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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업 === 현대에 와서 [[분업]]을 하지 않는 공장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대부분의 공장은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데 여러 가지의 공정을 거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BC4세기 그리스 작가 [[크세노폰]](Xenophon)의 《[[키루스의 교육]](Cyropaedia)》에서 이미 분업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지적한 바 있다. 근대에 들어서 윌리엄 페티 경(Sir William Petty)이 네덜란드 조선소의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견문하여 분업의 이점을 재발견하여 이후 분업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분업을 분석한 결과, 3가지의 특징을 알아냈다. * '''생산성 향상''' 하나의 예시를 들어서 [[핀]]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고 치자. 이곳에서 일하는 [[공돌이]] A는 하루에 핀 20개를 만들 수 있다. A랑 똑같은 수준의 공돌이가 10명이 있다고 하면, 이 핀 공장은 하루에 200개 초과의 핀은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이 핀 공장이 공정을 18개로 나누어 공돌이 10명에게 작업을 시켰더니[* 10사람 중 몇 사람은 실제로 두세 가지 작업을 혼자서 하고 있었다.] 하루에 약 48,000개를 생산할 수 있었다. '''분업 하나만으로 생산성이 무려 240배로 뛰었던 것이다.''' 스미스는 분업에 의해 생산성이 향상되는 원인에 대해서는 1) 전문화된 노동자들이 숙련도가 향상되기 때문이고, 2)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전환할 때 낭비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며, 3) 매일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노동자들이 작업능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공구나 기계류를 고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 '''화폐의 사용''' 분업을 일으키는 것은 한 물품을 다른 물품과 거래하고 교환하는 인간의 기질[* 이 기질이 인간의 본성에 의한 것인지, 이성과 언어의 기능에 따른 결과인지에 대해 잠깐 언급되나 주목하는 부분이 아니라며 넘어간다.]이므로 교환 경제가 확장됨에 따라 분업의 수준 또한 높아진다. 그러나 물물 교환 시대에는 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물품이 다른 사람이 잉여로 가진 물품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양조업자가 육류를 필요로 하지만, 도축업자가 맥주를 충분히 가지고 있을 때는 아무런 교환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아무도 교환을 거절하지 않을 특정 상품을 갖고 거래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으며, 초기에는 가축, 소금, 조개 껍데기 등이 이용되었으나[* 이것을 상품 화폐(commodity money)라고 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상품 화폐로써 주로 면포와 비단이 사용되었다.] 결국 내구성이 높아 장기간 보존이 용이하고 가치의 손실없이 분할할 수 있는 금속이 선호되었다. 처음에는 금은동철이 아무런 표시도 없는 덩어리째로 사용되었으나 거래할 때마다 중량을 재고 금속의 순도를 매번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할 필요성에서 중량이 일정하고 순도가 표시된 금속 화폐인 [[주화#s-3]]가 등장하였다. 주화는 중량을 재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 그 개수를 세어 주고 받을 수 있었다. 한편 물물교환이 사라지고 화폐가 사용되면서 상품의 교환가치를 화폐로 평가하게 되었다. 즉 화폐는 그 자체로는 사회의 수입이 아니지만, 자본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고 그것에 의해 구매할 수 있는 재화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점차 화폐가 상업의 보편적인 매개체가 되고 모든 종류의 재화가 매매되거나 교환되면서 시장이 형성될 기초를 형성했다. * '''규모의 경제 및 시장 사회의 형성''' 시장이 형성되기 이전 사회에서는 한 마을이 제공하는 수요의 규모는 지나치게 협소하기 때문에 하나의 마을에서 독립된 직종으로서 대장장이, 석공, 목수, 도축업자, 양조업자 등을 유지할 수 없었고, 각각의 농장 혹은 가족 내에서 자체적으로 모든 일을 몸소 해내야 했다. 