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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방군의 전쟁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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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부집단군 ====== > "모든 전투 행위는 적을 가차 없이 그리고 완전하게 절멸하려는 확고한 의지로 수행되어야 한다. 특히 오늘날 러시아 볼셰비즘 체제를 지지하는 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 ---- > - 1941년 5월, [[에리히 회프너]] 상급대장의 연설. 당시 그는 북부집단군 휘하 제4기갑군 사령관이었다. 볼프람 베테의 《독일국방군》 135p에서 발췌.[* 아이러니하게도 회프너는 1944년 7월 20일 벌어진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참여했다가 처형되었다. 물론 애시당초 암살단의 목표 자체가 히틀러와 친위대를 제거해 서방 연합군과 휴전한 이후 소련과 전쟁을 지속한다였기 때문에 그가 갑자기 개과천선한 건 아니다.] 한편 가장 진격 속도가 빨랐던 북부집단군의 경우 전방 부대들이 집단토벌에 연관된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이 학살에 무관하다는 소리는 전혀 아니다. 발트 3국 지역 주민들 중에서는 친위특무대와 협력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국방군 장병들이 동원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었을 뿐이다. 가령 북부집단군 사령관 [[빌헬름 리터 폰 레프]] 원수는 자신 휘하 후방 지역의 학살을 보고받았음에도 방임했다. 또한 그는 레닌그라드를 포위하고 기근을 유도하는 작전을 입안하였다. 레프는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 900일 간 벌어졌던 끔찍한 참상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북부집단군 휘하의 야전군 사령관이었던 [[에리히 회프너]]와 레프의 후임 사령관인 [[게오르크 폰 퀴힐러]]는 아예 한 술 더 떠 절멸전쟁을 긍정했다. 그들이 휘하 병력들에게 내린 지침들은 라이헤나우 명령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특히 회프너의 경우 무장친위대 제3기갑사단 "토텐코프"가 벌이는 학살을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인물이었으나 정작 그 역시 인종주의적인 명령을 내림으로써 휘하 장병들의 학살을 조장했다. 특무대 A는 전혀 제지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상부에는 북부집단군이 잘 협조한다는 보고까지 올렸을 지경이었다. 가령 1941년의 [[리예파야]] 학살 당시 북부집단군 장병들은 시내에서 벌어진 집단 총살에 깊게 관여되어 있다. 그리고 리예파야에 주둔한 [[독일 해군]] 병력들은 친위특무대와 라트비아인 보조인력들이 해변 사구에서 벌이는 학살을 '관람'했다. 이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독일 해군 중사 라인하르트 비너에 의해 촬영되어, [[https://youtu.be/mroRsZ5ygUY|영상]]으로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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