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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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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 첫 선거가 아직 군대에 있던 시절 [[제2대 대통령 선거]]였는데, 저의 주소가 지금 어떻게 되는지 몰라 대충 기억나는 대로 적었더니 무효표가 되었고, 그 다음 [[제3대 대통령 선거]] 때는 제대하여 확실히 주소지를 서울에 옮겨놓고서 제대로 투표권을 행사해 보려 했으나 하필 뽑으려던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 [[신익희]]가 선거 10일 전 작고하여 투표를 하지 못했다. * 시골 태생이지만 성인이 된 이후 쭉 [[사대문안]]에서 삶을 영위해 왔기에 사실상 [[서울]] 사람으로 살아왔다. 이를테면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는 뉴스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게 된 것이 전부인 반면, [[서울토박이]]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덕에 서울에서 민담처럼 전해져 내려온 구한말 [[원세개]]의 행적에 대해 나름 들은 풍월이 있다. * 작품 묘사상으로 현재 귀남의 용모는 '순박하게 생긴 난쟁이'다. 원 역사의 고종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 정작 표지에는 너무 훈훈한 중년 미남으로 나왔다. * 전생에서는 소학교를 겨우 나온 노인이었으나 세자와 국왕으로 살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며 어느 정도 학식을 갖추었다. 수재 축에 못 드는 것은 확실하나, [[사서삼경]] 등 다양한 경전 구절을 인용하여 나름대로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도 있고, [[한글|언문]]은 물론 [[한문]]도 읽고 쓰는 게 가능하고, 만년에는 꼬부랑 글자(아마도 [[영어]])[* 작중 묘사에서는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등 유럽의 라틴계 문자를 꼬부랑 글자라고 부른다.]도 어느 정도 읽게 되었다는 것을 보면 주변인들이 워낙 뛰어난 수재라서 그렇지 나름대로 왕으로서 갖출 학식은 갖춘 셈이다. * [[서예]]에 나름대로 조예가 있었던 원 역사의 고종과 달리 [[행서]]를 써도 [[초서]]가 나오는 [[악필]]이다. 오죽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 이항로의 제자인 유인석이 과거에 급제하자 귀남이 이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내탕금]]을 내려서 이항로가 원하던 강당을 지어주겠다고 하였다. 이 때 귀남이 사액, 즉 현판 글씨를 직접 써주겠다고 하자 이항로의 다른 제자인 최익현이 '어필의 자유분방함'을 알아서 만류할 정도였다. 조선에서 국왕이 사액하는 건 [[소수서원]]을 보면 알 수 있듯 매우 대단한 영광인데도 이를 말릴 정도로 필체가 엉망이란 의미다. 후에 파킨슨병에 걸려서 필체 알아보기 힘들어진 [[김옥균(고종, 군밤의 왕)|김옥균]]의 필체를 같은 악필이라고 쉽게 읽은 걸 보면 어느 정도의 악필인지 짐작가능할 듯. 그럼에도 대군들이 자기 아들손자 대에서 벌어질 왕위 싸움을 걱정하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왕실을 폐하고 국명을 바꾸라며 그 자유분방한 어필로 '[[대한민국|大韓民國]]' 4문자를 남겨 왕실 대대로 간수하게 시켰다. * 동명이인의 독립운동가가 존재한다.[[https://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117786|#]] * 최종적으로 1863년에서 1913년까지 총 50년간 재위하였다. 52년간 재위한 [[영조]] 바로 다음으로 매우 오래 재위한 국왕이 된 셈이다. * 의외로 조선 시대 왕들 중에서 제일 경연 기록이 많다. 재위기간이 워낙 길기도 했을 뿐더러, 평균적인 간격도 매우 짧은데 귀남은 경연을 정책 논의장으로도 사용하다 보니 평균 7일에 한 번 정도 열었고, 이는 평균 2주에 한 번인 세종과 열흘에 한 번인 영조조차 능가하는 기록이다. 본래 [[유교]]는 [[춘추시대]]의 그 답이 없던 난세와 윤리 붕괴로 인한 [[아노미]] 상태를 해결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철학([[유가]])에서 기원하였기 때문에, 유교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왕이라고 볼 수 있다. * 독자들 사이에서 여러 번 읽을수록 마치 진짜 유교적 [[성인]]이나 [[신선]]을 보는 듯한 초월적인 정신성이 느껴진다는 평이 많다. 