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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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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적 평가와 여파 ===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된 지 고작 5년 후에 김일성이 [[6.25 전쟁|불법 남침]]을 결정함으로써 초래한 비극은 비단 한민족만의 비극이 아니다.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큰 상흔을 남긴 비극이기도 하다. 1950년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제1세계]]와 [[제2세계]] 간의 대립은 [[베를린 봉쇄]] 등으로 인해 물밑에서부터 서서히 가시화되고는 있으나 본격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일성의 침략전쟁과 그들을 적극 지원하는 공산권의 모습은 자유 진영의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다시 2차 대전 이후 일어났던 평화적 세계 질서 구축을 위한 노력을 전부 허사로 만들었다. 내부 단속이라는 미명 하에 적대감과 극단주의가 양 진영 내부에 팽배했다. [[소련]]의 경우 군대를 동원해 동독과 폴란드,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을 폭압적으로 진압하였으며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으로 인한 마녀사냥이 횡행했다. 6.25 전쟁으로 인해 [[냉전]]이 발발했음이 명백히 각인되었고, 세계는 다시 한 번 전쟁의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매카시즘 당시 미국인들 과반이 [[6.25 전쟁|한국 전쟁]]을 [[제3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여겼을 정도였다. 또한 김일성의 행동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역사 청산을 심각하게 방해했다. 공산권의 침략에 대한 공포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그 방파제로서의 [[독일]]과 [[일본]]의 재건이 우선시되었으며, 때문에 1950년을 기점으로 2차 대전의 전후 처리는 매우 졸속으로 진행되었다. 좌파 세력의 위협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어쨌든 주축이 제거된 추축국 잔여 세력은 명령에 따르기만 했다는 참작 사항이 존재하면서 자유주의 우파 서방 세력과 똑같은 반공 보수라는 공통분모가 있기에 손을 잡을 만했기 때문이다. 가령 반인륜 범죄의 책임을 지고 완전히 해체되었던 [[독일군]]은 6.25 전쟁을 계기로 독일의 방위 필요성이 대두되어 부활하였다. [[홀로코스트]]에 가담하며 [[독일 국방군의 전쟁 범죄|전쟁 범죄를 저질렀던]] 구 독일 국방군 인사들 역시, 공산 국가들과 싸운 경험을 제공하는 댓가로 [[국방군 무오설|사면받았다]]. 당장 6.25 전쟁 발발 직후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가 연합국 몰래 비밀리에 재무장 정책의 초안을 만들 때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나 헤르만 푀르취 같은 나치 부역자들도 상당히 기여했다. 같은 이유로 일본의 정상국가화 역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전쟁 발발 고작 한 달 뒤 [[경찰예비대(일본)|경찰예비대]]가 설립되었고, 이들은 곧 [[자위대]]가 된다. 2차 대전 당시 침략전쟁에 가담했던 많은 일본 정계 인사들과 [[전범기업]]들도 연합군의 처벌을 피해 살아남았다. 오히려 그들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전쟁특수]]를 톡톡히 누리기까지 했다. 거기다가 실제로는 개인적으로 뼛속까지 [[반일]]이었던 [[이승만]]조차도 친일파들을 숙청하지 않고 중용했을 정도로 1950년대 당시 레드 콤플렉스는 심각했다.[* 다만, 이승만은 6.25 전쟁 발발 이전에도 친일파들을 중용하기는 했으나 [[적의 적은 나의 친구|김일성이 이끄는 북한의 직접적인 적대 세력]]이라는 참작 사항이 존재하며, 이로 인하여 대한민국 내에서는 초대 대통령이자 거물 독립운동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독재와 더불어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독립운동가가 아닌 것을 넘어 아예 친일파였다는 억울한(?) 비판을 받기도 하고, 잘 아는 사람들도 그를 하다가 만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때문에 북한에서 독립운동가이자 파시스트로부터의 해방자라고 평가하는 김일성이 같은 민족 수십만 명의 핏값으로 살려낸 구 [[추축국]] 인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목숨을 구한 것을 넘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기까지 했으며, 그 여파는 현재까지도 [[대안 우파]], [[네오나치]], 일본 극우, [[넷우익]] 그리고 [[뉴라이트(대한민국)|뉴라이트]]라는 암적 존재로 자리잡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탄생한 서양 극우 세력은 현재 북한의 통치 방식과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국가가 가장 닮았다는 이유로 [[https://m.fmkorea.com/search.php?mid=best&search_target=title_content&document_srl=7340686800&search_keyword=%EB%B6%81%ED%95%9C&listStyle=webzine&page=1|북한 찬양에 가장 앞장서고 있다.]] 보통 대안 우파가 가장 선호하는 국가인 러시아보다도 훨씬 더 극단적인 통치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며, 극우적 관점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순수성이 높은 국가로 꼽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서양권의 정상적인 보수가 아닌 '''극우''' 한정이며, 다른 동네는 극우일지언정 친북은 절대 아니다.][* 뉴라이트는 이승만 정부부터 이어진 보수우파 세력이 아닌 NL 주사파들이 연세대 사태 이후에 반대편으로 전향해서 [[일뽕]]이 된 케이스다. 그들은 [[이승만|자신이 숭배하는 독립운동가]]를 제외한 타 독립운동가들과 조선왕조를 비하한 북한 정부의 언행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반대로 김일성의 침략전쟁으로 인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를 잃어버린 2차 대전의 피해자들은 그보다 몇 배 이상으로 많다. [[8월 종파사건]] 당시 다른 좌파 인사들이 숙청당하는 바람에 '''[[주체사상]]'''이라는 좌파 역사상 기괴한 이념[* 실제로 해외 좌파뿐만 아니라 해외의 보수우파들도 주체사상이 극우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이 탄생했고 이는 현재의 북한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의 좌파에게도 영향을 미쳐 NL, 일본 신좌파처럼 권위주의적이고 반서방적, 반지성적으로밖에 나아갈 수 없게 만들었고 그 여파로 동아시아가 우파 강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국의 [[민주당계 정당]]에게도 미쳐 김대중, 노무현이 중도주의적으로 지지자들을 이끌려는 노력들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뿐만 아니라 북한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게 만들었다.[* 중도주의자인 김대중이 먼저 북한의 인권에 관심을 가졌지만, NL에서 전향한 뉴라이트가 북한 인권 여론을 장악하는 바람에 '북한 민주화운동과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 있음 = 뉴라이트 내지 극우'라는 편견이 만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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