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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군밤의 왕/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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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민주노동당 ===== *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원 역사의 [[블라디미르 레닌]]. 어린 나이에 원 역사보다 늦게 터진 알렉산드르 2세 암살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하여 당국의 추격을 피해 동지들과 함께 조선으로 도주했다. 도주 과정에서 직면한 냉엄한 현실에 과연 혁명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고, 인민의 의지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 하나에 알아서 쪼개지는 동안 자의반 타의반으로 혼자 공안서를 상대했다. 이 과정에서 김가진과 묘한 우정을 쌓았다.[* 여담으로 김가진과 마우재 장기로 알려진 체스를 두는데 몇 번이나 김가진이 패배하여 한 수만 물려달라고 부탁함에도 거절한다. 그래서 김가진이 레닌에게 그렇게 마음 못되게 쓰다간 대머리가 된다고 일침을 날렸다.] 인민의 의지가 사실상 와해된 이후에는 6개월 동안 봉준 부부 밑에서 사회주의를 공부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조르주 클레망소|혁명이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어서, 폭력에만 맡겨둘 수 없는 법]]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br]러시아로 귀국한 이후 "일린"이라는 가명으로[* 원 역사에서도 일린이라는 가명을 쓴 적이 있다. 당대 혁명가들은 가명을 여러 개 쓰는 경우가 많았고 일린도 그중 하나였는데, 일린은 주로 제정기 출판과 관련된 가명이었다.] '노동자'''농민'''계급해방투쟁동맹'을 결성,[* 원래 '노동자계급해방투쟁동맹'이고 원 역사에서는 이 무렵 불온 단체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시베리아로 유배를 갔다. 소설에서는 앞서 언급되었듯이 불온 세력을 드러내 놓고 탄압하지는 않기 때문에, 레닌도 가명을 쓸 뿐 활동 자체는 공공연히 하고 있으며 유배 가지도 않았다.] 1898년에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1차 대회에 참가했는데 진정한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반 농민들까지 포용하여야 하고 교회의 개혁적 요소들과도 임시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는 이른바 '일린 노선'을 주장하면서 정교회 신부 가폰의 입당을 지지하여 겔판드, 마르토프 무리에게 쫓겨났다. 이에 뚜렷한 공감대가 없는 저치들이 합심한 것에 모종의 힘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이왕 분열이 공식화된 김에 차별화를 도모하기 위해 봉준에게 편지를 보내 가르침을 구했다.[* 여담으로 이때 한창 탈모가 진행중이라 혹시 동양 민간요법 중 탈모 치료법이 있나 물어보는 추신을 2번이나 적었다가 지운다. --김가진의 저주가 실행되었다--] [br]이후 은밀히 마르토프 무리를 지원한 독일이 계획대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을 조선의 앞잡이라고 공격하기 시작하자 《불씨(Iskra)》를 창간, 창간호에서 노동자들을 포섭해 파업이나 투쟁을 벌이려는 계획은 당내 '소수파(멘셰비키)'의 독단에 불과하며, 러시아의 벗 조선과 긴밀한 연을 맺고 있는 것은 자신이 이끄는 '다수파(볼셰비키)'지 소수파가 아니므로 독일이 일말의 진실에 9할의 거짓을 섞은 무고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러시아의 개혁은 '마르크스-전 노선'에 의해 담보된다고 주장했다. 이후 안 그래도 자영농 육성을 꾀하던 비테의 부탁을 받고 농촌 개혁 여론 조성에 나섰다. [br]그런데 농촌에서 시작된 개혁 여론이 니콜라이 2세가 헌법 제정과 의회 설치를 약속할 정도로 커져서 자신을 기용한 비테를 비롯한 반동 세력의 반감을 크게 사고 만다.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다시 조선으로 향하게 되고 스승인 봉준에게 하소연하기에 이른다. 이후 조선의 물밑 도움 덕분에 비테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영러협상]]의 초안을 가지고 화려하게 귀국하였고 이듬해 사회민주노동당의 영수로서 두마에 당당히 입성했다. [br]대전쟁에서 키예프 정부를 항복시키면서 소련을 건국하고 원 역사와 달리 적백내전으로 폐허가 되지 않은 소련을 강대국으로 발전시킨다. 그러나 지병으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사망한다. * '''[[https://ko.wikipedia.org/wiki/게오르기 가폰|게오르기 아폴로노비치 가폰]]''' 러시아 정교회 사제, 혁명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잃고 방황하던 중,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주교]]의 추천을 받아 신학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도시 빈민의 참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레닌의 '노동자농민계급해방투쟁연맹'에 끼게 됐다. 원 역사대로 [[오흐라나]]의 정보원이지만, 태생적으로 속내를 도저히 감추지 못해 이미 레닌에게 그 사실을 들켰다. 그런데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정교회 사제'인, 그러니까 체제의 편인 교회의 사람을 모임에 끼어줄 수 있는가를 두고 마르토프와 레닌이 논쟁을 벌여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내부에 갈등이 발생했다. * '''[[표트르 스톨리핀|표트르 아르카디예비치 스톨리핀]]''' 원 역사의 러시아 제국 제3대 총리. 일린(레닌)과 합심하여 마을 한둘을 정해 농지개혁정책을 실험하고 있다. 작중 일린이 과장한 평가에 의하면 농업생산성이 5배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를 발전시킨다는 데 있어서 뜻을 함께할 뿐 그 발전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일린과 공적인 교류 외의 친교는 삼가고 있다. 그래도 정치에는 재주가 없는 자신에게 일린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어 사회민주노동당과 교류를 이어가는 중이다. 