리스로 볼 수가 없는, 과거에 제국이었던 건 인정하지만 그 외엔 인정할 게 없는 사람들'이란 뜻도 깔려 있었다. '''즉 한편으로는 욕하는 뜻이었다.''' 물론 동로마 제국 사람들은 서구에 대해 말할 때와는 반대로 본인들이 그리스인의 후손이기도 하다고 열심히 주장했으나, 이슬람 식자층은 이런 주장에 좀처럼 설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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