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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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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7년, 유럽의 방파제 === [[파일:Byzantine_Navy.jpg|width=850]] 717년, [[우마이야 왕조]]는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동로마 제국을 아예 끝장내기 위해 수천 척의 전함과 10만이 넘는 대병력을 동원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했다]].[* 이는 당시 이슬람 제국이 총력전으로 나가서 동원한 최대 병력이었다. 반대로 보자면 그 강대했던 이슬람 제국이 빈사상태의 동로마 제국을 잠재적인 위협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전투는 치열하게 이어져 제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으나, 뛰어난 명장인 황제 [[레온 3세]](Λέων Γ´ 재위 717~741년)의 지휘와 혹독한 겨울 날씨, 불가리아의 지원과 [[그리스의 불]]로 알려진 액체화약의 위력으로 718년에 우마이야 군대를 격퇴할 수 있었다. 이 전쟁에는 732년 프랑크 왕국이 우마이야 군의 침공을 격퇴한 [[투르-푸아티에 전투]]보다 더 중요한 의의가 있는데, 대중적인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동로마 제국이 이때 무너졌다면 그대로 유럽 세계가 이슬람 세력에 잠식됐을 가능성까지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전투의 승리로 절체절명의 위기의 시대는 끝났고 생존이 보장되었다. 제국이 이만한 위기에 다시 빠지게 되는 것은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기독교권을 지켜내게 되었다. 이 전투의 의미를 동시대인으로서 아주 잘 이해하고 있던, 프랑크 왕국을 비롯한 여러 서유럽의 기독교 국가들도 사절을 파견하여 축하한 것은 아주 의미가 크다. 심지어는 당시 동로마 제국과 혈전을 벌이던 [[불가리아 제1제국]]마저도, 동로마 제국보다 더 강력한 이슬람 제국이 발칸에 모습을 드러낼 경우 [[순망치한|자신들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동로마 제국 측에 섰었다. 732년 [[투르 푸아티에 전투|프랑크 원정]]에서도 실패하고 국력을 너무 소모한 나머지 힘이 빠진 [[우마이야 왕조]]는 740년 [[아크로이논 전투]]에서도 레온 3세에게 크게 패했고, 결국 750년 반란으로 [[우마이야 왕조]]는 멸망하고[* 완전히 망한 건 아니고 왕손 한 명이 간신히 탈출해서 [[알안달루스]]에 [[후우마이야 왕조]]를 세워 할거하였다.], [[아바스 왕조]]로 교체되었는데 아바스는 종전 우마이야 시절의 수도였던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메소포타미아(이라크)의 [[나자프]](쿠파)로 바로 천도하였으며, 오래지 않아 머지 않은 곳에 [[바그다드]]를 세워서 수도로 삼은 왕조였다. 즉 무게 중심이 동쪽으로 옮겨간 것이 되어서, 서방에 있는 동로마에 대한 대대적인 침공은 끝나게 된다.[* 이 왕조교체 이후 얼마 안 있다가 이슬람 제국 기준으로 동쪽 끝의 중앙아시아에서 [[탈라스 전투]]가 일어났다.] 하지만 아예 전쟁이 끝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아바스 왕조는 동로마 제국의 완전한 정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 결과 제국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주기 위해 국경 지대에 대한 유격전으로 전략을 바꾸게 된다. 그 결과 [[아나톨리아]]와 시리아 일대는 이슬람군의 기습과 동로마 제국군의 반격으로 아수라장이 된다. 영어 위키백과에 [[https://en.wikipedia.org/wiki/Abbasid_invasion_of_Asia_Minor_(782)|Abbasid invasion of Asia Minor (782)]], [[https://en.wikipedia.org/wiki/Abbasid_invasion_of_Asia_Minor_(806)|Abbasid invasion of Asia Minor (806)]], [[https://en.wikipedia.org/wiki/Abbasid_invasion_of_Asia_Minor_(862)|Abbasid invasion of Asia Minor (862)]] 등의 문서가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아래는 이 시기 우마이야 및 아바스-동로마 간 국경지대 지도이다. [[파일:350px-Arab-Byzantine_frontier_zone.svg.png|width=75%]] 이후 레온 3세는 [[아나톨리아]]의 테마를 재정비했고, 레온 3세와 그의 후계자 [[콘스탄티노스 5세]]의 치세를 기점으로 제국의 경제와 영토는 최저점을 찍고[* 게르만, 슬라브, 이슬람의 침입으로 제국 본토는 [[타우루스 산맥]] 이서와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그리스 해안가 일부의 영토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로마는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1세기 가량 제국을 소진시킬 소모적인 논쟁에 돌입하였다. 일단 이슬람의 대규모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자, 레온 3세는 국내 문제에 집중해 동방 교회의 '성상 공경'을 문제시하여 '성상 파괴령(726)'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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