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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군밤의 왕/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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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관 ===== * '''[[남종삼 요한|남종삼]]''' 원 역사 [[한국 103위 순교성인]]의 일원. [[불어]]에 능통하여 [[을축양요]] 때 통역을 맡았다. 귀남이 "베르뇌 주교를 기리는 학당을 세우자"고 제안하자 감동하여 눈물을 보였다. * '''[[신헌]]''' [[을축양요]] 때 벨로네를 상대했다. 벨로네가 허튼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정운구에게 소란이 일어나면 데려온 병사들을 단속하면서 문수산성으로 물러나라고 지시했다. 덕분에 프랑스군이 공격을 시작했을 때 정운구가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이후 외인들과 교섭한 경험이 있다고 수신사의 정사로 나서 조일수호조규 체결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조일 양국은 중국으로부터 책봉을 받았으니 자립국이지 자주국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흘러나가 아이즈 낭인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했다. * '''[[이유원]]''' 원 역사에서 영의정을 역임했고 [[최익현]]과 함께 [[흥선대원군]]을 탄핵한 중신. 여기서는 박규수 다음의 통리기무아문 2대 총리대신이 되어 징병제를 비롯한 이런저런 개화 사무를 담당한다. 전임자가 그 환재 대감이다보니 구관이 명관 소리도 듣고, 어째 도맡은 개화 사무가 죄다 군무와 관련된 것이어서 세간에는 대장 총리로 유명하다. 이후 육조와 통리기무아문을 합치는 관제개혁을 제안하고 본인이 그 영의정 겸 총리대신이 되려고 했지만 육조의 견제로 오르지는 못하였다. * '''[[홍순목(조선)|홍순목]]''' [[갑신정변]]의 주역 [[홍영식]]의 아버지. 아들 홍영식이 일으킨 [[갑신정변]] 때문에 음독자살한 원 역사와 달리 여기서는 무탈히 지내고 있다. 조정에서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중립적인 행보를 보여 국제가 선포된 후 이유원 대신 영의정 겸 총리대신이 됐다. * '''장성공(章成公) [[에른스트 오페르트|에른스트 야코프 오페르트]]''' 원 역사에서 [[오페르트 도굴 사건]]을 일으킨 그 오페르트다. 홍콩에서 사업을 말아먹고 조선으로 건너와 크게 해먹을 건수를 찾던 중 [[운산]] 금광의 존재를 확인한 오페르트는, 영국을 견제할 심산인 주조선 프랑스 공사인 벨로네 공사를 빽으로 삼아 운산 금광 채굴권을 획득, 한 밑천 잡아볼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벨로네 공사의 소개장을 들고 호기롭게 대원군에게 접근했다. [br]거기까진 좋았는데 ─ 현대에서 사기당한 기억으로 '큰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접근하는 놈은 사기꾼'이라는 현대인의 상식을 누구보다도 잘 알던 귀남에게 코가 꿰어 졸지에 등용당하며 조선 역사상 최초의 색목인 [[당상관]]이 됐다. [[프랑스]]와 이권을 나눠먹자고 해놓고서 졸지에 프랑스와 [[영국]]을 뒤통수 친 모양새가 되었고, 영프 양국으로부터 경계를 받게 된 오페르트는 이제 기댈 구석이 조선밖에 없으니 벗겨 먹을 생각을 포기하고 '이광도감'의 '오배'로서 금광 개발에 전력을 다하게 됐다. [br]개발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지금은 이광도감이 국영 광업회사라고 할 수 있는 광무총국으로 승격되었으며, 그곳의 사장이 되었고 따로 '오씨양행'이라고 무역회사를 하나 차렸다. 자기 사업에 집중하고 싶어서 [[황희(조선)|계속 사직을 청하고 있으나 번번히 윤허되지 않는 중]][* 여담으로 실록영연 시리즈에서 황희의 사직 이야기는 대소신료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어(…) 생략되었다고 한다.]으로, 결국 수염이 산신령 수염이 될 때까지도 사직하지 못하고 조정 원로가 되어버렸다.[* 사실 이광도감 시절이면 모를까, 지금은 진심으로 사직을 바라지는 않는다. 동생 구스타프 왈 "솔직히 형님 즐기고 계시잖습니까."] [br]본인 심정이야 어떨지 모르나 대외적으로는 조선에서 성공한 외국인으로 이름이 꽤 알려졌으며, 어쨌든 극동을 본진으로 두고 있다보니 원래 [[인도]] [[철학]] 및 [[드라비다어]]를 전공하던 동생까지 동아시아 전공으로 반강제로 바꿔놓았다. 