귀남을 많이 상대한 사람일수록 재림요순으로 느꼈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평. 특히 작중 초반부 남이 나를 비방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와 한 줌의 흙도 버리지 않겠다며 모든 정파를 끌어안겠다고 말하는 대사, 귀남이 세계 최초로 한 옥음방송에서 그 초월적인 인격이 느껴진다는 평이 많으며, 작중 내에서도 매우 유명한 구절이었는지 이원철 박사가 세계 최초의 핵폭탄 실험을 성공했을 때 고종의 역천을 인용하며 고종의 말대로 능히 서로 죽고 죽이는 하늘(사람)의 이치를 바꿀 수 있으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귀남의 인생을 보면 귀남의 이 정신성은 단순한 인생경험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타고난 재능인데, [[주자]]가 말한 '타고난 성인'의 정의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인물이다. 유학에 정통한 사대부들일수록 귀남을 유교적 성인이라 여기는 모습이 많은데, 유학자 입장에서 귀남은 주자가 말한 이상적인 성인 그 자체이니 어떤 의미로는 정확한 평인 셈. * 작중에서 귀남이 '[[태산불사토양 하해불택세류|흙 한 덩이 사양하지 않는 태산]]'이라 불리는 장면이 있는데, 재미있는 점은 이 구절은 원래 [[이사(전국시대)|이사]]가 [[축객령]]을 내린 [[진시황]]을 보고 '딴 나라 출신이라고 인재들을 쫓아내다니, 님 돌았음?'할 때 나온 대사다. 반대로 귀남은 인재가 있으면 바다 건너, 지구 반대편 외국인이라도 가리지 않고 불러들이거나 지원하는 모습과 모든 정파를 포용해 상부상조하는 모습을 보이며 동시대 인식으로서는 굉장히 관대하고 열린 인물이라 이러한 표현이 나온 것. 둘의 행적은 극과 극으로 달랐고 나라의 운명도 정반대지만 둘 다 어떤 식으로든 난세를 끝냈다는 점에서 또 통하는 면이 있으며, 하나의 시대정신이라 해도 될 만큼 인류사의 방향성을 크게 틀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 취미가 밤 산책이고 뭔가 눈에 밟히는 게 있으면 당사자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상사에게 말하는 경향이 있어서 의도치 않게 내리갈굼을 조장하는 인물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 원 역사의 고종과 시호가 같다면 정효대왕(貞孝大王)이 된다. 시법에 따르면 정(貞)은 대려극취(大慮克就: 크게 헤아려 능히 이룬다), 불은무굴(不隱無屈: 숨은 생각이 없고 비굴함이 없다), 직도불요(直道不撓: 곧게 도를 지키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이며, 효(孝)는 능양능공(能養能恭: 부모를 잘 공양하고 공손히 대한다), 대려행절(大慮行節: 큰 생각으로 절의(節義)를 행하다), 병덕불회(秉德不回: 덕을 지켜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다), 오종안지(五宗安之: 조상(친족)들을 모두 편안하게 한다)라는 뜻으로, 귀남의 행적과 정확히 일치하는 시호이다. * 애민정신과 별개로 수백만~수천만 규모가 갈려나간 제2차 세계 대전과 6.25 전쟁을 겪은 인물이라 전투 과정에서 사망한 장병 하나하나의 숫자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생전 겪은 전쟁의 스케일이 스케일이라 전쟁=총력전이라는 관념이 워낙 강해서 산해관 전투에서 사망한 장병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 호조 측에선 청나라와 교섭해서 유가족에게 지급할 배상금을 받아오긴 했다. * 비슷한 시기의 소설이었던 [[대통령 각하 만세]]의 성격이 정반대인 악인형 주인공인 [[조지원]]과 자주 비교되는 인물이다. * 군밤 세계에 [[조지원]](from [[대통령 각하 만세]])과 [[유진 킴|김유진]](from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이 환생했다는 크로스오버 팬픽[[https://gall.dcinside.com/alternative_history/468505|#]]에서는 1905년(개국 519년) 8월 29일에 양위했고 1927년 10월에 사망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일어난 해와 같은 해라고 명시된다. 다만 을사조약은 11월 17일이고 8월 29일은 1910년 [[경술국치]]이다.] 조지원과 김유진이 트립러라는 건 알아보지 못했고 단순히 인재를 아들에게 추천해줄 수 있게 되었다며 조지원을 공안에, 김유진을 사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시켰다. 그 이후 일본에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면서 조일 양국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죽기 전 국토 대사업에 대한 유서를 남겨두어 대공황 수습을 위한 뉴딜 정책에 잘 사용했다. 