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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군밤의 왕/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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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료 ==== * '''[[https://ru.wikipedia.org/wiki/Бюцов,_Евгений_Карлович|예프게니 카를로비치 뷰초프]]''' 러시아의 외교관. 뷰초프 가는 조상이 스웨덴 출신인 외교명문가였다. 주조선러시아공사대리. 원 역사에서는 일본 하코다테에서 업무 역량을 쌓지만 본작에서는 조선의 개항이 앞당겨져 한양으로 오게 됐다. 조선이 영국의 제안을 받아 노비세습제를 폐지하는 걸 본 고르차코프 공작에 의해 연해주로 보내진다. * '''[[https://en.wikipedia.org/wiki/Karl_von_Struve|카를 폰 슈트루베]]''' (=슈트루베 남작) 러시아의 외교관. 러시아령 [[에스토니아]] [[타르투]] 출신의 [[발트 독일인]]. 원 역사에서는 뷰초프처럼 일본에 먼저 파견된 외교관이고 그 후 파견된 미국에서 다기 컬렉션과 워싱턴의 문화계 중요 인물로 유명했다. 뷰초프의 후임으로 조선에 왔는데 여기서도 찻잔과 도자기를 모으는 게 취미라서 조선 도자기로 컬렉션을 만드는 등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내던 중 [[녹둔도]] 분쟁이 터져 마음 고생을 했다. * '''[[https://ko.wikipedia.org/wiki/니콜라이_무라비요프아무르스키_백작|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무라비요프-아무르스키]]''' (=무라비요프 백작)[* 원 역사처럼 여기에서도 아무르 강 북쪽 땅을 청에게서 뜯어낸 아이훈 조약의 공로로 아무르스키 백작위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최대 후원자. 원 역사에서 동시베리아 총독을 역임한 인물이다. 러시아 역사와 전통의 공갈외교로 '조러수호조약' 개정을 이끌어냈으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조선 농민들의 개척 러시로 인해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연해주]] 일대의 경제가 조선에 종속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 '''[[https://en.wikipedia.org/wiki/Alexander_Gorchakov|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고르차코프]]''' (=고르차코프 공작) 원 역사처럼 19세기 말의 러시아의 외무장관. 차르의 제일가는 일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 '''[[https://en.wikipedia.org/wiki/Nikolay_Pavlovich_Ignatyev|니콜라이 파블로비치 이그나티예프]]''' (=이그나티예프 백작) 원 역사에서 [[그레이트 게임]] 관련 사무를 담당한 외교관. [[히바 칸국|히바]]와 [[부하라 칸국|부하라]]를 합병하는데 공을 세웠다. 고르차코프의 후임이 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조선의 꾀에 번번히 당하는 중. 정확히는 매번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것이다. 작중에서 조선이 뭔가 할 때마다 러시아의 국익을 침해하려는 음흉한 속셈이라고 생각하는데, 적중률이 거의 0%에 가깝다. *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 러시아의 외교관. 청에 공사로 파견된 이그나티예프의 부하로 조선에 친러파 육성을 명 받고 조선에 왔다. 원 역사에서처럼 조선과 조선 문화에 애정을 가지고 있어 대원군에게 석파란을 개인적으로 부탁하는 면모도 보인다. 나중엔 슈트루베 남작의 후임으로 조선에 부임한다. 러시아와 프랑스의 동맹 제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김홍집에게 조선은 더 이상 중립국으로 놔두기는 너무 커졌다고 말하며 유럽국과 손을 잡는 편이 좋을 거라고 충고한다. 1894년에 다시 조선에 공사로 파견되었다. * '''[[https://en.wikipedia.org/wiki/Arthur_von_Mohrenheim|아르투르 폰 모렌하임]]''' (=모렌하임 남작) 주프랑스 러시아 대사.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조선에 조러불동맹을 제의한다. * '''[[https://en.wikipedia.org/wiki/Paul_Simon_Unterberger|파벨 시몬 운터베르거]]''' (=파벨 표도로비치 운터베르거) [[니콜라이 2세]]의 연해주 방문 당시 군정장관으로서 사실상 조선인에게 종속된 연해주의 상황에 불만을 품고 니콜라이 2세에게 정해진 길이 아닌 조선인 구역으로 가길 권유하여 연해주의 실상을 간접적으로 고발한다. 그 뒤 니콜라이 2세에게 강경 대처를 권유했지만 [[천도교]]를 앞세운 조선인들이 관청 앞으로 몰려와 읍소하자 우유부단한 니콜라이 2세가 주저하다 온건책을 지시하면서 계획이 실패하게 된다. * '''[[세르게이 비테|세르게이 율리예비치 비테]]''' 원 역사 러시아 제국 초대 총리. 자영농 육성을 통한 내수시장 활성화를 꾀하던 차에 농촌 개혁을 부르짖는 《불씨(Iskra)》를 읽고 볼셰비키가 조선의 공산당처럼 선을 넘지 않는 체제 개혁을 꿈꾼다고 착각하여[* 사실 선을 긋는 힘을 얻어 그 선을 움직여버릴 계획이라 선을 넘지 않는 개혁을 꿈꾸는 건 맞다.] 레닌을 따로 불러 머리 굳은 지주들을 압박할 여론몰이를 부탁했다. 이때 레닌에게 잠재적 동조자라고 건네준 명단에 [[표트르 스톨리핀|표트르 아르카디예비치 스톨리핀]]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이후 본인의 예상을 초월한 볼셰비키 돌풍에 당황하여 이를 억제하고자 했으나 확실한 성과를 내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을 탄압할 명분이 없어 "조선의 속담대로 호랑이를 키웠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반동세력의 테러로 라스푸틴의 목숨이 위협받은 상황에서도 사회민주노동당이 선을 지키는 것을 보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판단, 두마의 권한 확대를 꾀하였으나 이를 배신이라고 판단한 반동세력의 폭탄 테러로 원 역사보다 6년 빨리 사망했다. * '''[[알렉세이 쿠로팟킨|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쿠로파트킨]]''' 군인. 두마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블라디미르 수호믈리노프를 제치고 스톨리핀 내각의 전쟁성 장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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