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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군밤의 왕/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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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 '''[[알프레드 노벨]]'''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스웨덴]]의 사업가. 제물포가 동아시아 다이너마이트 거래의 허브로 성장하자 시장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조선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오페르트의 제안을 받아들여 제물포에 생산 공장을 차리기로 결정했는데 당시 유럽 언론으로부터 전쟁상인이라고 공격을 받고 있던 터라 군용 판매는 허락할 수 없다고 나왔다. 이에 귀남이 어차피 생길 [[노벨상]] 지금 만들자는 생각으로 노벨에게 조선과 공동으로 출자해 기금을 만들고 이 기금에서 출연하여 매년 전 인류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한 우수한 학술적 성과에 대해 표창할 것을 제안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자신의 양심과 회사의 명성을 지킬 수 있겠다고 생각하여 제안을 받아들였고 일명 '''노씨재단'''이 창설된다. 본래 역사와 달리 조선의 협력이 있던 만큼 원 역사에서는 없었던 유학부문의 상이 새로이 생겼다. 또한 노벨수학상은 노벨이 수학이 실용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여 만들지 않았는데, 이 작품에서는 홍종우가 발끈해서 나선 탓에 노씨산학상이 생겨났다. * '''[[앙리 뒤낭]]''' 스위스인. [[국제적십자사|국제적십자위원회]]의 창시자.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최익현과 우정을 나누어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본인은 신경쓰지 않았으나 최익현보다 6살 많아서 최익현은 칼같이 형으로 불렀다.] 파리 코뮌 사람들이 귀국할 때 유럽에 돌아간들 호구할 방도가 없어 따라가지 못하고 한양에 남아 적십자사 대표 겸 교사 노릇을 하다가 1896년 시점엔 나이가 나이라 은퇴하고 노후를 보내고 있다. 본인의 이상과 유럽 각국의 현실의 충돌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지만 조선이라는 아시아의 이름없는 나라가 본인의 이상에 공감하고 지원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그러나 [[을미정난]]이 일어나자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조선의 군사규모에 경악해 본인이 생각하던 평화와 도리를 사랑하던 나라가 아니라며 실망하는 반응을 보여 잠시 최익현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후 조선이 중국을 정복해 이권을 울궈내지 않거나, 아주 대회에서 비롯된 평화 회담을 주최한 덕분에 어찌저찌 잘 해결된 모양이다. 실제로 평화 회담 당시 뒤낭 등이 그 의도에 찬성하는 쪽이었다는 서술이 나온 적도 있고, 최익현과 별다른 문제 없이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나온 걸 보면 더더욱. 사후 유럽 전역에 대전쟁이 일어나자 최익현을 선두로 일어난 창의단이 적십자기를 들고 각 전역에 인도적 지원을 수행했는데 뒤낭 본인은 저승에서 이를 보고 흡족했을 것이다. * '''[[알폰소 13세]]''' [[스페인]] 제18대 국왕. 대전쟁 중 [[모로코]]를 침략했다가 도리어 크게 패하여 위신이 땅에 떨어진 결과 전쟁이 끝나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자리에서 쫓겨나고 왕정 자체가 무너졌다. 여기서는 스페인 왕정복고가 일어나지 않고 공화국 체제가 계속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보르본 왕조 입장에서는 배드엔딩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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