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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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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재자들의 우상 === 생전에 우상화를 통해 전국민의 '존경'[* 물론 이 존경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강요에 의한 것인지는 알아서 판단하자.]을 받은 것과 동시에 짐승만도 못한 만행들과 거짓말로 점철된 삶을 살면서도 반세기 가까이 집권하며 절대권력과 최고급 저택, 최고급 음식, 여성 편력, 장수 등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누렸고 죽은 후에도 그의 후손들이 3대째 권력을 세습받으며 대대로 나라를 통치하고 고국에서 비판 여론 하나 없이 무한한 '숭배'를 받고 있다 보니 많은 독재자들이 그를 존경하며 모방하기도 했다. 2차 대전 후 집권한 독재자 중 [[마오쩌둥]], [[가말 압델 나세르]]와 함께 가장 많은 독재자들에게 영감을 준 독재자이자 사실상 '''독재자계의 [[아이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술하듯 북한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최악의 독재국가들인 투르크메니스탄과 에리트레아도 다 북한을 모방하며 독재 체제를 확립할 정도였으며, 짐바브웨와 에리트레아는 독립영웅이던 사람들이 북한에 감명을 받아 아예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자신이 독립시킨 고국을 처참히 망가뜨렸다. 그러나 하단의 독재자 중 장기 집권을 이어가거나 천수를 누린 독재자는 그리 많지 않으며 대다수가 김일성의 독재를 어설프게 따라하다가 처형이나 실각 등의 방식으로 몰락했다. 이렇게 김일성을 따라하다가 망한 독재자들이 많은 것을 본다면, 김일성이 세계의 많은 독재자들 중에서도 독재와 우상화에 가장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던 셈이다. *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루마니아]]): 김일성을 모방한 우상화 정책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며, 심지어 아들 니쿠에게 권력을 세습하려는 시도까지 했으나, 김일성과 다르게 1인 독재를 확립할만한 정치공학적인 능력이 부족했고, 민중봉기로 정권이 붕괴할 모든 여지를 제거하지 못해 끝내 아내인 [[엘레나 차우셰스쿠]]와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 [[로버트 무가베]]([[짐바브웨]]): [[구쿠라훈디]] 학살 때 북한의 지원을 받은 제5여단을 쓸 정도였고, 고위 공무원들은 대통령의 사상을 알기 위해 주체사상을 공부하거나 아예 주체사상을 신봉하기까지 했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주체사상에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829123#home|#]] 국민들이 쫄쫄 굶는 와중에도 김일성에 버금가는 초호화 생일파티를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며, 잠재력이 풍부하던 나라의 경제를 전란 하나없이 미스터리에 가까운 수준으로 망가뜨린 것[* [[짐바브웨 달러]]로 대표되는 시기인, 짐바브웨가 멸망 직전이던 [[2009년]] 기준으로 짐바브웨의 [[취약국가지수]]는 '''전란 하나 없이 [[소말리아]]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역시 북한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 역시 자신만의 1인 독재 체제를 확립하지 못했으며 군부를 적으로 돌린데다[* 독재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은 군대를 자기편으로 만들거나 장악하는 것임에도 군부를 적으로 돌린것만 봐도 무가베가 얼마나 생각이 없었는지 알수 있다.] 독립한 고국을 식민지 시절 이상으로 박살냈다보니 국민 절반 이상이 그를 싫어했으며, 독재자 자리를 물려받을 기반조차 없는 아내 그레이스 무가베에게 별다른 준비도 없이 세습하려다가 [[에머슨 음낭가과]]가 일으킨 쿠데타에 당해서 결국 실각하고 싱가포르에서 사망했다. *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적도 기니]]): 김일성을 '형님'이라고 부르고 축출되기 직전에 자식 3명을 북한에 보낼 정도로 서로 친하게 지냈으며, 본인도 적도 기니의 독립 1년 후인 1969년에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생긴 북한 주재 적도 기니 대사관을 통해 북한의 통치 수법을 익혀가며 자신의 독재 기법을 확립해[* 그 예시로 김일성을 모방한 우상화 정책을 펼친 것은 물론 [[기독교]]를 잔혹하게 탄압하는 [[국가 무신론]] 정책을 펼쳤으며, 북한의 영향을 받은 1973년 개헌을 통해 절대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만 그의 학정은 [[나치 독일]]에게서도 많은 것을 차용해왔으며, 응게마는 마오쩌둥도 김일성과 같이 존경했다.] 북한도 뺨치는 학정을 저지르며 인구의 최소 '''절반'''에 달하는 인명 피해를 입혔다.