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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방군의 전쟁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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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의 기타 인물 및 부대 ===== >1937년 2월, 그는 히틀러유켄트 단장인 [[발두어 폰 시라흐]]의 연락장교로 임명되었다. 비록 그가 나치당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나치당의 강령을 가르치는 2개의 9일간 교육과정에 참석했으며 두 과정 모두 '유대인 문제'에 대한 수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정서는 강력하게 히틀러를 지지하는 쪽이었으며, 그 연장선에서 나치당에도 동조했다. >---- >위대한 3인의 전사들 3장 p97 [[에르빈 롬멜]]의 경우에는 서유럽과 아프리카에서만 싸웠기에 이런 '절멸전쟁에 대한 책임'은 다른 장군들과 비교해 아주 적었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롬멜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몰랐다는 롬멜 신화의 주장 역시 매우 설득력이 적다. [[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en/article/erwin-rommel|홀로코스트 백과사전]]에서는 롬멜에 대해 확고한 나치즘 신념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으나, 다른 국방군 장성들처럼 나치와 공통의 목적을 공유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롬멜 전기를 다룬 위대한 3인의 전사들에서도 롬멜이 히틀러 유켄트 단장의 연락장교로 임명되며 장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대인 탄압의 정당성을 포함한 나치즘 사상 교육을 이수하였던 점, 1934년 힌덴부르크 사망 이후 국방군 장교들에게 히틀러가 요구한 충성 맹세에서 거리낌 없어했다는 점에서 롬멜이 나치즘에 반대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의 아프리카 군단에도 '[[아인자츠그루펜|친위특무대]] 이집트'가 배속되었으며, 그들의 목적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세력을 절멸시키는 것이었다. 비록 고작 24명밖에 되지 않았던데다 대부분의 특무대원들은 그리스를 떠난 적이 없으나, 당장 자신의 부대에 특무대가 명목상으로나마 배치된 마당에 롬멜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몰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당장 특무대 이집트의 사령관은 1941년에 동부전선에서 가스 밴 계획을 최초로 제안했던 사람이기도 했던 발터 라우프 SS대령이었다. 만일 [[버나드 로 몽고메리]]가 제2차 엘 알라마인 전투에서 롬멜을 격파하지 않았으면 친위특무대 이집트는 준비를 바치고 실제로 중동에 파견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그 외 [[하인츠 구데리안]]의 경우에도 홀로코스트 참여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그 역시 전후 자서전에서 극구 부정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육군참모총장]]으로서 학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보인다. 그 외 실제 병력을 지휘하는 병과대장급 이하 장교단은 보다 직접적으로 토벌에 관여된 경우가 많다. 상술한 바그너와 쉥켄도르프 같은 후방지역 사령관들이 그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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