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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군밤의 왕/개변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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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 * '''조청일수호조규''' 일본이 청과의 조약을 맺을 때 자립국이 아닌 자주국으로써 맺기 위해 조선을 끌어들여 청과 맞서게 하려고 했는데 청, 일본 어느쪽의 원망도 사기 싫었던 귀남이 조선과 일본은 서양 나라와 같은 자주국이되 청은 대국이니 다른 서양 나라와는 달리 같은 자주지국을 거느릴 수 있다고 제안하였고 자존심만 남았지 실력은 아직 없는 3국이 동의하여 서로를 자주국으로 인정했다. 다음 묘사를 보면 청은 조선에 공사를 파견하였고, 청 조정 내에서는 그냥 겉으로 보이는 상황에 만족하는 사람 반, 이 겉치레라도 하지 않으면 천조의 천명이 무너질 테니 놔두자는 사람 반이라고 한다. * '''아시아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 디즈레일리 내각과의 물밑 협상으로 극동에 대한 이권을 인정받은 러시아가 이때다 싶어 조선에 조러수호조약 개정을 비롯해 이런저런 황당한 요구를 내놓았다. 그런데 반침략 연대의 활약과 더불어 더비 백작의 폭로로 국내 여론이 들끓어 디즈레일리 내각의 입장이 난처해졌고 러시아 극동 관계자들 입장에서도 이러다가 조선인의 두만강 월경이 금지되면 그 날로 블라디보스토크 문 닫을 판국이라 북해도 공화국 투자를 알선해서 손해 보는 바를 벌충해주겠다는 귀남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시아개발은행이 원 역사보다 거의 100년 앞서서 등판하게 됐다. * '''[[유영복]] 국제사법재판''' 흑기군에 프랑스군이 참패하는 상황에서 프랑스가 청나라를 은근슬쩍 압박하자 청나라도 흑기군의 지원을 끊어 진퇴양난에 몰린 유영복이 공정한 판결을 내린다면 항복하겠다고 하자 청불 양국에서 판결 관련하여 신경전이 붙었다. 그러자 만국의 공법(公法)에 따라 공동으로 재판하자는 조선측의 제안에 따라 직접적으로 관계된 청국, 프랑스, 조선이 먼저 합류한 후 당사국인 베트남을 초대하고, 겉으로는 자신들과 우애를 맺은 4개국의 일이라며 끼어든 영국,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가 부른 미국, 쪽수에서 불리해질까봐 청나라가 불러온 일본 등 7개국의 법학자 및 철학자들로 구성된 재판부가 조선 한양에 설치되어 약 2년여간 서양 중심의 국제법 뿐 아니라 동양의 관습법에 뒤이어 그 기반이 되는 동서양 철학[* 예를 들어 동양적 군신관계의 기본 전제인 충(忠)의 개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등을 위시로 한 대토론을 벌인 끝에 무기 밀수를 제외한 모든 혐의에 대부분 무죄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유영복 본인에 대해서는 월남국 영구 입국금지 및 프랑스에 대한 소정의 배상금 지불을 명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당시 아프리카 식민지를 둘러싸고 유럽 각국의 각축전에서 벨기에측이 조선측의 논리를 이용해서 다른 유럽 국가들을 곤란하게 만들자 이에 프랑스측이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국제사법재판을 대충 처리하고 벨기에측에 대응하려고 시도했는데 이를 알아차린 조선측이 프랑스측에게 도움을 주는 대가로 유영복을 풀어준 것에 가깝다. 재판 후 유영복은 동철에 스카웃되어 청나라 내의 철도 개설에 부정적인 사람들을 설득하는 임무를 맡아 전역을 떠돌고 있다.[* 말이 설득이지 사실상 유력가들과 연회에서 노는 거라 명예직이라 봐도 무방하다.] * '''동아시아 [[인터내셔널]]''' '비유럽적 공산주의'를 추구하여 제2차 [[인터내셔널]]에 초청받지 못한 만민공산당이 1889년에 인천에서 일본 공산당을 끌여들어 이른바 '나머지 세상'의 인터내셔널 모임을 개최했다. 만민공산당 대표로 전봉준과 엘러노어, 일본 공산당 대표로 가타야마 센, 사이온지 긴모치가 참가했다. 그리고 경일학당에 머무는 청국인 몇몇, 하와이와 류큐 청년 두서넛도 무슨 일인가 싶어 찾아왔다. 거기에 분란을 일으키라는 옥균의 명을 받고 '''이완용'''도 참관했다. 첫 모임에서 유럽처럼 양력 오월 초하루를 노동절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조일 양국에서 모두 쉬는 백중날을 노동절로 지정할 것인가를 논의하였다. * '''동아시아 유학 만방대회''' 상술한 동아시아 인터내셔널 모임에서 이완용의 유도로 '공맹의 말이 반드시 진리는 아니다.'