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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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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북한]]의 초대 [[최고지도자]]이자 [[독재자]]. 생전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수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 등을 지냈다.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을 표방한 북한을 실제로는 [[전제군주제]]와 다를 바 없는 3대 세습 독재국가로 만든 장본인이다. [[8.15 광복|해방]] 이전에는 [[중국공산당]]의 일원으로서 [[동북항일연군]]에서 항일운동을 했다. 이후 일본군을 피해 소련으로 이주해서 소련군 소속 [[제88독립보병여단]] 부대원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소련]]에 의해 능력을 인정받아 선택되어 [[삼팔선]] 이북의 한반도를 통치하는 지도자로 옹립되었으며,[*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4/01/27/INRCJMQ5BBCINDJTXHSEA4AX3Q/|관련정보1]]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3/07/08/J3BKFDKDSFENLNG7LTN3TNG4BQ/|관련정보2]] 당시 소련의 지도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소련군과 인연이 있으며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젊은 김일성을 한반도 이북의 대중을 사로잡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강하게 선호했다. 이는 김일성 스스로가 소련군 통역을 자기 심복으로 배치시키고 술자리를 제공하는 등 소련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한 치밀한 노력이 그 배경이 되었다. 1937년 [[보천보 전투]]를 통해 김일성이라는 이름은 당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기도 했다. 소련은 그를 더할 나위가 없이 좋은 선택지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정권 수립 직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수상에 올랐다. [[8월 종파사건]]{{{-2 (1956년)}}}과 [[갑산파 숙청 사건]]{{{-2 (1967년)}}} 등을 통해 정적들을 모조리 제거한 이후에는 스스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에 올랐다. 북한의 1인 독재정권, 세습 체제를 수립했으며 1994년 사망하며 그의 장남 김정일에게 권력이 승계되었다. 사후에도 ‘영생불멸의 위대한 수령’으로 숭배되고 있으며 사실상 [[우상화/북한|영구적인 맹목적 숭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생존과 권력 획득을 위한 정치적인 수완이 상당히 뛰어난 높은 지능의 면모를 보인 인물이었지만[* 권력욕이나 피해 의식 등을 자극하는 심리적 조종, 조직 관리 기술, 내외 정세 파악, 우상화 같은 독재를 위한 기술을 알맞게 적용하였고, '기술'의 종류도 일반적인 독재자 이상으로 다양하게 구사하였다. 언어 습득 같은 단순한 지적 능력도 높은 축에 속했다.] 그 권력을 얻기 위해 비윤리적인 수단까지 서슴없이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김정은]]의 조부이자, [[김정일]]의 아버지로, [[6.25 전쟁]]을 일으킨 [[전쟁범죄자]]이다. 그의 목표는 [[적화통일/한반도|한반도의 적화통일]]로, 이는 전쟁을 통해 남한을 침략하여 한반도 전체를 자신이 통치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외세인 [[소련]]에게서 허가를 받아내 6.25 전쟁을 일으켜 한반도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은 후 [[유엔군사령부|UN군]]의 참전으로 수세에 몰리자 [[중국]]을 끌어들이는 [[외환의 죄]]를 저질렀다. 휴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김일성은 끊임없이 남한과 미국을 상대로 한 무력 도발을 일삼았다. 또한 김일성은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군사력을 투자하고 [[북한의 핵개발|비밀리에 핵개발 프로젝트를 가동해]] 남한을 겨냥했다. 그와 동시에 [[화전양면전술]]의 일환으로 자신이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주의자인 것 처럼 포장해 남한의 정부와 사회를 기만하려 했다. 그의 지배과정에서 최소 십만 단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거나 숙청되었으며, 숙청된 사람들은 [[정치범수용소/북한|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는 식으로 장기간의 고통을 받고 학살당했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통해 자신에 대한 철저한 개인숭배체제를 수립했으며, 북한 주민들은 강제적으로 김일성과 그와 관련된 상징물에 숭배를 해야 했다. 본인의 우상화에는 대성공했지만 그 외 경제 및 외교정책에서 철저하게 실패하였다. 김일성의 경제정책은 [[이밥에 고기국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모토로 북한 주민들이 잘사는 사회를 표방했지만, 서방 국가들로부터 지닌 [[북한의 국채|막대한 부채]], 그리고 [[북한/경제/역사/1980년대의 대규모 정책 실패|현실을 무시한 각종 경제정책]]으로 북한의 국가 경제는 이미 김일성 생전에 파산의 길에 접어 들었다. 결국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북한은 배급제가 붕괴되었고 국민들이 먹을게 없어서 [[고난의 행군|수십만이 굶주려 죽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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