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밥위키
최근 변경
최근 토론
특수 기능
파일 올리기
작성이 필요한 문서
고립된 문서
고립된 분류
분류가 되지 않은 문서
편집된 지 오래된 문서
내용이 짧은 문서
내용이 긴 문서
차단 내역
RandomPage
라이선스
IP 사용자
216.73.216.107
설정
다크 모드로 전환
로그인
개인정보 처리방침 개정 안내
독일 국방군의 전쟁범죄
(r1 문단 편집)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결론 == ||<tablebordercolor=#000><tablewidth=400><nopad> [[파일:external/www.gerhard-richter.com/9127.jpg|width=100%]] || ||<bgcolor=#000> '''{{{#fff 루디 삼촌}}}''' {{{-2 {{{#fff ''Onkel Rudi''}}} }}} [br]'''{{{-3 {{{#fff [[게르하르트 리히터]], 1965}}} }}}''' || [[파일:ausstellung-verbrechen-der-wehrmacht_foto_LEMO-F-6-189_uls.jpg]] ▲ 1997년 2월 26일, [[뮌헨]] 시립 미술관(Rathausgalarie)에서 시민들이 "국방군 범죄 전시회(Wehrmachtausstellung)"를 관람하고 있다. > 수백만의 국방군 병사들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범죄에 연루되었습니다. 친위대와 비교하자면, 25만 명의 친위대원들이 홀로코스트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죠. 독일에서는 모든 논의가 홀로코스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동부전선에서 소련인 2,600만 명 이상을 죽인 1,000만 명의 국방군 병사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훨씬 꺼립니다. '''모든 독일인들의 친지 중 서너 또는 너덧 명은 바로 이 일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 > Millionen Wehrmachtssoldaten waren an den Verbrechen der Wehrmacht beteiligt - im Unterschied zu den etwa 250.000 SS-Leuten, die für den Holocaust verantwortlich waren. Mit dem Gedenken an den Holocaust hat es in Deutschland funktioniert. Aber mit den zehn Millionen Soldaten an der Ostfront, die mehr als 26 Millionen Sowjets umgebracht haben, war der Widerstand in der Gesellschaft sehr viel größer. Jeder hatte drei, vier, fünf Verwandte, die daran beteiligt waren. > ---- > - 독일 사학자 한네스 헤어(Hannes Heer), [[도이체 벨레]]와의 2020년 인터뷰에서.[[https://www.dw.com/de/die-wehrmacht-und-der-holocaust-auf-freiem-feld/a-53354087|#]]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국방군은 히틀러의 범죄에 크게 기여했다. 일반적으로 나치 이념과 반유대주의, 그리고 슬라브인과 볼셰비키에 대한 적개심은 독일 사회 뿐만 아니라 국방군에도 고루 퍼져 있었다. 국방군 수뇌부는 이러한 적개심과 인종주의에 기반한 교육과 학살 명령을 휘하 장병들에게 지시했다. 주요 학살 사건에서 국방군 부대들과 지휘관들은 필요하다면 친위대나 경찰, 그리고 지역민들과 협조하였다. 그리고 유대인 학살은 나치즘과 반유대주의 확신범에 의해서만 수행된 것이 아니므로 설사 나치즘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직간접적으로 홀로코스트와 학살에 관여되었다. 여기에는 전쟁 속에서 급진화되는 국가와 군대라는 위계 질서, 그리고 불확실성이 짙게 깔린 전장에서의 군사 논리 등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유들이 작용했다. 물론 징병된 1700만명의 국방군 장병들의 인식과 범죄 가담 스펙트럼을 완전히 일반화할 수는 없다. 라이헤나우 원수의 강조 명령을 폐기했던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처럼 학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도 존재했고, 위조 신분증을 발급해 유대인들을 구해내다 걸려 처형당한 [[안톤 슈미트]] 중사처럼 학살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도 있으며, 유대인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친위대원들과 충돌까지 불사했던 [[https://en.m.wikipedia.org/wiki/Max_Liedtke|막스 리트케]] 소령과 [[https://en.m.wikipedia.org/wiki/Albert_Battel|알베르트 바텔]] 중위 같은 극소수의 저항자도 분명 있었다. [[빌헬름 카나리스]] 대장과 같이 실제 집단 학살 수행에 깊게 관여되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을 구해내고 증거를 수집하며 학살을 막으려 시도했던 복합적인 인물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양심을 지킨 소수의 위대한 반례나 종합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전체 국방군의 혐의를 뒤집을 수는 없다. [[독일 연방군]] 군사사연구소와 프라이부르크 대학 소속 군사사학자 [[https://de.wikipedia.org/wiki/Wolfram_Wette|볼프람 베테(Wolfram Wette)]]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는 국방군 복무자 1700만명 중 구조적으로 저항한 사례는 단 100건 뿐이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장병들의 반발과 저항은 대부분 학살 소식을 전하며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그런 그들조차 방관자로서의 책임까지 벗을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국방군과 다수의 장병들 역시 전쟁 범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
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 BY-NC-SA 2.0 KR
또는
기타 라이선스 (문서에 명시된 경우)
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216.73.216.107)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사용자
216.73.216.107
IP 사용자
로그인
회원가입
최근 변경
[불러오는 중...]
최근 토론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