1891년경 [[드레퓌스 사건]] 즈음 해서 집안이 파리의 랍비 명문가인 드레퓌스 가문과 사돈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이게 사건의 당사자인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의 집안과 사돈을 맺은 것으로 소문이 퍼지면서 오지랖 넓은 조선 곳곳에서 오만가지 걱정을 해주며, 이를 도우라는 뜻에서 조정에서 사직을 시켜버린다. [br]정작 그 사돈댁은 드레퓌스 대위 집안과는 이름만 같지 전혀 관련없다.[* 철자도 다르다. 드레퓌스 대위는 Dreyfus, 랍비 드레퓌스는 Dreyfuss.] 물론 사건 자체가 심각해서 사돈댁에서도 같은 [[유대인]]으로서 드레퓌스 대위를 지원해 달라고 오페르트에게 요청했고, 결국 조선 측과 오페르트가 여론전에 가담한다. [br]여론전과 조르주 피카르 중령의 수사로 드레퓌스 대위가 풀려난 후 [[테오도르 헤르츨]]과 나눈 대화에서 "오스만의 부채를 해결해 주기라도 하지 않는 한 우리네들이 [[팔레스타인]]에 눌러앉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가 [[알래스카 조약|알래스카]]나 [[루이지애나 구입|루이지애나]]처럼 팔레스타인을 당당하게 사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헤르츨이 유대 복지재단을 세우는 계기를 제공했다. 김홍집을 통해 사건 전말을 전해 들은 귀남은 마침 궁방전을 매각하고자 했으나 민간에서 사들일 금력이 부족해 팔지 못했던 상황이니 유대인들에게 그 땅을 빌려주자 제의하고, 농사일에 익숙하던 [[동유럽]] 유대인들이 이민을 와 궁방전에서 [[키부츠]]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키부츠는 근처의 공산당원들에게 소개되어 [[농협]]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는다. 사건이 해결된 후 광무총국 사장 자리에 복직하진 않았으나, 후임을 위해 광무총국 자문직으로 활동한다. [br]이후 1902년에 마침내 광무총국 자문직도 내려놓고 완전히 야인이 됐다. 이제 운산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은지 자기보다 '''30살 어린''' 조선인 처를 데리고 동포들이 사는 양주로 내려갔다. 이후 말년에 [[단군]]이 사실 유대인의 후손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다가[* 원 역사의 오페르트 또한 조선인이 잃어버린 유대의 지파라고 주장했다.] 1906년 무렵 사망하였다. 최종적으로 품계가 자헌대부(정2품 하계)까지 올라가 장성(章成)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참의대부를 빼면 외국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부터 시작해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급까지 올라간 셈이다.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8295|서형순]]''' 주프랑스공사. 최익현을 도와 파리 코뮌 구성원들을 조선으로 탈출시켰다. * '''[[이호준(1821)|이호준]]''' [[이완용]]의 양부. 원 역사처럼 대원군의 사돈으로 겉으로 군자 노릇하면서 상대 비위 맞추기가 장기다. 1876년에 친조선파를 육성하라는 대원군의 명을 받고 주영공사로 부임했다. 이후 조선으로 돌아와 규장각 제학을 제수받았다. * '''[[홍종우]]''' 원 역사에서 [[김옥균]]을 암살한 것으로 유명한 온건개화파의 일원. 원 역사에서는 명문가 말예로 가정 사정이 좋지 않아 나이를 많이 먹고서야 자비로 [[프랑스]]에 [[유학]]을 갔는데 여기서는 조선이 수교를 할 때 유학생을 보낸다는 사실을 듣고 20살에 홀로 상경하였고 그걸 기특하게 여긴 귀남이 유학에 포함시켜줘서 프랑스 유학을 가게 된다. 도착하고 얼마 안돼서 [[프랑스어]]를 익혀 신문을 김병학에게 번역해주기도 했다. 나중엔 호조정랑에 올라 특허관련 사무를 본다. 이후 최익현 내각에서 호조의 재무참판으로 발탁되었다. 유학가서 배워온 학문으로 가난한 집안을 일으킨 인물이다보니 서민경제에도 정통하고 경제이론가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재무관료로 활약중이다. 김홍집 내각에서는 마침내 호조판서 자리에 올랐다. 이후 노벨이 수학이 인류 복지에 도움이 안된다고 노씨권학상에서 수학 부문을 제외한다는 소식을 듣고 빡돌아서 직접 나서 설득했고[* 경제 전문가다 보니 업무에 수학을 쓸 일이 많았다.] 수학이 수상 항목이 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다. 