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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군밤의 왕/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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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 *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 독일 제국 제2대 카이저. 권위적인 아버지, 제국주의를 추종하는 아들과 달리 선량한 자유주의자다. 암을 방치하여 돌연 사망한 원 역사와 달리 후두 전체를 들어내는 대수술을 하여 수명이 늘었지만 벙어리가 됐다. 본인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자신이 죽고 자기 아들이든 비스마르크의 후임이든 누구도 독일의 앞날을 마음대로 망가뜨릴 수 없도록 자유주의적인 개혁을 강행하여 나라의 제도를 바꾸었다. 그럼에도 빌헬름 2세가 제국주의적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자 '''하나의 카이저, 하나의 제국, 하나의 국민'''을 통해 카이저 개인이 아닌 독일인 전체가 원해야만 국가를 움직이도록 빌헬름 2세에게 가르침을 내린 뒤 1892년 안락사를 택한다. * '''[[빌헬름 2세]]''' 독일 제국 제3대 카이저. 프리드리히 3세의 아들. 어렸을 때 어머니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가 자신의 팔을 고친답시고 주독일 조선 공사 윤태준에게 부탁하여 침을 맞았는데 효과가 없어 조선에 반감을 가지게 됐다. 안 그래도 영국과 프랑스가 소위 '선의'를 명분으로 내세워 구축한 세계 질서와 (빌헬름 입장에서) 거기에 기생해서 이득을 보고 있는 조선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원 역사처럼 공자가 유럽을 침공하는 악몽까지 꾸어 [[황화론]]을 신봉한다. 태자 시절 아버지에게 속히 다른 강대국들이 깃발을 꽂지 않은 백지의 땅에 호엔촐레른의 독수리를 박아넣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동맹인 영국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여론을 선동했지만, 조선의 개입으로 거하게 실패했다. 이때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국정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콧대 높은 융커들과 헛바람 든 자유주의자들을 제멋대로 움직일 자신이 없었기에 국수주의와 반유대주의에 심취한 삼류 정객들을 그러모아 의회에서 [[세계 정책]]을 지지해 줄 '독일민족당'을 꾸렸는데 품격 없고 뻔히 속이 보이는 인간들뿐이라 영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도 직접 의회정치나 대중들 선동하는 일에 손을 대기 시작하여 언행 드러내기 전 한 번쯤은 생각하는 습관을 들였다. 또한 육해군 예산 편성 과정을 직접 챙기게 되면서 군부가 준비하는 [[슐리펜 계획]]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게 됐다. 팬덤에서 요약하기를 '나 혼자 전쟁하자고 되는 게 아니라 의회를 설득해야 하니 이리저리 설명을 들어봤는데, 나부터가 설득이 안되네?' 하도 무리수라서 수정을 요구해서 그나마 현실적으로 바꾼 계획조차 이거 정말 괜찮은 거냐고 의아해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망했다.[* 작중에서는 벨기에가 콩고인 수백만을 서류상 군대로 징집해서 독일에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에 원 역사와 달리 벨기에 노선을 사용하지 못했는데, 작중에서 군사적 묘사가 자세히 없어서 원 역사와 다른 노선일 가능성이 높지만 원 역사에서 독일이 대전 때마다 왜 가만히 있는 중립국인 벨기에를 공격하면서까지 벨기에 노선을 고집했는지를 고려하면 원 역사보다 훨씬 무리수적인 공격 계획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895년, 드레퓌스 사건 때 난데없이 프랑스 내부의 반유대주의를 선동한다는 누명을 썼다. 1901년,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장례식에 참가한 뒤 귀국하여 [[브레멘]]을 순방하다가 정신이상자 요한-디트리히 바일란트에게 습격 당해 뺨이 살짝 찢어졌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이를 빌미로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아나키즘 단체를 규탄하는 회담을 개최했다. 