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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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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생 === 1934년, 아버지 김명득과 어머니 박입분의 셋째 아들로 출생. 아버지가 우마차 사고로 사망해 [[유복자]]로 자랐다. 어머니 병구완으로 집안이 빈한해 소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태평양 전쟁]] 때는 [[국가총동원법]]으로 인해 수탈을 당했다. 광복 후 5년 뒤 6.25 전쟁이 터졌고 입신양명을 꿈꾸던 큰형은 훈장을 타오겠다며 자랑스레 입대했다가 [[6.25 전쟁]] 초기 속절없이 밀리던 전선에서 전사해 전사통지서 한 장이 되어 돌아왔고, 둘째 형이 혼절한 어머니와 어린 아우를 건사하며 낙동강 방어선을 따라 부산까지 피난왔으나 결국 어머니마저도 타향 부산에서 돌아가시고, '큰형 죽인 빨갱이 놈들 모가지 따러 간다'며 집을 나선 둘째 형은 다리 한 짝 팔 한 짝씩 나라에 바치고 돌아왔으나 그 이후 폐인처럼 지내다가 어느 날 [[자살|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귀남 본인은 전쟁 말에 성인이 되었다고 징집되었는데 다행히 최전방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욕 먹고 얻어맞는 등 고약한 [[병영부조리]]와 [[가혹행위]]는 기본에 되놈·빨치산·추위와 굶주림을 상대하는 고된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기껏 살아서 부산에서 고향 마을으로 돌아왔지만 집안은 이미 풍비박산 나 있었다.[* 사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없었고 큰형과 어머니를 잃고 둘째형마저 없어졌으니 귀남은 징집된 시점에서 혼자 남은 몸이었다. 고향 마을이 통째로 소멸했다거나 그나마 있던 같은 본관 친척들마저 완전히 흩어졌다던가, 조부모까지 돌아가셨거나 하는 의미일 듯. 본관 문화가 약하게나마 남아있던 1950년대 당시를 생각해보면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하여 무작정 서울에 상경하여 미국 배급물자 받아가며 이일 저일 하다가 군밤을 팔기 시작하였다. 장사 사 년차에 겨우 식모살이하던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몇 년을 [[맞벌이]]로 악착같이 벌고 귀신같이 아껴서 겨우 판잣집을 면한 집 한 칸을 얻었지만, 그 해 겨울 아내와 어린 아들이 [[연탄]] 가스를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저 제 팔자려니 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아내와 아들을 묻고서 재혼도 하지 않은 채 [[3.15 부정선거]]나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 등 대한민국 격동의 현대사를 어떻게든 이겨내며 계속 밤을 굽다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뭔 고라니인지 고로쇠인지"하는 역병]]이 돌기 시작한 [[2020년]] 초, "그 옛날 [[백제|비류랑 온조가 내려온 시절]] 이래" 가장 맛난 밤을 먹고 감탄한 [[북악산]] 산신령의 신통력으로 훗날 [[대한제국]]의 [[고종 태황제]]가 되는 흥선군 댁 둘째 아들 이명복의 삶을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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