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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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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사유 재산과 경제적 자유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로크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들의 사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성립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만약 국가가 함부로 개인의 재산을 빼앗는다면 국민은 국가에 저항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사건은 세금 문제였다. 또한 고전 경제학자들은 '국민이 국가의 간섭이나 규제없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 국가 경제의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서 이들은 [[자유 무역|자유무역]]을 중시했으며, [[전쟁]]은 무역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바보같은 행동으로 여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18세기까지는 전쟁을 통해 무역 상대를 넓힐 수 있었기 때문에 (또는 전쟁이 돈이 됐기 때문에) 자유주의자들도 전쟁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19세기부터는 전쟁이 무역에 방해가 되면서 전쟁을 피하려는 경향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외로 토지에 대해서는 공권력에 의한 공평한 분배를 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 19세기까지만 해도 주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시민 계급이 세습되는 대토지에 기반한 귀족 세력과 여전히 정치적으로 대립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는 당시 영국의 상공업 종사자들은 토지를 빌려서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젠트리피케이션|자신들이 열심히 일해서 사업을 번창하게 하면 지대가 올라서]], 땅주인은 아무 기여도 안했지만 가만히 앉아서 이익을 낼롬 먹어버리는 관계로, 이것이 배아파서 그랬다는 분석도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지성인들간의 자유로운 토론에 의해 국가의 정책이 정해지는 정치 체제를 선호했으며, [[표현의 자유]]를 다른 모든 자유를 보장하는 근간으로 보았다. 시민 혁명으로 전근대적 왕정을 전복시키기 전에는 발언이나 저서의 내용이 높으신 분들의 비위를 거슬렸다는 이유로 시민 계급 지식인들이 자주 고초를 겪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한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영국의 로크, [[데이비드 흄]]으로 대표되는 [[경험주의]] 철학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것도 원인이 되었다. 경험주의는 '인간의 본성에는 이미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와 같은 식의 주장에 반대하여, 모든 지성의 원천은 후천적 경험이라고 생각했으며, 개인의 경험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그 누구도 완벽한 진리를 알 수 없다고 믿었다. 또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념에 근거하여 주장을 만들어 내지만, 그런 이념의 대부분을 논리적으로 검증하지 않은채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렇게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이 모여 좋은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이 차별받지 않고 표출될 수 있는 환경을 중요시했으며, 특히 어떤 개인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도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고전적 자유주의 정치 철학의 기반은 천부인권 사상이다.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모든 인간이 동등한 인권을 부여받은 채로 태어난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인권은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에 의해 정당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다만 초기 민주주의에서 [[투표권]]이 모든 국민에게 주어지지 않았고 완전한 [[보통 선거]]가 되는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투표권을 인권보다는 특권으로 보는 견해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또한 로크와 같은 초기 자유주의자들은 평등한 인권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기회의 평등과 교육은 중시했지만, 결과의 평등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동시대의 사상가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어서, [[장 자크 루소]]의 경우에는 자유를 중요시하는 동시에 1세기 후의 [[마르크스주의]]에 비견될 정도로 [[사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아니지만 [[공상적 사회주의]]는 [[급진적 자유주의]]에서 파생됐긴 하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고전적 자유주의의 중심은 [[제러미 벤담]]이나 밀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로 이동하였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는 개인의 행복을 최고의 선으로 보았으며, 행복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체제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였다. 또한 밀과 같은 [[급진주의|급진주의자]]들은 당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던 영국의 공장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였다. 비록 이들이 혁명적인 체제 변화까지는 원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급진주의자들의 사상은 이후 영국식 사회주의, 또는 사회자유주의로 발전하였다. 이론적인 면에서는 [[경제적 자유주의|경제적 자유]]에 목매달 거 같지만 의외로 현실 정치에선 고전적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정당들은 일부 [[사회자유주의]]적 요소들을 수용해 [[중도우파]]적 성향을 띄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우파 자유지상주의]]를 내세우는 정당들이 훨씬 더 우파적인 성향을 띤다. 사실 [[중도좌파]]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쳐서[* 사실 [[자유주의]] 자체가 현대 좌우파의 핵심을 아우르는 개념이긴 하다. 자유주의란 카테고리 안에 고전적 자유주의도 포함되는 것이긴 하지만,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진화 혹은 분화해 현대적 자유주의가 나온 것도 사실이다. 애초에 영국만 봐도 현 자유민주당의 전신인 자유당은 보수당과 대립하는 진보 컨셉 정당이었다.] [[지공주의]] 등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파생된 진보적 이념도 꽤 있다. 현대에 와서 고전적 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우파 자유주의로 분류된다. 20세기 초반까지의 고전적 자유주의 이념 중 진보적인 부분은 사회자유주의[* 급진적인 경우는 좌파 자유지상주의.]로 독립했다. 현대 정치에서 '''일반적인 고전적 자유주의가 [[보수주의]]나 [[사회자유주의]]를 비롯한 다른 사상과 구별되는 주요 지점''' 중 하나는 '''[[집산주의]]에 대한 거부'''가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자유관은 집산주의를 옹호할 수도 있는 사회자유주의, [[좌파 자유지상주의]][*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도 포함], 일부 [[보수자유주의]][* 공동체를 중시하고, 시장개입주의적인 보수자유주의 사례로는 [[질서자유주의]]가 대표적이다.]의 자유관과는 철학적 차이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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