특유의 성격으로 악명이 높은 조지원을 갱생시켰으며,[* 1905년에 트립했을 때 이미 귀남옹이 역사개변을 크게 일으켜 조선이 멀쩡한 상태라 조지원이 폭주할 근원 자체가 없어지기도 했고, 조지원도 트립 직후 조선의 모습이 망국을 앞둔 나라라기에는 세계 그 어떤 나라와도 평등한 조약을 맺었을 뿐더러, 너무나도 번영하고 있는 모습에 혼란을 겪었고 결정적으로 육조거리에 거대한 만민공산당 당사가 있는 걸 보고 인지부조화를 일으켰다. 처음에는 자유당에 뛰어들어 정치에 입문해 공산당이 언제 이빨을 들어낼지 모른다며 공산당을 비판하며 총리가 되려 했으나 막상 대중의 반응은 시큰둥했을 뿐이었다(만민공산당으로 인해 이미 세계 공산주의의 방향 자체가 입헌군주적 공산주의, 민주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계열로 옮겨간 지 오래였다) 그래도 귀남은 과거 북괴와 김일성의 등장과 이를 지지해 준 소련과 중공에 대한 걱정과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예언하는 조지원을 등용해 공안서에 자리를 잡게 해주었다. 이후 김귀남의 군밤과 선의에 감동하자 갱생해서 공안으로 나라에 보탬이 된 것에 만족하며 살다 은퇴했다.] 김유진도 김귀남에게는 매우 순하고 일본 여행 때 김귀남에게 군밤을 선물로 받자 감동하거나, 패튼보다 막나가는 성격인 [[이형(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이원철]](from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정확히 말하자면, 빙환트는 아니고 폭종의 주인공 이형의 21세기 이름에서 모티브를 따온 인물이다.]도 김귀남이 성군이라며 나름 존경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차 사용법에 대해 의견이 갈려서 비판하긴 했지만(김귀남은 [[보병전차|보병의 옆에 싸우는 토치카]]로 쓰고 싶어했고 이원철은 [[기동전|중기병으로 쓰고]] 싶어했다) 이는 김귀남이 겪은 6.25 전쟁 말기 보병의 특성상 전차를 그런 식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던 것에서 기인한다. 1차대전 서부전선 참호전을 방불케 하는 6.25 전쟁 말기 휴전선 일대를 둘러싼 [[고지전]]의 반복 속에서 전차는 1차대전 당시 전차와 비슷한 보병 지원이나 자주포 대용이 주 역할이었기 때문.] 죽고 나서는 검머대의 김유진처럼 군밤장수 김귀남으로 다시 환생했지만, 김귀남이 바꾼 역사 덕분에 가족들도 무사하고 군밤 장사도 훨씬 잘 되어서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전에 자신을 환생시킨 산신령과는 다시 만나 친구 사이가 되었다. 다만 신의 존재는 여전히 믿지 않는다고. * 팬덤에서는 만약 한국 주요 대체역사물 주인공들을 한 세계에 모아둔 [[어벤져스]] 세계관을 만들 경우 무조건 김귀남이 조선 왕 또는 상왕 포지션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온갖 유형의 주인공들을 전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김귀남의 선의빔뿐이라고.[* 이는 김귀남이 다른 빙환트 주인공들과 달리 [[6.25 전쟁]]에 참전했을 정도로 나이가 많은 채 시작해서 나타난 '''정신적인 원숙함'''의 차이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인권 없던 시대로 빙환트해 인간성이 망가진 '젊은' 주인공들과 달리, 86세까지 살면서 전근대나 다름 없던 20세기 초의 시골 농촌부터 일제의 군홧발에 짓밟히던 시대, 태평양 전쟁, 6.25 전쟁, 전후 복구 시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과 경제 발전 시대, 산업화의 빛과 그늘, 민주화 운동 시대, 외환 위기 시대, 2020년대 대한민국의 도시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모든 격동을 겪으며 끝내 살아남았던 김귀남의 인생경험은 21세기에서 전생한 젊은 주인공들과 급이 다를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웬만한 또라이 주인공들도 연륜이 차원이 다른 김귀남에게는 자연히 숙이게 되는 것. 이는 빙환트한 다른 대체역사물 주인공과 비교해도 특출난 장점이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고종\, 군밤의 왕/등장인물, version=133, uuid=2247d094-d5e9-44f4-9ce9-5640aee67192)] [[분류:고종, 군밤의 왕/등장인물]] [include(틀:문서 가져옴/나무위키, title=김귀남, version=412, uuid=a0e2f005-ef01-4415-b761-72406e42bc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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