그런데 조선의 세자 이척의 '선의'로 일부 온건파 아나키스트들의 협조를 얻는 선에서 회담이 끝났다. 1906년, [[영러협상]]이 진행되면서 독일의 고립이 가시화되자 [[레벤스라움|독일인의 생활공간]]을 제외한 식민제국 자진 해체라는 승부수와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왕국을 적극적으로 회유하여 [[모로코 위기]] 때 [[삼국협상]]과 대등한 협상력을 보였다. [[적백내전]]이 터지자 키예프 정부 지지를 선언하며 [[1차대전|전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생각보다 피해가 커지고 창의단의 개입으로 염전 사상이 퍼지며 압박에 시달리던 중 때마침 티푸스로 쓰러진 최익현에게 병문안을 빙자한 불만 토로를 하러 왔다가 최익현 최후의 유세를 듣고 어느 정도 감화되어 라임나무 클럽을 찾아가 자신이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위할테니 세계에 평화를 확립할 방안을 모색해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다. * '''[[오토 폰 비스마르크]]''' 독일 제국 초대 수상. 작중 조선에서는 '덕국 정승 비수막'으로 알려져 있다. 만주 철도사업을 훼방을 놓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조선의 '선의'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이런저런 나비 효과 때문에 프랑스가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일보 직전이라 말년에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3세를 도와 자유주의 개혁을 주도하지만 외교와 달리 내정에는 범재에 가까워 시행착오를 겪었고, 결국 이런 자유주의적 개혁이 보수파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반발을 불러 원 역사보다 조금 늦은 1892년 은퇴하게 된다. 원 역사대로 1898년에 사망한다. * '''[[카를 마르크스]]''' 원 역사와 같이 영국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파리 코뮌이 최익현과 뒤낭의 중재로 항복하자 배신자라고 비난했고 조선의 만민공산당 놀음에 기함하고 있다. ~~파리 코뮌 사람들은 수염 난 프로이센 놈이 기함할 걸 즐겼다~~ 하지만 본인에게 직접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전봉준]]은 살림에 도움도 되고 심심함도 풀 겸 거두어서 가르치고 있었다. 이후 전봉준이 자신의 막내딸과 결혼하는 것까지 보고 사망한다. 작중 조선에서는 [[유럽|구주]] 땅의 이름난 선비로 알려져 있으며 공자, 맹자처럼 '마자(馬子)'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봉준의 사상이 자신과 많이 달라서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지만 군밤 세계관에서는 공산주의 주류가 마르크스-전주의라는 웃픈 상황이 일어났다. 그와 별개로 사적으로는 전봉준이 은인이기도 한데 원 역사에서 마르크스가 아끼던 막내딸 엘러노어가 남편 잘못 만나 불행하게 살다 자살한 반면 본작에서는 전봉준과 사이 좋은 부부가 되어 잘 살았고 만민공산당 영수와 국회의원 격인 참의대부까지 되기 때문. * '''[[https://en.wikipedia.org/wiki/Otto_Böckel|오토 뵈켈]]''' 원 역사 독일의 국수주의, 반유대주의 정치가. 정치적 친위 세력이 필요했던 빌헬름 2세의 지원에 힘입어 [[세계 정책]]을 적극 찬동하는 독일민족당을 차렸다. 사람들 선동하는 데 재주가 있지만, 천박하고 욕심이 많다. 그렇지만 빌헬름 2세의 불독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조선이 정파를 초월한 정치인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 '라임나무 클럽'을 세우자 거기에 참가한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참여했는데, 세계정책이 요구하는 예산이 지나친 감이 있다는 비판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본인 왈 "지갑 열리기 전 애국심과 열린 뒤 애국심이 다르더라." * '''[[베른하르트 폰 뷜로]]''' 독일 제국 제4대 수상. 원 역사대로 빌헬름 2세 비위 맞추기의 달인이다. 영국 없이도 독일 홀로 양면전선을 감당할 수 있다는 육군과 로열 네이비를 앞지르기 위해 건함 예산을 크게 늘려야 한다는 해군 사이에서 고통 받고 있다. * '''[[https://ko.wikipedia.org/wiki/알프레트_폰_티르피츠|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독일 제국 해군대신. 제국의 군인답게 내각의 허가없이 독자적으로 조선에 사격통제장치 구입 의사를 전달했다. 그런데 조선이 사격통제장치를 넘길만한 명분이 필요하다며 평화를 위해 쓰일 기술을 공유하자고 역으로 제안하자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서 뵐로우를 찾아갔다. * '''[[에리히 레더]]''' 원 역사 [[크릭스마리네]] 원수. 주조선 독일공사관 주재무관이다. 원세개가 난을 일으켰을 때 놀라운 군사력을 보여준 조선을 경계하여 소위로 임관하였을 때부터 아시아 관련 소식이 신문에 실릴 때마다 꾸준히 정독하곤 하였지만, 도덕과 실리 중 무엇이 조선의 진의인지 알 수 없어 의문만 깊어지고 있다. *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사회민주주의]]의 창시자. 