[* 정확히는 인구가 30만 명 정도밖게 안 되던 나라에서 10년 만에 5만~8만 명을 죽이고 1만 명을 실종시켰으며 10만~15만 명을 해외로 이주하게 만들었다.][[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ae40c528c77cac00c758-c228aca8c9c4-c9c4c2e4/co-su-05192021093859.html|#]] *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에리트레아]]): 북한 체제에 감명을 받아 이를 모방한 체제[* 에리트레아의 독재는 북한과 쌍벽을 이루는 언론 탄압, 기독교 박해, [[려행증|국내 여행에 대한 통제]], 열악한 군복무 환경, 극도의 폐쇄성 등을 북한과 공유하며, 특히 야당 없는 완전한 일당제와 20년 동안 선거 자체를 시행하지 않는 것은 '''그 북한보다도 더하다.''']를 자국에 구축하며 에리트레아를 아프리카 최악의 독재국가로 만들었으며, 이들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도 집권 중이다. 그나마 김일성보다 확실히 나은 점이라면 사치와는 거리가 매우 먼 인물이라는 것. 권력 그 자체를 추구하는 인물로 보인다는 점은 오히려 김일성보다도 [[이오시프 스탈린]]과 더 가깝다. * [[하페즈 알아사드]]([[시리아]]): 김일성을 만나고 그를 모방한 우상화 정책을 실시하기도 햇으며,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에게 권력을 세습했고[* 그 세습도 김일성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는 불명.], 이 영향으로 시리아는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할 때까지 대표적인 [[친북]] 국가였다. * [[시아드 바레]]([[소말리아]]): 그가 롤모델로 삼은 두 인물이 바로 [[가말 압델 나세르]]와 김일성이다. 덤으로 바레 시절 소말리아가 숨 막힐 정도로 매우 촘촘한 감시 체제를 유지했던 것도 북한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 [[폴 포트]]([[민주 캄푸치아|캄보디아]]): 김일성을 존경했는지 여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일단 [[마오쩌둥]]을 존경하여 [[대약진운동]]으로부터 영감을 아주 크게 받은 것은 사실이다.] [[키우 삼판]] 주석이 "우리는 모두 앙카르(크메르 루주 수뇌부)의 보호를 받는 커다란 가족입니다."라고 [[사회주의 대가정론]]을 연상시키는 말을 하기도 한 것과[* 사회주의 대가정론과 [[이엥 티릿]] 사회사업부장이 주도한 정책이 혼합되며 [[크메르 루주]]는 [[캄보디아]]에 살던 부모와 자식을 분리시키며 서로간의 인연을 끊게 하고 10살도 안 된 어린이들을 납치한 후 '앙카르가 너희의 친부모다'는 식으로 세뇌해 [[소년병]]으로 키웠다.] 집단농장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생활총화]]를 실시한 것[* 북한과 민주 캄푸치아를 제외한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은 조직생활은 하더라도 생활총화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극단적인 민족주의 강조 등으로 미루어볼 때 북한 체제를 접하고 이에 감명을 받아 자신들의 체제에 적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북한 체제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그냥 사상을 짜다가 우연히 북한과 겹쳤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 이상으로 말도 안되게 극단적인 통치를 일삼았으며[* 전국민을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가둔 나라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닐 정도.'''], 임기 내내 베트남을 도발했다가 분노한 배트남의 반격에 당해 4년도 못 가 정권을 상실한채 10년넘게 정글에서 게릴라전이나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가 캄보디아의 신 정권에게 체포당했다. *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에티오피아]]): 1982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본 국경절 행사에 감명을 받아 1984년 집권 10주년을 맞이해 당시 가치로만 '''1억 달러'''를 들인 대규모 행사를 열었는데, 행사를 기획, 감독한 사람들이 북한의 고문들이었다. 문제는 행사에 마련한 예산이 '''해외의 기근[* 1983~1985년까지 에티오피아 북부에서는 '''30만~120만 명'''이 사망한 대기근이 발생했는데, 이는 [[라이브 에이드]]와 [[We Are the World]] 공연에도 큰 영향을 줄 정도로 국제적으로 파장이 엄청나게 컸다.] 원조금을 횡령하며''' 마련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 [[모부투 세세 세코]]([[자이르]][* 1971~1997년까지 [[콩고민주공화국]]의 국명.]): 표면적으로는 반공을 내세웠는데도 1974년에 방북했을 적에 북한의 우상화에 깊은 감명을 받아 김일성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을 우상화했으며, 그가 내세운 이념인 '모부투주의'도 주체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투르크메니스탄]]): 집권 직후 북한의 1인 독재와 우상화 수법을 배워 자신의 독재 체제 확립에 이용했다. 세습 독재에는 실패했으나, 천수를 누리다 갔다. 그래도 김일성과는 다르게 민생을 안정시킨 긍정적인 면모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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