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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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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콤니노스]] [[중흥]]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800080><width=39%> [[파일:알렉시오스 1세 -3.jpg|width=100%]] ||<width=29%> [[파일:0nqOlmR.jpg|width=100%]] ||<width=3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nuel_I_Comnenus.jpg|width=100%]] || || [[알렉시오스 1세]] || [[요안니스 2세]] || [[마누일 1세]]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ffffff,#1c1d1f><tablealign=center> || ||[[파일:동로마 터키 1173.png|width=100%]]|| || 마누일 대제 시기 동로마 제국 최대 강역.[* [[킬리키아]]의 경우 주요 도시들에 총독 휘하 수비대를 배치하고 그외 지역은 현지 아르메니아계 루펜 왕가에게 맡기는 식으로 직간접적으로 지배하였다. 기타 동로마의 영역에 들어온 [[헝가리 왕국]], [[룸 술탄국]], [[예루살렘 왕국]] 등은 마누일 1세의 탁월한 외교감각으로 손에 넣은 곳들이다.] || 만치케르트 전투의 패배와 그 이후로 동로마 제국은 상당한 영토를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이때 제국이 영구적으로 잃어버린 지역은 아나톨리아 내륙지방이었던 데 반해 당시 인구와 부의 집중지대는 아나톨리아 해안 지대였으므로 제국이 단숨에 멸망에 이를 만큼의 손실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이때의 영토 상실이 동로마 제국에게 엄청난 타격이었음은 자명하다. 실제로 제국의 경제적·군사적 핵심 영토는 아나톨리아였기도 하고.] 오히려 최근의 연구자들은 아나톨리아 내륙을 잃어버린 '''12세기 콤니노스 왕조의 치세를 동로마 제국 경제력의 절정'''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후 콤니노스 왕조가 행운과 노력을 통해 바실리오스 시기 이상의 경제력과 70%에 달하는 영토를 확보하였고, 외교적으로도 유럽, 근동, 지중해 연안 지대에 막대한 문화적.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알렉시오스 1세]]는 제국을 위협하던 노르만인을 용병을 투입하며 격퇴해 내었고 1차 십자군을 교묘히 이용하여 아나톨리아의 서부를 회복하였다. 또한 재정 개혁으로 1070 ~ 1080년대에 막장 상태였던 제국의 경제를 복구하였다. 그 아들 [[요안니스 2세]]는 발칸을 넘보던 [[헝가리 왕국]]을 격파하였고 북방 국경을 위협하던 [[페체네그]]족은 [[베로이아 전투]]에서 아주 소멸시켜 버렸으며 [[다니슈멘드|다니슈멘드 왕조]]를 패재시켰다. 뒤를 이은 [[마누일 대제]]는 [[시르미움 전투]]에서 헝가리 군을 대패시켰고 한때 남이탈리아를 회복하였으며 [[달마티아]]와 [[킬리키아]]를 정복하였다. 십자군 국가들 가운데 하나인 [[안티오크 공국]]은 제국에게 복속되었다. [[마누일 대제]]는 십자군의 보호자를 자처하였고, 그의 치세에 제국은 외교적으로도 큰 성과를 거두어 [[십자군 국가]]들과 [[헝가리 왕국]] 등은 제국의 보호국이 되어 제국에게 저자세를 취했고, 서방 세계는 [[동로마 제국]]을 (이단적인 존재일지언정) 기독교 세계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마누일 대제의 치세에 제국은 1054년 동서 교회 분열 이후로 양 교회의 통합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으며 이 시기 제국은 [[신성 로마 제국]]과 함께 기독교 세계의 양대 강대국으로써 군림했다. 그러나 1176년 [[미리오케팔론 전투]]의 패배는 군사적으로는 큰 피해가 아니었음에도 제국군의 위상을 크게 실추시켰고, 외교적으로 큰 피해를 불러왔다. 서방 세계는 제국의 실력에 의심을 품게 되었고, 제국의 이탈리아에서의 영향력이 소멸되었다. 또한 [[룸 술탄국]]과 [[십자군 국가]]들은 서서히 제국의 질서 내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마누일 대제는 1180년까지 그러한 피해를 나름대로 잘 수습하였고, 영토 확장은 멈추었지만 경제력 만큼은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이후 최대 규모였고, 마누일 대제의 노력으로 일시적으로나마 튀르크는 아나톨리아 해안지대를 공격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아나톨리아 내륙은 예로부터 군사 귀족의 근거지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황제권에 대드는 귀찮은 존재들이었지만 과거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 맞서 제국을 지키던 이들이었다. 거기에 유목민족인 튀르크족들은 점령한 곳들을 초토화시켰다.[* 몽골이 초창기 세력을 확장할 때 점령지를 어떻게 했는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잘 정비된 도로와 요새들은 대부분 흔적도 남지 않았고, 결국 단 몇십년 만에 아나톨리아 내륙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단기적으로는 물론 장기적으로도 아나톨리아 내륙의 상실은 제국에게 군사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가져왔다. 당장 군사적인 면만 보더라도 내륙부의 상실로 인해 과거에는 내륙부의 험준한 지형과 짧은 방어선의 도움을 받아 경제적으로 방어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제국은 부유한 아나톨리아 해안부를 방어하려면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많은 군대를 보유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므로 이때부터 아나톨리아는 점점 심해지는 약탈로 제국의 중심부의 위치에서 서서히 밀려나게 되었으며, 유럽의 영토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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