선황 프리드리히 3세의 개혁 덕분에 맘놓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큰맘 먹고 '마르크스-전 노선'과의 타협을 선언했으며 조선이 세운 '라임나무 클럽'에서 알게 된 자유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세계정책'이 과도한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小 몰트케) [[헬무트 폰 몰트케]]의 조카. 경쟁자였던 한스 베셀러가 빌헬름 2세가 예전과 달리 [[슐리펜 계획]]을 영 마뜩잖게 여기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자폭한 덕분에 신임 참모총장이 됐다. 그러나 제 나름대로 수정한 슐리펜 계획 역시 빌헬름 2세 입장에서는 거기서 거기라 여러모로 곤란한 입장이다. 이후 수정된 몰트케 계획은 서부전선에서 프랑스군에게 막대한 출혈을 강요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자신의 이름을 딴 계획으로 수십만 젊은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심대한 충격을 받아 신경쇠약으로 참모총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 '''[[로자 룩셈부르크]]''' 원 역사 독일 제국의 공산주의자. 러시아에서 [[적백내전]]이 터지고 빌헬름이 전쟁을 준비하자 이에 반대하면서 전쟁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한 베른슈타인 등과 대립했다. 이후 창의단의 활약으로 종전의 기미가 보이자 정부 측에 진압의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비폭력 집회를 열어 카이저를 압박했다. * '''[[에리히 폰 팔켄하인]]''' 원 역사 독일 제국 제5대 참모총장. 자신의 이름을 딴 계획으로 수십만 젊은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물러난 몰트케의 후임으로 임명됐다. * '''[[파울 폰 힌덴부르크]]''' 원 역사 독일 제국 제6대 참모총장·바이마르 공화국 제2대 대통령. 전세의 불리함을 이유로 파직당한 팔켄하인의 후임으로 기용됐다. 철저한 방어보다 공격으로 소모전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르덴 방면에 전력을 투입하여 프랑스 영토 일부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염전 사상이 퍼지고 비폭력 집회가 잇다르자 단호하게 진압하겠다고 했다가 빌헬름 2세에게 군내 티푸스나 잘 관리하라는 핀잔을 들었다.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원 역사 바이마르 공화국 초대 대통령. 사민당 내에서 가장 우파에 속한다는 이유로 독일제국 거국내각의 대표로 선출되어 대전쟁 종전 협상에 나섰다. * '''[[아돌프 히틀러]]''' 원 역사 [[나치 독일]]의 [[퓌러]]. 미대에 낙방하고 비엔나에서 무위도식하던 중 박물관에서 동양화를 보고 심심풀이로 모작을 시작했는데 이게 의외로 잘 팔려서 이쪽으로 데뷔할까 생각도 할 무렵[* 이때 미대에 낙방한 자신을 비롯한 몇몇 낙제자들이 실력이 없는 게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서양 화풍과 적성이 맞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며 자신의 그림이 공익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히틀러가 대전쟁에 참전했을 당시 원 역사보다 독기가 훨씬 덜했던 건 이미 자신의 그림이 어느 정도 인정받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대전쟁이 터지자 엉뚱하게도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리라 믿고 독일로 건너가 자원 입대했다. 원 역사에선 다민족군인 오헝군에 입대하기 싫어서 독일군에 자원입대한 것인데, 이 세계의 히틀러는 민족차별의식 그런 거 없고 단순히 영감 때문에 당장 전쟁 시작한 독일군에 입대한 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참전이 확정된 걸 알고서 "좀 기다려서 오헝군에 입대해도 됐겠다, 괜히 독일군으로 왔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작중 서술에서도 '''"그것도 딱히 정상은 아니다"'''고 딴지를 거는 것이 소소한 개그. 이후 프랑스어를 조금 읽을 줄 안다[* 다만 정말 조금 읽는 수준에 그쳐서 진지를 이동해서 지도상에 표시된 위치가 달라졌다는 말을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있었는데, 없었습니다.]]'''라고 어설프게 통역했다.]고 창의군을 이끌고 유럽에 도착한 최익현의 통역병이 되었는데, 마침 전선에서 목탄으로 그린 동양화를 최익현에게 보여주고 품평을 부탁하였다가 최익현에게 "더 정진하면 뜻하는 바를 이룰 것이다" 상당히 에둘러서 표현한 평을 받았다. 