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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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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 록그룹 sabaton - [[쿠르스크 전투|Panzerkampf]], [[베를린 전투|Attero dominatus]] 등 독소전쟁을 포함해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노래들을 불렀다. * 러-일 합작 애니메이션 제1 부대: 진실의 순간'[* 러시아를 침공하였다가 죽은 [[튜튼 기사단]]원들을 부활시켜 써먹으려는 SS 친위대의 음모와, 이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소련군 비밀기관의 소녀인 나댜의 이야기를 다룬다. 트레일러 영상을 보면 독일군의 이족 보행병기도 나오는 등 여러 편을 기획한 모양인데, 1편의 흥행 성적이 나빠서인지 유령 기사단을 다룬 1편이 나온 이후 현재까지 후속작 소식은 없다. 사실 스토리나 작화 등은 괜찮은데, 다큐멘터리처럼 실사 인터뷰 내용 등을 집어넣는 등 연출이 나쁘다.] * [[버프소녀 오오라]] - 88화에서 '인류역사상 ㅄ같은 결정을 하면 항상 나타나 우는 새' 븟새가 등장하는데, 그때 나온 컷이 히틀러가 '''[[일본을 공격한다|소련을 공격한다.]]'''라고 말하자 창가에서 븟새가 울었다. * 일본의 만화가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작품들 * 잊혀진 병사 (Le soldat oublié) : 프랑스-독일 [[혼혈]]로서 동부전선에 참전했던 독일군 병사 ‘[[기 사예르]]’(처음에는 수송부대로 참전하지만 나중에는 독일의 정예사단이자 전략예비대로 동부전선의 소방수 역할을 한 그로스 도이칠란트 사단으로 들어감)의 수필이다. 당시 동부전선의 처절함이 최악 중의 최악의 상황을 묘사하며 나타낸다.[* 수송 트럭을 타고 가다가 소련 공군의 기총 소사로 바로 옆에 탄 친구를 잃는다든가 분대원이 너무 굶주려서 소련군이 먹다가 남기고 간 삶은 [[감자]]를 먹느라 소련군을 놓치기도 한다. 전선에서 겪는 질병은 덤이다.] 화자는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히는데 다행히도 아버지가 프랑스인이어서 프랑스 재건이라는 암묵적인 명목으로 별다른 재판 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아버지가 프랑스인이라는 [[혼혈]], 작품 시작 부분에는 머리가 검고 곱슬이라는 외모까지 더해져, 독일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동료들에게 무시당하는 모습도 나온다. 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기 사예르는 평범한 독일 병사들과 달리 포로로 잡히어 나름의 파격적인 대우를 받게 된다. 여담으로 2차 대전 후 프랑스군에서 나름의 지옥 훈련을 받는다고 했지만 자신의 입장에서는 동부전선에서 겪은 것들에 비하면 아이들 장난 수준이었다라는 정도로 시니컬하게 쓴다.)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전쟁에 참여했던 소련 여군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풀어낸 '이야기 소설'. 1985년 작품이나 소련 당국이 대조국전쟁의 미화에 거슬린데다 여군에 대한 편견으로 '''"이 책을 읽고 조국을 위해 싸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저열한 사실주의에 물든 더러운 속옷 같은 책"'''이라 비판하며 압박하는 바람에 내용 일부를 잘라내고 출판할 수 있었다. 그 후 소련이 무너지고 2002년에 검열당한 내용을 복구하여 재출간했다. 독소전쟁의 지옥도를 있는 그대로 풀어낸 수작이다. 2015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 폭풍속의 씨앗 - 실제 [[무장친위대]] 참전 병사인 [[헤르베르트 브루네거]]의 회고록. 그가 소속된 3 SS 토텐코프 사단 옹호, 자원 입대 여부 등 문제가 있으나 동부전선의 처절함과 당시 독일군의 상황 등을 훌륭하게 묘사하였다. * 렌드리스 이외에도 스탈린은 서방 연합군이 동부전선에 병력을 파견하여 싸워줄것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미 영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파병을 하지 않았다. M.J. 니콜라스(M.J. nicholas) 같은 개인 단위의 자원병이나 자유 프랑스 공군의 [[노르망디-니에멘|파병이 있었지만]] 그외의 파견은 없었는데 이는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하여 국내의 전쟁 여론이 나락으로 치닫을 것을 우려한 미·영의 우려탓이었다.[* 그에 더해서 영국은 동부전선에 25~30개 사단씩이나 되는 엄청난 병력을 파병할 여건이 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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