입헌당이 출범한 이후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고는 있지만 라스푸틴이 니콜라이 2세의 총애를 받고 있어 사회민주노동당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비테 사후 두마의 강력한 '간언' 덕에 재무장관직을 이어받았다. *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주가슈빌리''' 원 역사의 [[이오시프 스탈린]]. 특유의 성격은 여전하지만 본작의 볼셰비키가 조선의 만민공산당의 영향을 받아 유화적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원 역사처럼 악명을 떨치지는 않았다. 그를 만난 조선인의 평에 따르면 "치세의 명신은 못 되지만, 시대가 원하는 인물"이라고 하는데, 치세의 명신이자 난세의 간웅이 될 거라 예언받은 조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다.[* 원 역사의 스탈린이 조조보다 훨씬 잔혹해서 명군 소리를 못 듣지만 시대가 스탈린을 필요로 했음을 고려하면 정말 적절한 평가.] 볼셰비키의 정파지 《불씨(Iskra)》를 조지아어로 무단 번역하여 조지아 티플리스(트빌리시)에서 대량 유포한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죄목이 가벼워 금방 석방됐다.[* 원 역사처럼 불온 서적이라서 체포된 게 아니라, 정식으로 허락받은 정파지는 맞는데 출판법 위반으로(...) 체포된 거라 은근 코미디.] 원 역사의 제정 러시아 시절 주 가명인 코바를 사용하고 있다고 언급된다. 이후 정식으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했는데, 본작에서는 알렉산드르 3세 때부터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대처법이 "양지로 끌어낸 다음 분열시킨다"로 기조가 바뀐 상태라 사회민주노동당은 일찍부터 정식 정당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따라서 코바도 강도일을 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반동 세력이 라스푸틴을 습격하자 네바 강 다리 아래에 널브러져 있던 그를 찾아 데려온다. 라스푸틴을 찾은 과정이 가관인데, 자신이라면 [[대숙청|정적을 처리한 뒤 시체를 대략 그쯤 되는 장소에 버렸을 거라고]]. 반동 세력으로 전락한 [[오흐라나]]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체카]]의 수장이 되었으며, 이 시기에 가명을 코바에서 그 악명 높은 스탈린으로 바꿨다. 내전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내전을 반대하는 일부 볼셰비키들을 숙청해야 한다고 건의하나 조선이 수를 꺼낼 것이라 생각한 레닌에 의해 반려된다. 이후 반동 세력들이 저들끼리 충돌하다 자멸해서 결과적으로 레닌의 판단이 맞았다. 본작에서는 소련 체제로 전환되긴 했지만 입헌군주정을 기반으로 훨씬 원만하게 러시아 혁명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여기의 스탈린은 원 역사의 강철의 대원수와 같은 악명을 떨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시점의 소련 언급을 보면 스탈린이 원 역사만큼 과격한 행보를 보이지 않은 건 확실해 보인다. 소련이 무난하게 경제 성장을 해서 동유럽과 유라시아 일대에서 경제 블록을 형성해 세계 3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언급되기 때문.(1위는 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블록, 2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아메리카 블록이다)] 레닌 사후 볼셰비키 사이에서 권력 투쟁이 발발했다는 언급만 있기 때문에 스탈린이 집권했는지는 불명이다. 젊은 시절 출판법 위반 체포의 발단이 되었던 불씨 잡지가 원 역사와 달리 조선식 근왕 공산주의 사상이었음을 고려하면 본작의 스탈린은 마르크스-전주의 계통의 사상가로 추정된다. *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시테인''' 원 역사의 [[레프 트로츠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젊은 중진이다. 개혁을 방해하는 기득권 세력을 확실히 억누를 필요를 느끼고 있다. 내전과 대전쟁이 발발하자 전쟁차관 대행으로 뽑혀 전쟁과 관련된 업무를 보는데 의외로 적성에 맞아 놀라워하는 중. *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 콜론타이]]''' 여성 혁명가. 귀족 출신이라 귀족들이 사회민주노동당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 '''[[그리고리 라스푸틴|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 원 역사의 괴승 라스푸틴. 남들 현혹시키는 재주가 탁월한 사람 어디에 없을까 고민하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중진들 앞에 돌연 나타나 "너희 탕아들의 죄가 크고도 무겁다, 지금이라도 회개하라"는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일린의 설득이 통했는지 콜론타이에게 반했는지 사민노동당에 합류하였다. 독자들은 라스푸틴이 사민노동당에 들어가서 황당하다는 평이지만, 사실 라스푸틴은 시베리아 가난한 마을 출신이었기 때문에 당시 연해주와 시베리아를 시작으로 농촌 개혁 운동을 펼치고 있던 사민노동당에 입당한 것이 마냥 이상한 건 아니다. 원 역사대로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 황태자의 [[혈우병]] 증세를 완화시킨 뒤 차르 일가 근처를 맴돌면서 두마를 설치한 [[니콜라이 2세]]의 성단을 찬양하며 볼셰비키들이 선량한 백성의 뜻을 차르가 이해하고 도울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대해 강조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반동파의 테러로 죽을 뻔했지만 주가슈빌리의 발빠른 구조로 목숨을 건졌다. 이때의 경험으로 이번에야말로 뭔가 달라져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랏일 맡을 만한 교양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 '''[[펠릭스 제르진스키|펠릭스 예드문도비치 제르진스키]]''' 원 역사 [[체카]]의 설립자. [[폴란드인]]으로 작중에서는 [[체카]]의 일원으로 [[스탈린]] 밑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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