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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군밤의 왕/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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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실 ==== * '''[[알렉산드르 2세]]''' 러시아 제국 제12대 차르.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선방하는 등 원 역사보다 더 많은 업적을 쌓았지만 1886년에 결국 인민의 힘이 저지른 테러로 사망했다. 원 역사보다 5년 더 살았다. * '''[[알렉산드르 3세]]''' 러시아 제국 제13대 차르. 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를 암살한 인민의 의지가 조선에서 내부분열로 와해된 것을 보고 일단 양지로 유도한 다음 서로 싸움 붙이는 방식으로 자유주의를 억제하고 있다. 이걸 본 많은 유럽 국가들이 따라했는데 실제로 효과가 굉장히 좋았다고. 또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조선식 근왕 공산주의가 아무 제재 없이 출판되고 퍼져나가는 등[* 본작에서 스탈린이 체포되기는 했지만 이건 불온사상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출판사의 허락 없이 해적판으로 번역해서 퍼뜨렸다가 출판법 위반으로 체포된 거다.] 혁명 세력에 대한 맞불로 근왕 공산주의가 퍼져나가게 유도한 정황이 있다. 원 역사대로 열차 사고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 '''[[니콜라이 2세]]''' 러시아 제국 제14대 차르. 알렉산드르 3세의 아들. 조선의 총선 개최를 실수라고 생각하는 등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며 선량하다고 할 수 있는 성품이지만 결단력이 없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기공식이 앞당겨져 원 역사보다 1년 빨리 극동을 방문한다. 실론, 자바, 싱가포르, 남중국을 거쳐 일본에 갔던 원 역사와 달리 중간에 조선을 거쳐 일본으로 갔다. 조선에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많다고 걱정했으나 딱히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일본에서도 반러감정이 약해 [[오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일정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을 때 연해주가 조선인 이민자들에게 종속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특유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다가 천도교가 주도한 단체 읍소에 마음이 동해 운터베르거 군정장관에게 온건책을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 아버지 알렉산드르 3세가 원 역사와 마찬가지로 열차 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하자 제위에 올랐다. 그리고 아버지의 정책 기조를 이어받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전당대회를 여는 것을 허용할 정도로 사회주의 운동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차르의 자비를 바라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마치 블라디보스토크의 조선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수십만 백성이 자신을 연호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건의를 올린 것에 진심으로 감동하여 전 러시아인의 어버이로서 그들이 요구한 [[헌법]] 제정과 두마(의회) 설치를 전격 수용하였다.[* 가까운 친척인 [[빌헬름 2세]]가 의회 정치로 '재미를 본 것'도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유연한 대처 덕분에 이 시위에서 원 역사와 달리 단 1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반동세력의 친위 쿠데타로 [[적백내전]]이 발생하자 양군을 중재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막았지만 이로 인해 결국 [[제1차 세계 대전|대전쟁]]이 발발한다. 그래도 원 역사와 달리 일린(레닌)을 비롯한 사회주의자들이 대부분 조선식 근왕 공산주의를 신봉한 덕분에 "정통 사회주의자로서(...) 차르를 해치지 않는다"며 안전을 보장했고, 덕분에 1차대전이 끝나고 소련으로 체제가 전환된 이후에도 멀쩡히 황위를 유지했다. [[대공황]]이 막 일어났을 당시[* 원 역사에서는 1929년에 일어났지만, 본작에서는 1차대전이 1910~1912년으로 1914~1918년에 일어났던 원 역사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에 대공황도 더 빨리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1920년대 초중반이었을 듯.] [[혈우병]]을 이겨내고 장성한 황태자 알렉세이가 급사하자 실의에 빠져 장녀 올가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칩거에 들어갔다. *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올가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니콜라이 2세의 장녀. 급사한 남동생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 황태자를 대신하여 황위를 이었다. *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 니콜라이 2세의 유일한 아들. 혈우병을 이겨내고 기적적으로 장성하여 혼담까지 오가는 상황에서 그만 요절하고 말았다. *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 [[니콜라이 2세]]의 매부.[* [[니콜라이 2세]]의 여동생 [[크세니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의 남편이다.] 동생과 톨스토이에게 영합하지 않은 반동파 몇몇과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켜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의 신변을 확보하였으나, 라디오 방송을 사용한 볼셰비키의 반격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민심을 얻는 데 실패하자 국경군을 움직이기 위해 차르 일가를 데리고 도주하여 '키예프 정부'를 꾸렸다. * '''[[https://en.wikipedia.org/wiki/Grand_Duke_Sergei_Mikhailovich_of_Russia|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대공]]'''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의 동생. 형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다. * '''[[https://ko.wikipedia.org/wiki/니콜라이_니콜라예비치_대공_(1856년)|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 [[니콜라이 1세]]의 손자. 상트페테르부르크 군관구사령관으로 재직하던 중 개혁의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그 저변에 있는 볼셰비키의 영향력에 거부감을 느껴 알렉산드르 대공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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