라는 발언이 나와 유림의 여론이 들끓었고 안 그래도 공산당을 고깝게 여기던 귀남이 이럴 때 선비들이 가만히 있어야 되겠냐며 최익현을 설득하여 공자묘가 있는 [[취푸]]에서 조선, 청국, 일본 등 국적불문하고 정학을 닦은 이들이 모여 공자를 기리는 석전대제를 겸해 일종의 대규모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단순히 고준담론 오가는 자리가 되지 않도록 일부러 학통이 다른 사람들끼리 묶었다. 조선에서는 런던 한복판에서 골턴의 우생학을 정면으로 비판한 전우를 필두로 화서, 노사, 한주학원 선비들이 참가하였고, 청국에서는 광서제의 스승 옹동화, 각각 장지동, 이홍장의 추천을 받은 장패륜, 엄복[* 베이징 대학의 초대 교장이다.] 등이 참가했다. 일본에서는 국학도들이 쓰와노파의 학통을 잇는 후쿠바 비세이 이하 대표단을 보냈고 이 소식을 들은 개화신사들은 고루한 무리가 일본의 학명에 누를 끼친다며 [[후쿠자와 유키치]]의 등을 떠밀었다. 거기에 모임 취지에 크게 감명을 받은 [[https://ko.wikipedia.org/wiki/%EB%82%98%EC%B9%B4%EC%97%90_%EC%A1%B0%EB%AF%BC|나카에 조민]]도 얼굴을 내밀었다. 그 외에도 류큐와 베트남에서도 사람을 보냈고 공자를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여기는 티베트 불교에서도 흥미를 느껴 승려들을 보냈다. * '''[[아시안 게임|아주대회]]''' 황란과 북양군과의 갈등 때문에 [[1896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여긴 귀남이 그렇다면 [[꿩 대신 닭]]이라는 생각으로 아시안 게임을 제안했다. 그런데 말이야 같은 아시아지만, 즐기는 것이 모두 달라, 우선 되는 대로 모두 종목으로 집어넣되, 규칙 제정에 시간이 필요하니 4년의 유예를 두기로 했다. 최익현이 아주대회 논의 과정에서 육예를 재주 겨루는 종목의 기준으로 삼자고 한 것이 밖으로 흘러나가 청은 [[서예]]가 당연히 종목으로 채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안태훈은 번씨차창과 손을 잡고 옛 수레는 우마를 괴롭히니 농사 같은 필수적인 것도 아니라면 자제해야 하고 자전거는 단정한 옷차림으로는 타기가 곤란하겠지만 자동차는 짐승을 괴롭히지도 않고, 선비다운 품위 있는 옷차림으로 탈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어(御) 종목은 마땅히 '''자동차 레이스'''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저들도 아시아에 속한다고 주장하려는 [[하와이]]도 참여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나라들이 떨어져 있으니 마땅히 [[조정(스포츠)|조정]] 종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일본과 류큐가 놀랍게도 의기투합하여 [[검술]]과 [[가라테|당수]]가 종목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 경기 종목 '예'를 제외한 육예 5종목과 각 참가국이 제시하거나 올림픽으로부터 도입한 31종목, 총 36종목으로 결정되었다. * 예 대회를 열어 화합하는 것 자체가 예이므로 따로 겨루기보다 현대의 페어플레이상과 같이 전 종목에서 누가 가장 반칙이 적은지에 따라 주기로 하였다. * 악/서 유럽의 콩쿠르, 미술 경연과 제도는 별다를 게 없지만, 동양 전통의 음악이 연주되고, 서예 작품이 전시된다는 점이 다르다. * 사 사격술을 겨룬다. 총과 활이 모두 종목에 포함된다. * 어 자동차 레이스인 '어'는 두 개의 세부 종목으로 나뉘어있다. '문세(文勢)' 부문은 드리프트와 같이 매끄럽게 운행하는 모양새를 두고 겨루고, '무세(武勢)'는 스피드와 힘있는 모양새를 두고 겨룬다. 무세 부문이 조금 더 흥미진진하여 관람객에게 인기가 좋다. * 수 '수'는 기상 예측의 정확도를 겨룬다. 특정 시간과 지역을 정하여 풍향과 풍속, 기온, 강우 등을 얼마나 정확히 예보하는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원래는 수학 정리의 증명으로 겨루려 하였으나, 이를 검증하거나 위아래를 가리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고, 더군다나 이미 노씨산학상을 수여하고 있어 필요성에 의문이 제시되었다. 한편 상수(象數) 또한 수라며 날씨 읽는 것을 겨루자 노사학원의 한 선비가 제안하였고, 고·저기압의 조화에 따라 날씨가 결정되니 이는 음양 이치에 맞으며 백성의 삶에도 쓰임이 있다하여 일단 한 번 해보기로 결정되었다. * 상급 1위를 한 선수에게는 [[예기]]를 따라 금메달 대신 수창옥(水蒼玉, 물빛의 푸르스름한 옥)에 검은 끈을 단 옥패를 수여하고, 2등부터는 옥에 버금가는 유민(瓀玟), 즉 옥돌에 주홍 끈을 단 패를 수여한다. 