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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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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공산당이 1930년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덕택이었다. 독일이 북으로는 [[노르웨이]]서부터 서로는 [[프랑스]], 동으로는 [[폴란드]], 남으로는 [[그리스]]까지 전 유럽을 제패했을 때 독일의 세력 하에 놓이게 된 타국인들은 '''저항은 하고 싶은데 마땅히 참여할 조직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가장 먼저 각국의 공산당이 반독 저항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독소 불가침조약]]의 체결 당시 독일 점령지의 공산당 조직들은 모스크바의 지령을 받고 '''나치의 점령 통치에 침묵 내지는 암묵적인 협조'''로 일관한 까닭에 독일군도 크게 신경쓰지 않아 장기간 세력을 보존하며 미래에 대비할 수 있었다. [[독소전쟁]]이 터지자 독일 점령지의 공산당 조직들은 곧장 지하로 들어가 처절한 저항 운동을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 국내에서 [[레지스탕스]]를 앞장서서 주도하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세력이 바로 프랑스 공산당이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베니토 무솔리니]]가 실각한 후 이탈리아 공산당이 주도하여 반독 무장 항쟁을 벌였으며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 공산당 역시 마찬가지로 격렬한 무장 저항운동을 벌였다. 오히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중부유럽에서는 공산당의 세력이 미미했지만 이 지역은 '''소련과 가깝다'''는 점 때문에 소련의 후원을 업은 공산주의 조직들이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 중국의 경우는 [[국공합작]], [[국공내전]], [[중일전쟁]] 및 [[대장정]] 문서 참조. 이러고 보니 1945년이 되자 [[미국]]과 영국을 뺀 전세계에서 붉은 깃발이 휘날릴 가능성이 '''매우 올라갔다.''' 그러자 예나 지금이나 강대국들이 하는 짓거리는 비슷해서 미국과 영국은 스탈린에게 [[핵무기]]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빅딜]]을 제시했다. * 그리스, 튀르키예, 일본은 우리꺼. * 유럽에서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 동쪽은 전부 [[소련|너네]]꺼. * 독일은 [[동독|동]][[서독|서]]로, 한반도도 [[대한민국|남]][[북한|북]]으로 갈라먹기. * [[유고슬라비아]]는 일단 방치. 한마디로 세계지도를 놓고 [[땅따먹기]]를 했는데 스탈린이 오케이 싸인을 날리자 실제로 세계가 저렇게 나뉘었다. 당시 스탈린은 "[[몸빵]]은 [[독소전쟁|우리가 다했는데]] [[물주]]는 미국이니 폴란드 정도까지만 어떻게든 먹었으면..."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미국과 영국은 "실질적인 몸빵은 [[독소전쟁|쟤네가 다했으니]] 유럽을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할 텐데... 프랑스부터 서쪽까지만 어떻게든 지켜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미국이 제시한 "독일 반띵"(...) 라인은 마침 서로의 기준보다 조금씩 많았기 때문에 서로 놀라며 후딱 수락해 버렸다.[* 이 상황은 한반도에서도 똑같이 전개되어 경계선이 북쪽에 그어질 것이라고 보던 소련, 까딱하면 한반도를 먹힐 거라고 생각하던 미국은 또 [[38선]]이라는 중간지점을 내세우고 양쪽 다 냉큼 인정하면서 38선이 그어졌다.] 어쨋거나 저 약속은 잘도 지켜서 스탈린은 그리스 공산당이 영국의 후원을 업고 전직 나치 괴뢰 점령 정권의 부역자들을 대거 받아 들인 그리스 임시정부에게 [[떡실신]]하는 꼴을 그냥 구경만 했고 [[윈스턴 처칠]]도 전쟁 내내 영국을 지지한 데다 상당한 규모로 대독전쟁에 참전하기까지 한 [[폴란드 망명 정부]]를 나몰라라 배신했다. 게다가 [[김일성]]이라는 코흘리개는 저런 어른의 사정도 모른 채 [[6.25 전쟁|한반도를 지가 다 쳐먹으려고 싸움을 걸었고]] 그 결과 이 싸움에 미국이 끼어들면서 아주 제대로 난리가 났다. 스탈린은 그래도 북한 정도만 쥐고 괜찮아했지만 정작 싸움판이 벌어지자 자기는 손대기 싫어서 [[마오쩌둥]]에게 싹 떠넘겨 버렸다.[* 물론 알음알음 [[북한군]]과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에게 무기는 엄청나게 제공해 줬다. ~~막상 정전협정 조인 전에 [[사망|떡실신]]하긴 했지만~~] 그렇게 해서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엄청난 주먹질을 해댔고 이 사이 스탈린은 유럽 전선을 굳건히 했다. 여하튼 이 결정을 바탕으로 소련의 강력한 지원을 업고 동유럽 각국에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었고 단숨에 공산주의를 채택한 국가 수가 급증했으며 서방세력에 포함된 서유럽 각국에서도 공산당의 위신이 크게 신장되었다. '''특히 프랑스 공산당과 이탈리아 공산당(PCI)은 전후 선거를 통해 순식간에 제1야당 규모로 성장하였다. 실로 인류가 가장 공산주의에 근접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 사이에 [[냉전]]이 시작되는 순간 공산주의는 그 전성기를 다했다. 더군다나 각지에서 활동하는 공산당 운동을 원조할 수밖에 없는 이데올로기적 딜레마에 있었기 때문에 소련의 국익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소말리아]], [[모잠비크]], [[앙골라]] 같은 [[아프리카]]의 수많은 듣도 보도 못한 민족과 나라들의 공산주의 혁명 운동을 정치적/경제적 부담을 무릅쓰고 일일이 규합해 주고 지도해 가면서 지원까지 해 줘야 했다. 물론 국가에 따라서 이득이 된 일도 있는데 소련은 서방세계의 두목인 미국의 뒷통수를 언제든지 때리기 위해 미국의 등짝에 위치한 [[쿠바]]에서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할 때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쿠바를 공산국가로 만들어 놓았다. 물론 '''냉전 초중반기'''에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는 내내 공포에 떨어야 했다. 각국 [[식민지]]나 [[제3세계]] 국가가 공산주의에 호의적이기만 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면서 서방세계 국가들이 식민지를 진압하려다 피를 너무 많이 보았고 소련이 가진 항공우주 기술, 국방기술은 냉전 동안 벌어진 [[스푸트니크 쇼크]], [[6.25 전쟁]],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 전쟁]] 등에서 미국에게 큰 공포와 출혈을 내게 만들었다. 소련 특유의 선전/프로파간다적 정치와 '''폐쇄성'''까지 더해진 결과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소련의 출혈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이었다. 소련은 공산권 동지 국가들을 돕는 과정에서 [[피로스의 승리|미국에게 피해를 주긴 했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이득으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공산주의의 큰형님 격이었던 소련은 2차대전 이후 과장을 보태면 (무력을 써서라도) 세계의 절반을 거의 휘하에 두는 셈이었다.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식민지나 [[위성국]]가 굴려먹는 데는 이골이 난 서유럽 열강들과 달리 해외 진출 경험도, 국제적인 리더 경험도 없는 소련의 동유럽 정책은 동유럽 국가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반발을 무력을 내세워 진압하면서([[1956년 헝가리 혁명]], [[프라하의 봄]]) 국방비 지출이 늘고 소련의 위신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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