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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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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 세종대왕과 동급, 혹은 그 위에 있다고 평가받는 군밤 세계관 내 최고의 성군. 옴니버스로 느껴질 정도로 여러 인물들의 행적과 국가정세를 묘사하는데 집중하는 작품 특성상 주인공 귀남의 행적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작중 귀남의 업적을 보면 가히 '''재림요순''', 태평성대를 열고 나라의 위기를 해결했으니 요순탕무의 환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아와 유럽 할 것 없이 김귀남(빙의)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조선 내에서는 신분과 사상, 성별을 막론하고 만인지존으로서 추앙하고 있으며, 심지어 군주제와는 상극인 [[공산주의자]]와 아예 정부나 군주제를 부정하는 [[아나키스트]]까지도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전봉준]]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재해석해 뜯어고쳐 [[사회민주주의]]나 [[민주사회주의]]와 비슷한 온건파인 '''근왕파 공산주의''', 일명 '''마르크스-전봉준주의'''가 생기면서 이 사상이 러시아로 흘러들어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서 파벌과 노선이 갈릴 때 필요하다면 다른 진보파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온건파인 근왕파 볼셰비키가 급진파인 멘셰비키와 대립하며 서로 싸우다가 조선을 비롯한 각 나라들의 지원과 레닌(여기서는 일린)의 각성으로 근왕파 공산주의가 멘셰비키를 누르고 공산주의의 대세가 되었다. 여기에는 조선이 '인민의 의지'를 자멸시키는 것을 보고 좌익과 같은 반체제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일단 양지로 끌어낸 다음에 서로 분열시키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어서 유럽 각국의 정부가 사용했고 이게 굉장히 효과적이었던 것도 있다. 마르크스-전 노선에선 부르주아의 만행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정치권력)이 필요한데 이것이 귀족이나 자본가를 견제하고 싶은 군주정과 궁합이 맞는다는 논리이며, 덕분에 러시아 황실에서도 귀족들이나 자본가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왕권에 걸림돌이 되거나 국왕을 꼭두각시로 만들 위험이 있었기에 적절한 견제가 필요했고 일린을 비롯한 근왕파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그래도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고 협조를 하면서 원역사보다 탄압이 크게 줄어들고, 니콜라이 2세가 소싯적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경험을 되살려 피의 일요일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고 의회 설치, 헌법 제정을 허용하며 개혁주의자들에게도 점수를 쌓아 러시아 혁명 당시에도 러시아 황실은 공산주의자들의 적대를 받지 않았고 소련 성립 후에도 러시아 황실은 건재하게 로마노프의 이름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덕분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가 표어인 현실의 소련과 달리 군밤 세계관의 소련의 표어는 "신께서 보우하시는 차르 아래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다. 당시 소비에트가 평의회라는 뜻이었음을 고려하면 의외로 정상적인 입헌군주정 의원내각제 발언이다.] 나중엔 귀남도 만민공산당처럼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공산당은 [[조선로동당|북괴 공산당]]처럼 백성을 착취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나쁜 놈들과는 다른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무군론(無君論)이라 언급된 아나키즘도 자유와 평등, 사회의 안녕, 즉 [[인본주의]]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라 흔히 말하는 아나키스트 폭력 시위에 대한 회의론을 주장하는 온건파가 있었고 귀남이 아나키즘의 중점을 듣고 나중에 유구국-일본국 간에 일어난 다이토 제도 영토 분쟁에서 제3의 세력인 아나키스트들을 끌어들여 아나키즘 본연을 위해 실험적 통치를 해볼 땅을 마련해주며 아이러니하게도 무정부주의의 적인 군주가 아나키스트들에게 도움을 주어 어쩌다 [[생디칼리슴]]의 형성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이때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한번 실천을 해보겠답시고 다이토 제도로 향한 덕분에 원 역사에서 아나키스트에게 살해당했던 여러 인물들이 살아남기도 했다. 