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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회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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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창기 (창당 ~ 1914) === 1863년 [[페르디난트 라살]]이 창당한 전독일노동자동맹과 1869년 아우구스트 베벨과 [[빌헬름 리프크네히트]]가 만든 독일 사회민주노동당 등이 원류다. 1875년 이 두단체를 합병하여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창당한 것이 현 독일 사회민주당의 시작이다. 이 시기 사회민주당은 정치조직으로서 산업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정당을 표방하면서 정당의 틀을 갖춰나가는 중이었고, 노동운동과 친화적이었다.[* 당과 노동조합과의 관계는 노동자운동에 친화적인 좌파 내의 굉장히 오래된 논쟁이다. 일반적 좌파이론으로 보면, 당이 주로 정치투쟁을 통한 사회변혁을 지향한다면,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삶의 조건과 이를 지키기 위한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한 경제투쟁을 지향한다. 당은 정치조직이고 노동조합은 경제조직이다. 반사회주의자법이 있을 당시 사회민주당이 군주국가에서 벗어난 법치국가, 의회의 인정, 정당의 합법화 등을 위해 투쟁했다면,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의 합법화, 임금,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관리감독과 노동시간 준수를 위한 노동입법 등을 주장했다. 물론 사회민주당은 노동자계급에 기반한 노동자계급의 정당을 표방했고,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용했고 이를 입법화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노동조합과 친화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민주당의 주요 간부들은 노동조합보다는 주로 야학이라 할 수 있는 노동자교양협회를 통해 주로 조직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박근갑, 2009. <복지국가 만들기 - 독일 사회민주주주의 기원>, 현대의지성 참고.] 그러나 사민당 출신들이 주도한 황제 [[빌헬름 1세]] 암살 시도가 잇달아 발생하자 1878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 의해 反사회주의법이라고도 불리는 사회주의 과잉 제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며 12년간 제도권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편법적으로만 참여했다. [[1890년]] 총선에서 대약진하고 이 선거에서 패한 비스마르크가 물러 난 뒤엔 [[빌헬름 2세]]에 의해 반사회주의법이 폐기되면서 오늘날의 당명인 독일 사회민주당으로 개칭했으며, [[마르크스주의]]를 당의 핵심 이념 및 지향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사회민주당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사회민주당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 흔히 [[공산주의]]가 [[마르크스-레닌주의]]로 호칭되지만 인적 계보로만 본다면 사회민주당이 마르크스의 직계이고 후의 [[소련]] [[볼셰비키]], [[독일 공산당]]이나 [[동독]]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좌파당(독일)|좌파당]]은 오히려 방계에 가깝다. 당시 정치적 포지션은 극좌였다. 이후 제국의회 선거에서 꾸준히 주요정당의 자리를 차지했다. 당의 성향은 제도권 진출을 통한 [[사회주의]] 성립이라는 수정론적 관점으로 바뀌게 된다. 사민당은 주요 강령은 급진적이었지만, 당시 당권을 가진 지도자들은 현실적인 이유에서 온건한 노선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기 사민당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카를 카우츠키]]는 '우리 당은 혁명적이지만 혁명은 하지 않는다.'라고 냉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독일 제국]]의 선거제도가 현재 [[프랑스]]처럼 결선투표제인 데다가 계급투표 성향이 강했고, 도시지역에 의석수가 인구에 비해 덜 배정되어 있어서 집권할 정도의 득표율을 얻지는 못하였다. 여전히 당의 핵심이념은 [[마르크스주의]] 였지만, 독일 사회민주당은 적극적, 폭력적 활동과 세계적인 [[공산주의]]의 확산을 주도하기보다는 내부에서 사회주의의 기반을 갖추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마르크스적인 역사 발전론에 따라 산업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국가에서는 자연스럽게 마르크스주의가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 그러한 이론의 토대였는데, 이는 이후에 [[자본주의]]의 '자동 붕괴론'으로 이름 지어졌다. 독일에서 제1야당의 자리에 오른 후 1912년 총선에서 34.8%의 득표율을 얻어 드디어 처음으로 원내 1당이 되는 쾌거를 이룩했다. 정권에서는 배제되었지만 중도 자유주의 세력과 합치면 의회 과반수를 넘기기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전쟁 수행을 위한 독일의 국채 발행을 지지하는 데서 시작하여 독일의 전쟁수행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4%B1%EB%82%B4%ED%8F%89%ED%99%94%EC%A0%95%EC%B9%98|#]][* 프랑스에서도 비슷하게 프랑스의 세계대전 진행을 돕기 위해 노동계급이 파업과 혁명 시도 등을 하지 않는다는 국가와 노동계급 간의 "[[https://fr.wikipedia.org/wiki/Union_sacr%C3%A9e_(mouvement)|신성동맹]]"이 체결되었다.] '(아직 자본주의의 후진국인) 러시아 따위에게 독일이 무너지면 (자본주의의 최종 단계에 더 가까운, 즉 공산주의에 더 가까운) 독일 내 사회주의의 기반도 붕괴할 것'이라는 논리였지만, 한편으로는 [[국제주의]]를 지향하는 [[마르크스주의]]의 기초를 흔드는 것이었다. 결국 [[인터내셔널#s-3.2|제2인터내셔널]]은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완전히 붕괴된다. 이로 인해 당 내부에서는 반전을 주장한 [[로자 룩셈부르크]] 등의 '소수파'가 [[독일 공산당]]으로 떨어져 나갔다.[* 러시아, 프랑스를 포함한 대다수의 유럽 국가에서도 좌파진영은 너나 할 것 없이 찬전여론에 적극 동참했다. 예외가 당시에 러시아 좌파 내에서도 소수파에 불과했던 레닌 그룹 정도였고, [[러시아 혁명]]으로 굴욕적인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수용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전쟁 중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게 되면서, 러시아 공산세력은 "[[인터내셔널#s-3.3|제3인터내셔널]]"로 계승을 주장하게 된다. [[블라디미르 레닌]]이 [[소련]]을 차린 후 [[코민테른]](국제 공산주의자회)을 차리면서, 공산주의의 주도권은 소비에트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오시프 스탈린]]의 집권과 [[독소전쟁]]을 통해 코민테른 역시 러시아의 [[일국사회주의]]와 [[스탈린주의]]를 획일적으로 [[위성국]]에 하달하는 위계조직이 된다. [[현실사회주의]]는 결과적으로 국가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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