한편 귀남은 대회 참가 및 입상을 독려하기 위해 "이 대회에 나아가 이름을 떨치는 이에게는 '''[[면제로이드|상급으로 군역을 면해주겠다]]'''"라는 강수를 날린다. * 역대 대회 * 1900 나가사키 아주대회 첫번째 개최지는 일본 [[나가사키]]로 정해졌다. 조선은 대회 규칙에서 일본에게 많이 양보를 얻어내는 조건으로 개최지를 양보하였고, 일본은 요시노부의 애국공당이 다른 아시아 나라들과 끈끈하게 연을 맺는데에 필사적이었던 반면, 청과 유구 등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못한 사정이 크다. 올림픽보다도 성대하게 치러져 많은 관심을 끌었으며, 마상재 경기에서 잠시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이후로는 큰 문제없이 행사를 마쳤다. 옥패 수로 조선이 전체 1위를 차지하였으며, 그 뒤로 청과 일본이 2, 3위를 다투는 형세가 되었다. * 1904 평양 아주대회 두번째 개최지는 평양으로 정해졌다. [[태국|시암]]이 새로 참가국이 되었다. [[피구|피구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 전 시범으로 도입되었다. [[능라도]] 경기장에서 일천 명의 카드섹션으로 화려한 개회식을 보여주었다. 이를 두고 독자들은 작가가 장난을 살짝 쳤다는 반응을 보였다. 평양 '''능라도'''에서, '''공산당 당수인 정부수반([[전봉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규모 카드섹션 행사를 여는 장면은 마침 현실의 북한이 [[릉라도5월1일경기장|능라도 경기장]]에서 [[아리랑(매스게임)|대형 카드섹션 행사]]를 여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군밤조선과 북한은 전혀 다르므로 진지한 의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작가의 장난이라는 것. 작가 후기에서도 이를 언급한다. * 1908 난징 아주대회 세번째 개최지는 난징으로 정해졌다. 이 대회에서는 조선국이 가장 많은 옥패를 차지하지 못했다. * 1913 하노이 아주대회 원래 열려야 할 1912년에 선수 대부분이 창의단으로 유럽에 가있었기 때문에 개최 시기가 연기되었다. 대신 조청일 삼국이 아주 운운하는 동안 곁가지 되었다는 데 은근한 불만 품고 있던 대남에서 작정하고 준비하여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양위하고 상왕이 된 귀남이 친람하여 조선국 국사단이 모두 분발해서 가장 많은 옥패를 차지했다. * '''한양 선언''' 산동 조차를 꾀하는 독일에 맞서 조선, 대청, 일본 삼국이 한양에서 발표한 공동 선언문. 최대한 바다 건너 사정에 엮이지 않으려 하는 일본과 남은 자존심 지켜가며 조선과 일본의 참여를 이끌어내려는 대청의 밀당으로 약조의 절목을 정함에 있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천하의 평화'를 위하여 중국 땅에 바깥 군대를 '어지간하면' 더는 들이지 않고 혹 다툼이 생기면 그 안에서 해결한다는 그 요체는 그럭저럭 드러나 있다. * '''창의단''' 귀남의 라디오 옥음 방송 이후 조청일이 구성한 국제 구호단으로, 인력과 곡식을 나누어 대전쟁의 참상을 막아보고자 모였다. 유럽 국가들의 경계와 의심을 피해 본래 이름인 '지전창의단'에서 '지전'을 빼고 [[국제적십자사]]의 이름으로 서부전선 각지에 파견되었다. 창의단이 든 적십자 깃발은 전방의 장병들로 하여금 [[십자군]]의 재림을 연상케 하여 충격을 주었다. 무인지대에 야전병원이 생기며 사람이 오고가고, 하늘에는 적십자 비행기가 날아다니며 위험상황을 방지하였지만,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군사검열을 피해 우편을 전달하며 전·후방의 실상을 서로에게 알리고, 미국을 끌어들여 재정지원을 빌미로 양측이 협상에 나서도록 했다. 여담으로, 귀한 쌀로 [[영국 음식|괴상한 것을 만들어내는 꼴]]을 더는 못 본 창의단 사람들이 쌀밥을 비롯한 동양 요리를 전수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독일군에 의해 [[소시지]]를 넣은 [[부대찌개|부대 스튜]](Truppen-Eintopf)가 탄생했다. * '''아주연합 창설''' 청과 일본이 조선에게 유엔 평화유지위원회 이사국 자리를 양보받자 유럽협조체의 사례를 따라 동양 국가만의 기구를 창설하고 조선을 상석에 앉히기로 한다. 이는 훗날 청국 등 아시아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 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발판으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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