전봉준 내각이 출범하면서 퇴직에 성공, 현재 노사학원에서 재무학과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 '''[[이용익]]''' 원 역사 대한제국의 군부·탁지부대신. 대원군이 부리는 보부상들로 이뤄진 익문사가 공안서로 이어졌는데 보부상 출신인 그도 공안서에 근무하게 되었다. 상업의 재능은 여전해서 은 소동때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팔아 손해를 보지 않았고 관광 붐이 일어날 때 [[금강산]]에 여각을 짓기도 하였다. 베델과 함께하는 사업도 진행중이라고. 김가진이 방황하던 시기 잡아서 대원군에게 데려갔던 이력 때문에 김가진의 직속부하 취급 받는 중. 역사에 남은 대로 발도 빠르다. 그래서 공안서 어느 국의 국장에 취임하여 북경에 파견 나갔을 때 [[대종(수호전)|신행태보]] 소리를 들었다. 이재에 밝아 세족들이 사업 경영하는 것 감시에 도통하여 김가진의 추천을 받고 전봉준 내각의 재무참판으로 영전했다. 퇴직한 홍종우가 다시 복귀하는 것을 끝내 거절하여, 김옥균 2기 내각에서는 호조판서로 품계가 올랐다. * '''[[김가진]]''' 김응균의 서자. 대원군이 북벌을 목표로 은밀히 육성하고 있는 무관들과 어울리다 병학, 병국 형제에게 찍혀 [[블라디보스토크]]에 가게 됐고 그곳에서 세상을 두고 울분을 토하다가 한 순간 말실수로 러시아의 스파이 노릇을 하게 됐다. 그러다가 민자영이 구축한 정보망에 그 사실이 적발되었고 대원군의 눈에 띄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의 수족이 됐다. [br]인민의 의지를 따라 조선을 방문했던 레닌과는 묘한 우정을 쌓게 되었다. 레닌의 가능성을 꿰뚫어 보고 속으로 잘 가다듬으면 난세를 일으키고 마무리 짓는 천하의 효웅이 되든, 후대에 길이 그 가르침 남기는 철인이 되든 할 것이라 평하였다. [br]원세개를 축출하려다 역으로 함정에 당할 뻔한 후 심기일전하여 대원군과 협의 후 정식으로 공안서의 직책을 맡게 된다. 1894년 정초를 기해 공안서 총관 자리에 오른다. * '''[[윤태준]]''' 주독일공사. [[베를린 회담]]에 참석해 프랑스가 얼마나 열성적으로 조선의 발전을 도왔는지를 세세하게 증언하였다.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에게 바둑판을 진상했고, 사교장에서 농반 진반으로 자신이 동방의 고대 비법 침술을 쓸 줄 안다고 자랑했다가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빅토리아 황태자비]]의 부탁을 받고 당시 황태손이었던 [[빌헬름 2세]]의 팔에 침을 놓기도 하였다. * '''[[주시경]]''' 국어학자. 국문교정청의 괴짜 신동으로 유명하다. 겨레의 말과 글이 주전공이기에 종종 경화시보에 논설을 투고한다. * '''[[정병하]]''' 원 역사 대한제국의 농상공부 대신. 김홍집 내각의 문교참판이다. * '''[[이유승]]''' 원 역사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정치인)|이시영]]의 아버지. 자유당의 추천을 받아 김홍집 내각의 좌의정 자리를 채웠는데 젊은 날에도 하지 않았던 밤샘을 일흔 가까운 노구로 하다 보니 반년 만에 과로로 쓰러졌다. * '''[[조민희(1859)|조민희]]''' 원 역사 [[경술국적]]의 일원. 좋게 말하면 무난하고 나쁘게 말하면 다소 용렬한 외무관료이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처럼 중한 곳에 보내기에는 연륜이나 자질이 한 급쯤 떨어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공사로 부임했다. * '''여조현'''(=[[여준(독립운동가)|여준]]) 원 역사 독립운동가. 외국 말에 능통하여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민영환의 뒤를 이어 영국 공사가 되었다. 사실 본 뜻은 언제고 조선 땅에 훌륭한 학교를 세우는 데 있다. * '''김창암'''(=[[김구]]) 원 역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2~4대 주석.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반상의 구별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니 반드시 양반이 되어라"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상경하여 같은 [[황해도]] [[해주]] 출신의 안인수 댁에서 식객으로 있으면서 고시를 준비한 끝에 당당히 형조 좌랑이 됐다. 안인수댁에서 머무는 동안 또래 안중근과 절친한 사이가 됐다. 이후 김가진의 눈에 띄어 공안서로 부서를 옮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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