스미스의 예에 따르면 스코틀랜드의 외진 고지 내륙 지역에서는 못 제조업자와 같은 직업이 존재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했다. 하루 1천 개의 못을 제조하는 제조업자는 1년 300일을 일하면 30만 개의 못을 제조할 수 있지만, 스코틀랜드 고지에서는 단 하루치인 1천 개의 못도 판매할 수 없었다. 수상 수송이 발달하면서 대량의 화물을 저렴한 비용으로 운송할 수 있게 되었다. 18세기 당시 마부 2명이 모는 말 8필의 광궤 4륜마차는 런던과 에든버러 사이를 4톤의 화물을 싣고 6주일만에 왕복하는 반면, 화물 200톤을 적재한 선박은 불과 6~8명의 선원만 필요로 하면서도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거리를 항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200톤의 화물을 런던에서 에든버러로 운송하려면, 육로로는 100명의 생계비와 말 400필, 마차 50대의 유지비가 소요되는 반면, 수로로 옮길 때는 불과 6~8명의 생계비와 200톤급 선박1척의 유지비만 소요된다. 수운의 발달로 수송비용이 폭락하면서 하천과 연안을 낀 도시들에서부터 분업이 확립되고 상업 사회가 형성되었다. 더이상 이웃 농촌에서만 원자재를 공급받을 필요가 없게 된 도시들은 멀리 떨어진 지방 및 외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고 공산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몇몇의 한정된 촌락을 벗어난 더 넓은 범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수요를 바탕으로 성장한 도시들은 대량의 수요를 요구하는 전문적인 제조업 업종의 등장을 가능케 했고, 또한 농촌의 잉여 생산물을 위해 대규모 시장을 제공함으로써 농촌의 경작과 개량에 자극을 주기까지 했다. 한편 그 자체가 상거래의 안전을 전제 조건으로 하는 도시의 상업과 제조업은 농촌에 질서와 선정, 개인의 안전과 자유를 도입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외국 무역과 제조업이 도입되기 전, 대지주는 소유지의 잉여 생산물을 교환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신 다수의 가신, 식객을 부양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잉여 생산물의 소비자가 대지주와 그 부하들로 한정된 상태에서는 농노나 소작인들도 대지주에게 종속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외국 무역에 의한 제조업이 확립되자, 대지주들은 특히 사치품을 구매하기 위한 소비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점차 가신과 필요없는 소작인을 해고했으며, 동시에 보유한 토지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 나머지 소작인들에게 토지 개량을 위한 장기 차지계약을 인정하게 되었다. 소작인은 장기간 토지 차용권을 보유하고, 잉여 생산물을 소비할 시장이라는 대안이 존재함으로써 지주로부터 독립했고, 해고된 가신들은 대지주가 농촌을 폭력과 권력으로 지배하는데 더이상 이용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농촌에서 일상의 정치를 교란할 권세가들이 사라져 가고 농민이 종속에서 해방되면서 도시와 같이 사법과 행정이 확립되었다. * '''산업 혁명에 따른 [[대량생산]]으로 애덤 스미스의 견해가 확증을 얻게 되었다.''' 과거 중세시대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공업의 대부분은 [[가내수공업]]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나마 복잡한 공정도 동네 대장간에서 대부분 해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공산품의 가격이 상당히 고가를 형성하여 대부분의 공산품은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심지어 같은 물건이라도 그날 생산자의 컨디션에 따라 품질에 차이가 났기 때문에 분명 같은 상품이라도 퀄리티에 따라 가격이 다른 경우가 상당히 흔했었다. 그러나 [[증기기관]]의 발명과 산업혁명으로 인해 여러 공정으로 쪼개진 공장은 수작업보다 퀄리티가 높은 공산품을 일정한 품질로 대량생산할 수 있었다. 위에서 언급된 핀은 분업만으로 240배가 뛰었는데, 여기에 증기기관을 통한 자동화까지 더하게 되면 생산성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이는 가내수공업으로 생산된 저품질&소량&고가의 공산품을 빠른 속도로 대체했으며, 과거 특권층의 전유물이 저렴한 가격으로 그것도 더욱 양질의 제품을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즉 그만큼 공산품 시장이 확대되고 시장이 활성화되며, 규모가 팽창하게 되어 시장이 경제를 주도하게되는 본격적인 시장경제체제의 시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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