근왕 공산주의가 원 역사 때문에 어이없다는 반응이 나온 거지, 역사적으로 군주가 지배층들의 힘을 억제하기 위해 새로운 지배층을 육성하거나 백성들의 힘을 강화시켜 견제하고 신 상류층과 백성들이 기존 지배층들을 억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왕권 강화에 기여한 사례는 찾아보면 고대부터 굉장히 많다. 조선에서 흥선대원군의 후원을 받아 만민공산당이 만들어진 이유도 구 세도가가 재벌(부르주아)로 재편되자 세도정치 시절을 기억하던 왕실과 시골 양반, 서얼, 중인, 상민들 같은 피해자들이 구 세도가 출신 재벌들을 견제하고자 만민공산당과 공안서(비밀경찰)를 만들어 재벌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창설되었다. 또 조선의 관료와 사대부들은 많이 잡으면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학문을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대한 요령이 있었기 때문에, 전봉준은 마르크스의 이론이 탁상공론으로 변질된 위험을 간파하고 조선의 현실에 맞춰 조선식 공산주의를 만든 것이다. 원 역사에서도 이런 근왕 공산주의 비슷한 이론을 주장한 사람이 실제로 있었지만 현실이 현실인지라 순식간에 묻힌 것뿐이다. 군주가 폭주하지 않는 한 오히려 안정적인 정치공학적 구조를 가진 것이 특징으로, 실제로 만민공산당은 유럽에서 원내에 들어가냐 마냐로 희비가 교차하던 당시에 조선에서 최초의 원내 과반과 총리 배출 등등의 압도적인 커리어를 쌓으며 굉장히 잘나갔고, 그로 인해 유럽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수정주의다 이단이다 사이비다 뭐다 논란이 일어났지만 결국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강성 좌파들도 1차대전을 기점으로 조선식 공산주의가 공산주의의 대세가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의회 정치로 선회할 정도였다. 원 역사와 달리 1차대전 이후 군밤 세계관이 무척 평화로운 건 공산주의의 주류가 조선식 공산주의의 온건파 중심으로 구축된 것이 굉장히 크다. 또한 귀남 본인의 행적을 보면 옛 성현인 [[노자]]가 말한 무위지치, 무위자연을 현세에 구현한 '''유교적 성군''' 그 자체. 본인에게 여색, 사치, 식탐 등 특별한 탐욕이 없다. 일부러 찾지 않아도 일국의 군주이니 호의호식하며 이런저런 고급 예물이나 진상품을 받는 게 예사일이지만 받은 물건들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일이 많다. 여자도 대비인 민자영 외에 작첩을 하지 않고 금슬 좋은 부부로서 백년해로했으며, 오히려 궁인의 혼례 허용이나 내시 채용 중단 등의 개혁을 실시했고, 술이나 음식도 그저 '세상엔 이런 맛도 있구나' 정도로 여긴다. 소소하게 군밤과 율란 굽는 정도의 취미밖에 없고, 그것도 혼자만 독식하지 않고 언제나 신하, 백성, 아들, 아버지, 그리고 백성 등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피 보기를 그리도 싫어하여 다른 나라들이 싸우거나 충돌이 발생하면 끼어들어서 중재하려 노력하고 [[제1차 세계 대전|최악의 전쟁]]에서도 전쟁의 포화에 시달리는 유럽 땅에 평화의 씨앗을 뿌렸다. 즉위 초기 계혜환국의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도 옛 정적과도 같은 옛 세도가와 개화에 반발한 척화파, 새롭게 대두한 개화파 모두를 하해와도 같은 아량으로 다독여 일체의 숙청과 내침도 없이 감화시키고 인도하며 각자의 역할을 걷게 하였고, 수많은 인재를 등용하여 필요하다면 외국인[* 원 역사에서 고종의 할아버지인 남연군의 무덤을 도굴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던 [[에른스트 야코프 오페르트]]조차 (광산 채굴권을 노리고 접근했다지만) 광무총국에 붙잡아두면서 당상관까지 올리며 아낌 없이 부려먹는 ~~관밀레~~ 스킬을 발휘했고, 이름이 알려지기 전이었던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니콜라 테슬라]]를 데려와서 조선의 과학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이나 옛 세도가 출신이어도 가림없이 등용해 썼다. 혼란기가 생겨도 이를 빠르게 수습하여 태평성대를 이루어 냈고, 각종 문제가 발생할 때도 피나 강경책을 부르짖지 않고 적절한 유화책을 제안하여 해결했다. 자신의 모자란 점은 인정하고 자신보다 뛰어난 신하와 인재를 찾아내면 귀천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불러들여 지원함은 물론 권력도 믿고 맡겨줬으며, 제도에 폐단이 생길 미래를 걱정해 [[공화제|그 시기를 위한 비전 겸 후대를 향한 경고]]를 남겼으며 발전된 기물과 제도의 도입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온 세상의 나라들과 선린관계를 맺어 교린삼장에 따라 서로 이익을 주고받고 도움이 필요하면 기꺼이 손을 내밀어 도와주며 나라의 이름을 널리 알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란 말에 맞게 세계 만방에 적 없이 고루 사귀고, 오래된 사대관계를 혁파하며 모든 나라와 대등한 국가로서 섰다. 