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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군밤의 왕/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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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양군 ===== * '''[[이홍장]]''' 원 역사에서 청말의 북양대신으로 [[양무운동]]의 핵심. 여기서는 서태후가 개화에 동참하게 되면서 원 역사에서 서태후의 물밑 지원을 받는 반 개화 청류파의 견제를 받았던 것과 달리 서태후와 손을 잡게 된다. 서태후 편에서 공친왕의 정변을 막아내며 단독으로 집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남아있던 청류파를 솎아내기도 했지만 그에 불만을 품은 만주인 고관들과 서태후의 조선파천 과정에서 친러 만인 정권이 들어서며 살짝 밀린 상태. 대신 [[북양함대]]에 대한 지원은 끊기지 않아 강력한 군권은 유지중이다. 국제적인 위상이 날로 상승하고 있는 조선을 경계하고 있으며 동도서기론에 입각한 근대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의회 설치 등 기존 중국의 전제군주정을 위협하는 요소는 일절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멈추기에는 너무 늦었다. 결국 의회의 문이 열리자 서태후의 국민당에 대항하여 국론일치를 외치는 흠정당을 차렸다. 서태후 독살 미수 사건 때 광서제가 원세개를 측근으로 삼아 그에게 북양대신직을 내리면서 하직하게 된다. 이후 유럽을 순방하면서 외유를 즐기던 차에 북양군이 일으킨 난을 조선군이 진압하였고 광서제가 모든 권력을 공화정부에 위임했다는 소식에 황급히 귀국하여 '자칭' 북양삼걸을 복날 개 잡듯 줘팬 후(…)[* 이때 이런 놈들이 호걸이라면 자신과 스승인 증국번 같은 사람은 천존이겠다며 혀를 찼다.(…)] 변법공자들을 찾아가 무슨 생각으로 북양군을 사실상 해산하고 연방제를 도입했냐고 따져물었다. 그 자리에서 이들에게 나름의 비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속으로 한탄하면서도 적어도 대계가 바탕에 있으니 무언가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이후 자기 여생을 불태우며 북양군의 문제 일으킨 자들을 산산이 쪼개고 이들 빈자리를 능력 있는 다른 성의 젊은이들로 채워 넣는 대규모 사업을 진행했고 장지동에게 차기 총통직을 맡아줄 것을 부탁한 뒤 원 역사보다 1년 빠른 1900년에 사망하였다. 노년에도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쳐서 부수거나, 북양삼걸을 두들겨 패거나, 손덕명을 들어 올리는 등 힘이 굉장히 세서 팬덤에서 밈이 되었다. 서양인도 180cm가 넘는 일이 드물었던 동세대에서 190cm에 달하는 엄청난 거구를 자랑했고 장군감이라는 말도 들었는 데다 동시대 기준 장수한 강골이니 크게 고증오류는 아니다. * '''[[https://ko.wikipedia.org/wiki/마건충|마건충]]''' 이홍장의 막료. 원 역사와 달리 유학 경험은 없지만 그 능력은 여전하다. 장수나 책사는 아니되 군대에 꼭 필요한 참모다. * '''[[원세개]]''' (=위안스카이) 원 역사 [[북양정부]] 초대 대총통. 이홍장의 부관으로 일하다가 의회 설치가 확정되자 눈에 띄는 북양군 대신 의화단을 이용해 여론몰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타고난 모략가 기질을 발휘하여 반 조선 여론을 형성하였지만, 청국 입장에서도 충분히 수용할만한 정책에도 태클을 걸어 이홍장으로부터 적당히 하라는 꾸중을 들었다. 이홍장의 후계자로서 입지를 두텁게 하기 위해 의화단을 통해 국민당을 겁박하여 세를 누르려 했지만 전봉준의 계략(?)[* 원세개가 의도적으로 의화단을 이용해서 반조선 여론을 형성했을 때 김가진이 여기에 휘말려 김가진뿐만 아니라 조선 전체가 골치 아프기 직전에 때마침 청나라에 전봉준 내외가 있다는 걸 깨닫고 그쪽으로 가서 도와달라 요청했다. 전봉준 내외가 청나라에 있던 이유는 서태후가 이홍장 견제 차원에서 초빙한 것이었다.]으로 의화단의 구호 '''‘양이를 몰아내자!’'''가 '''‘일을 달라! 땅을 달라!’'''라는 조선식 공산주의에 영향을 받아 의화단의 트란스발 공화국 진출에 본의 아니게 말려든다. 서태후 독살 미수 사건 때 손덕명과 함께 광서제에게 발탁되어 북양대신이 되었다. 그리고 변법에 대한 반발을 총칼로 억누르고 있는 데 아이러니한 게 이러한 반발 세력이 지주 세력이라 이들과 교역하던 조선인들이 난데없는 공황에 빠진 게 함정. 아무튼 신식무기를 앞세워 남양군의 군권을 회수하고 토지개혁에 반발하는 몽골 왕공들을 진압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 과정에서 북양군의 힘에 취해 조선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강남 기기창에 손을 뻗었다. 