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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군밤의 왕/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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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헌정우회 ====== * '''[[이토 히로부미]]''' 원 역사 일본 제국의 초대 총리. 사이고가 낙향하고 기도가 병으로 쓰러지자 약삭빠르게 그 빈 자리를 노려 신정부의 2인자 자리를 얻어냈다. 그런데 요시노부를 무너뜨릴 계략으로 [[조선책략]]을 냈다가 이등박문 그 이름 네 글자와 악명을 똑똑히 기억하는 귀남이 그놈 나쁜 놈 아니냐며 이토 좋은 꼴 볼 수 없게끔 일본이 함부로 조선을 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조일동맹을 맺음으로서 역으로 당해 권력을 잃고 [[이승만|도망치듯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하와이]]에서 일어났던 유혈 사건을 두고 허스트와 퓰리처가 [[황화론]] 공방을 주고 받았을 때 [[국화와 칼|경서와 칼]]이라는 칼럼을 투고하여 동북아 전문가로 입지를 다졌다. 이때 얻은 명성과 [[영일동맹]]을 이끌어낸 공으로 정계 복귀에 성공했다. 일본이 이대로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선의 선의(?)에 물들어 과거 조선책략 때와는 다르게 정한론이나 전쟁을 그저 골치 아픈 것으로 여기고 있다.[* 사실 이 [[정한론]]과 전쟁을 혐오하는 것은 일본 고위층에 만연하게 자리잡았다. 오쿠보 도시미치는 물론이고 야마가타 아리토모마저도 정한론을 헛소리로 치부한다. 작중 설명으로 유추해 보면 정한론을 계속 밀기에는 조선이 크게 성장하기도 했거니와, 일본이 조선을 의식하며 성장하다 보니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조선의 혐전 성향마저도 닮아버린 것으로 보인다.] 이후 아주대회에서 와병 중인 오쿠보 도시미치를 대신해 시상식을 진행했는데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안중근이 우승한 사격 종목 시상식에서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시상식이 급히 종료되는 개그신이 나왔다. 1907년에 조선과 친밀히 지내다가 추격은커녕 중원보다도 밀리게 될 것이라는 은근한 위기의식을 널리 퍼뜨려 마침내 총리직에 올랐다. 원역사처럼 정한론과 같은 제국주의를 주장하지 않았기에 하얼빈 의거가 일어나지 않아 수명이 늘어나서 1913년 총리직을 가쓰라에게 넘기고 일본을 방문한 고종 내외를 접견하였다. * '''[[가쓰라 다로]]''' 원 역사 일본 제국 제11·13·15대 총리. 군부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곧장 입헌정우회에 입당하여 노쇠한 이토의 파벌을 그대로 삼키고 총리직을 거머쥐었다. 이후 '현인신' 천황의 권위를 내세워 지방의 옛 다이묘들을 억누르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고 하였지만, 막 즉위한 다이쇼 덴노가 [[인간선언|천황도 사람]]이라고 스스로 그 위엄을 내려놓아 실패하고 만다. 그 이유가 일본에 놀러온 상왕 귀남을 만나고 싶은데 안 허락해주니까 성질 내서 한 거였지만... 그런데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대공황에 일본 경제가 초토화되었을 당시 다이쇼 덴노의 인간선언을 비롯한 대중친화적인 방송으로 대공황을 빠르게 이겨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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