국방의 일에 관해서만은 한치의 양보도 없으면서도 그 군대를 함부로 휘둘러 피를 일으키지는 않는 등, '''한 나라의 국왕으로서 비난할 부분이 '하나도' 없는 [[군자|이상적인 군주]]라 할 수 있다.''' 언제나 온후하여 아랫사람들에게 인자한 모습을 보였지만 평생 단 두 번 화를 내었는데 한 번은 [[참척|두 자식이 연이어 죽었을 때]],[* 본인도 가슴이 찢어질 듯 슬퍼했지만 이런 팔자였나 보다 하면서 빠르게 마음을 추스리며 마음이 무너지려는 아내를 위로하였고, 자신들 같은 슬픔을 겪는 이들이 더 없게 하자며 서양 의학을 적극 도입했다. 애초에 화를 낸 이유도 첫 번째 아이가 죽었을 때는 민승호가 대원군이 서양 무당(=양의)을 데려와서 아이가 죽은 것이란 식으로 헛소문을 퍼뜨려(실제로는 아이가 위독한 걸 본 귀남 본인이 명을 내려 신하들이 '작은 파리'로 달려가 수소문해 양의를 불러온 것이다.) 자식 잃은 동생(민자영)의 마음에 비수를 박는 [[패륜]]을 저질렀던 탓에 화를 낸 것이고 두 번째 아이가 죽었을 때는 어의가 첫 번째 아이가 골든 타임을 놓쳐 죽은 걸 봤음에도 [[반면교사]] 삼아 양의학을 배우지 않아 또 골든 타임을 놓쳐 여섯 달 된 딸아이를 잃었기 때문이다. 두 번의 불호령이 떨어진 후에야 세 번째엔 자신들의 목이 날아갈 것이라 생각한 어의들이 부랴부랴 양의학을 공부하여 세 번째 아이, 그러니까 세자 이척부터는 무사히 자랄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이필제가 전쟁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할 줄을 모르고 함부로 청나라를 쳐 전쟁을 하자는 망발을 일삼을 때였으니 신하들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착한 사람이 화내면 무섭다|주상전하께서 화를 내신다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날이었으니]], 애민정신이 형체를 이룬 것 같은 주상이다. 그래서 열성조 시절에 비하면 권력은 작으나 그 누구보다도 권위가 강한, 확고부동한 조선의 지존으로 군림하고 있다. 물론 귀남 본인은 자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주변의 칭송은 그저 아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귀남을 직접 보는 대다수의 신료들, 특히 조선을 멸망 위기로 몰아간 세도정치 시기를 기억하는 나이 많은 대신들은 이 혼란한 시대에 열성조의 보우로 금세에 임한 성군이라고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 굳이 흠을 찾자면 석유라는 불붙기 쉬운 폭발물로 작동하는 자동차라는 기물을 타고 시속 40km로 한강대교를 폭주했던 것[* 현대에는 40km/h 정도면 웬만한 [[스쿠터]]보다도 느리지만, 19세기 말에 이 정도면 굉장한 속도이다. 참고로 전근대에 최고의 명마로 취급받았던 [[아할 테케]](한혈마)라는 품종의 말의 단거리 최고속도가 50km/h를 간신히 넘으며, 조선에서 타던 비교적 소형 품종의 말은 40km/h도 낼수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아예 '''달리는 데만 특화된''' 서러브레드종에 고속경마 특화 마장으로 발달한 21세기의 일본에서도 최고 속력이 시속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 겨우 나오는걸 고려하면 당시의 40 언저리는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스피드인 셈. 다만 이것도 귀남이 전생에 트럭 하나 가지고 싶었던 추억으로 새로 만들어진 차를 몰아본 것 뿐이고, 그 후 차를 몰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없다. 나중에 아들이 전차랑 부딪혀서 교통사고를 낸 적은 있지만.], 그리고 군밤굽기가 취미라 자연히 주전부리를 즐겨한 탓에 말년에 살이 붙었다는 것 정도가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정도는 과거 조선 왕조의 조상 국왕들이나 타국의 역사의 사례를 둘러봐도 큰 흠이라고 할 수는 없는 애교에 가까운 트집이고, 그저 신하들이 왕의 건강을 걱정하며 노심초사하게 만든 정도다. 이 양반의 대단한 점은 작가 후속작인 [[사도세자는 편하게 살고 싶다]]에서도 드러나는데, 북악산 산신령이 일으킨 역사개변이 천기를 거스른 행동이라 천계에 체포되었지만 명부시왕 전원이 김귀남으로 인한 역사 개변으로 세상이 너무나도 좋아졌다는 이유로 모두 탄원하여 결국 북악산 산신령이 풀려나서 천계에서 표창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평행세계인 편살 세계의 조총련[* 북한 지역 산신령들의 모임으로 북한 김씨 일가 때문에 북한 산들의 영기가 갈수록 훼손되어 본인들도 피해를 보자 못 참고 김씨 일가를 족치기 위해 창설하였다.]이 역사개변을 일으킨 것 때문에[* 이쪽은 리스크를 피하겠답시고 영조 시대 김일성의 조상에게 사기를 쳐서 북한산 마약과 섞은 천계의 맹독을 몰래 먹이는 것으로 매우 빙빙 돌아갔다. 이게 일이 꼬여서 괴상한 방향으로 나비효과를 일으켰지만...] 천계에 소환되자 조총련이 이 건을 두고 항의했지만 너희들과 평행세계의 북악산 산신령의 그건 수준이 다르다면서 어딜 거기와 비교하냐고 면박을 들었다. 김귀남의 존재가 얼마나 특이 케이스인지 알 수 있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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