철종 때부터 선비로 살아오면서 서화에 도가 튼 최익현 입장에서는 영 눈에 차지 않는 어설픈 그림이었겠지만 통역병으로 자원하며 수고해주고 참혹한 전장에서까지 예술혼을 불태우는 서양 청년에게 차마 쓴소리를 할 수 없어 그렇게 돌려 말한 것이었지만 히틀러는 그걸 듣고 동양의 유명인사가 자신의 그림을 인정해 주었으며 이제 전쟁이 끝나면 유명해질 일만 남았다고 몽상 섞인 기대를 품게 된다. 그 후엔 전쟁에 대한 열의는 가시고 참호에서 어찌어찌 살아남으며 종전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계속 서부전선에 복무하던 중, 위에서 내려온 루덴도르프 공세에 따른 공격 명령을 보고 '''이딴 공세 명령 따르느니 다 때려치우겠다고''' 선언했고[* 히틀러 본인만 이런 건 아니고 소속 소대 소대장과 하사도 명령서를 보고 --한마음으로-- 옘병을 시전하며 생각 없는 별들을 욕한 뒤 하사는 대대장에게 이거 하면 안된다고 사정사정하기도 했다.] 공세명령을 강행하려는 대대장에게 내가 직접 저쪽 가서 싸우고 싶냐고 물어본다며 단독으로 무인지대를 건너가 건너편의 프랑스군[* 이때 창의단을 보조하던 업무 때문에 정말로 프랑스군 중 하나가 히틀러를 알아보는 장면이 나온다. 카이저 콧수염보다 인중 주변에만 깔끔하게 남기는게 어울리겠다는 소소한 평가는 덤.]에게 '''우리는 더이상 싸우기 싫은데 그쪽은 어떠냐'''고 당당하게 말하고, 프랑스군 역시 니벨 공세로 엿을 먹고 염전사상이 퍼진 건 마찬가지였던지라 히틀러의 주장에 동의하며 전선 곳곳에서 항명이 시작, 서부전선에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난 상호 암묵적 항명의 주도자 중 한 명이 된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이 항명의 시작은 자신이었다고 주장했는데 작중 시점에선 히틀러가 앞장선 것은 맞으나 항명이 서부전선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지라 히틀러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졌다.] 결국 항명죄로 영창에 가긴 했지만 영창 안에서도 본래 역사에서 보여준 선동가 기질을 십분 발휘한 대사자후로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성토하며 독일군 내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전역하고 나서 자신감을 가득 품고서 뮌헨과 베를린을 오가며 그림을 그렸지만 "이전보다는 낫다"는 수준의 평밖에 듣지 못했다. 무슈 최에게 칭찬을 받은 자신의 그림이 박한 평가를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곰곰히 생각한 결과 전쟁을 조장하고 평화에 반대하는 사악한 자들이 똘똘 뭉쳐서 반전의 기수로 나선 자신을 탄압하는 것이라는 [[음모론|놀라운 결론]]에 도달하여 때마침 만국순방 중 베를린을 방문한 귀남에게 자신이 친 난초를 출사표 삼아 선물하고 정계에 투신했다. 그 후 독일평화주의노동자연맹을 결성, 사회주의의 독주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과 보수파 내에서 비교적 온건한 쪽에 들었던 세력들의 지지를 한데 모아 국민자유인민당('''Na'''tional'''li'''berale Volkspartei)--나포당--을 창당하고 어찌어찌 세를 불린 결과 마침내 독일의 수상이 됐다. 비록 헤르만 괴링, 파울 요제프 괴벨스 등 당 중진의 비리와 부패 문제 때문에 그리 오래 집권하지는 못하여 인지도는 낮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 식민지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불안에 휩싸였던 프랑스와 영국을 다독이며 한데 묶어 취약했던 유럽 내 협력체제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단순 망상증을 넘어 진심으로 평화주의에 심취했던 히틀러는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로도 국제'''[[돌격대]]'''(International Stormtroopers)라는 NGO를 꾸려 세계를 누비면서 재해 구호활동을 하였다. 원 역사에서 그를 독재자의 길로 이끌고 파멸을 선사했던 비정상적인 망상증은 여전했으나 조선이 유럽에 퍼트렸던 '''선의'''의 나비효과가 망상증의 방향을 인종차별과 전체주의가 아닌 평화주의로 틀어버리면서 본래 역사와 완전히 다르게 세계평화를 위해 평생을 내걸은 위인으로 기록되는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되었다. 여러모로 작중 조선이 전세계에 퍼트린 선의의 큰 수혜자. 히틀러가 그린 풍경화 중 산수나 바다를 그린 그림은 의외로 동양화와 비슷한 정취가 느껴지는 편이라서[[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515959|1]][[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515970|2]] 동양화로 전공한 이후 수익이 늘거나 "이전보다는 낫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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