이에 조선이 경고하고 만주 동삼성 지역까지 중립을 선언하자 오히려 더욱 폭주하여 광세제를 자금성에 사실상 유폐하고 계엄을 선포하였다. 조선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끽해야 3만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저지른 행동인데 이에 조선은 총동원령을 내려 '''60만''' 대군을 소집하고 그중 절반인 30만에 달하는 병력들이 수 차례에 걸쳐서 압록강을 도하하는 것으로 응답하였다. 뒤에 최익현과 만나서 북양군 위신이 걸린 강남 기기창의 지분은 돌려줄 수 없으니 순순히 청나라의 이권 또는 동삼성 등의 영토를 받고 떨어지거나, 아니면 배째라는 식으로 나와서 대놓고 자신이 한간임을 인증했다. 이후 결국 조선군과 전투가 벌어지자 산해관의 병력을 조선군의 참호선에 돌격시키려다 북경에서 빠져나온 광서제에게 파면되고 이후 종적을 감췄다. 회차가 거듭될 수록 안좋은 방향으로 재평가를 받는 중인데 빌헬름 2세, 라스푸틴, 서태후,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 같은 현실에서 악명을 떨친 이들 중 상당수가 선의의 나비 효과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원세개만은 갱생되지 않고 악역으로서 등장이 끝났기 때문. 결국 완결이 될 때 까지도 등장하지 못해 선의로 가득 차고 그 히틀러도 고쳐 쓰는 작중 세계관에서 유일하게 갱생하지 못한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그 결과 팬덤에서는 트루 [[한간]]으로 추앙받아 일종의 밈이 되었다. * '''단기서''' (=[[돤치루이]]) 원 역사 북양삼걸의 일원. 저들 영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북양군의 젊은 군관들과는 달리 여전히 대청의 부흥을 꿈꾼다.[* 원 역사에선 삼조공화, 즉 3번 공화정을 만든 인물이라고 평가되는 인물임이 흥미롭다. 선통제 퇴위를 강요하며 한 번, 위안스카이의 황제 즉위를 반대하며 한 번, 복벽에 나선 장훈을 토벌하며 한 번. 이렇게 3번이다.] 그리고 조선을 얕잡아보는 다른 군관들과 달리 지금 조선의 왕은 [[송양공]]이 아니라 [[진문공]]에 가깝다고 평하였다. 그래서 풍국장과 자주 충돌한다. 토지개혁에 반발하여 들고 일어난 몽골 왕공들을 소탕하여 북양군 첫 실전을 승전으로 이끌었다. 마지막까지 재고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결국 북양군의 쿠데타를 저지하지 못하였다. 이후 조선군이 [[압록강]]을 도하하자 곧바로 원세개 뒤통수 때릴 궁리를 하는(…) 풍국장에게 험한 말을 퍼부었고 광서제가 산해관으로 향했을 때 풍국장과 동행했다. 모든 일이 끝난 뒤엔 귀국한 이홍장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았다. * '''풍국장''' (=[[펑궈장]]) 원 역사 북양삼걸의 일원. 조정이 대청이 되었든 대탁이 되었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 출세만 생각하는 야심가. 그래서 나름대로 조정에 충성하는 단기서와 사사건건 대립한다. 단기서의 승전보에 몸이 달아올라 전공을 세울 생각으로 원세개에게 조선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기창을 압수할 것을 제안하였고 이에 조선이 격분하자 아예 군무는 군부인 우리가 잘 안다며 이 기회에 쿠데타를 일으키자고 선동하였다. 하지만 조선군이 30만임을 알게 되고 원세개가 광서제의 감시를 맡기자 바로 갈아탈 준비를 한다. 원 역사의 별명이 북양의 개였는데[* 왕사진은 북양의 용, 단기서는 북양의 호랑이] 여기서는 자기의 비굴함을 포장하기 위한 말로 썼다. 단기서, 왕사진과 마찬가지로 귀국한 이홍장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 '''왕사진''' (=[[왕스전]]) 원 역사 북양삼걸의 일원. 조용히 할 일을 하는 이로 군관들 중에서는 명망이 높다. 조선이 북양군에게 경고장을 던졌을 때 보국회 학사들 말처럼 변법 속도를 늦추자고 제안하였다. 이후 원세개의 난이 진압당하고 이홍장이 귀국했을 때 다른 북양삼걸과 함께 주먹찜질을 당했다. * '''조곤''' (=[[차오쿤]]) 원 역사 [[북양정부]] 제3대 대총통. 요양과 심양 사이에 조선군의 진격을 저지할 방어선을 구축하라는 원세개의 명을 받고 산해관을 넘었으나 기껏해야 3만이 최대일 거라는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30만 대군이 몰려오는 것에 겁을 먹어 사기충천한 채 천자에게 지부상소를 하러 몰려온 조선군과 싸운다면 참패할 것이 틀림없었기에 총 한 발 쏘지 않고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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