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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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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의 시대 구분에 대하여 === 기원전 753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2200년에 달하는 역사를 가진 로마는 시대를 구분할 때 정치사적인 관점에서 [[로마 왕국]](왕정), [[로마 공화국]](공화정), [[로마 제국]](제정)으로 구분한다. 로마 제국의 경우 서로마 붕괴 이전의 고대와 [[동로마 제국]]이 존속한 중세(비잔틴)로도 나누게 된다. 하지만 절대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은, 2200년 간 일어난 이런 정치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멸망'한 적은 1453년 이전까지 없었다는 것이다. 기원전 509년에 로마 왕국이 멸망하고 공화국이 건국된 것이 아니다. 기원전 27년에 공화국이 멸망하고 제국이 건국된 것 또한 아니다. 로마는 그대로였고, 단지 정치 체제가 변화했을 뿐이다. 476년의 서로마 멸망으로 불리는 사건 또한 서로마의 문화적 수도였던 로마가 공격으로 멸망한 것이 아니라 서로마의 황위가 [[오도아케르]]에 의해 소멸한 것에 불과하다. 로마는 예전에 비해 쇠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탈리아의 정신적 수도이자 [[베드로]]로부터 이어지는 정통성을 주장하던 기독교 교구 중 하나였다. 이러한 오해를 막기 위해 왕정, 공화정, 제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기원전 509년의 '공화정으로의 이행'은 로마를 단일권력자의 통치에서 공공의 통치[* 현대적인 민주주의의 개념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로마 공화국은 모든 시민들에게 주권이 있는 국가가 아니었다. 단지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집정관, 사법관, 조영관, 재무관, 감찰관, 호민관, 원로원, 민회 등의 여러 개의 통치 기관을 둔 것을 공공의 것(Res Publica)으로 부른 것뿐이다. 현대적인 대통령제와도 다르며, 정무관 중 최고위직이었던 집정관이 로마라는 국가를 대표하는 것 또한 아니었다. 서로 다른 직무의 정무관들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개별적인 책임을 졌다.]로 전환한 것이다. '제정으로의 이행' 또한 "원래는 공화국이었지만 기원전 27년의 오늘부터 [[아우구스투스]] 님을 황제로 떠받들어야겠다" 개념이 아니다. 기원전 27년은 제2차 삼두정치의 승리자 옥타비아누스가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은 것을 기준으로 하는데, 이와 별개로 공화국의 정치 제도가 갑자기 사라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집정관, 호민관, 원로원 등 공화정 시기의 정치제도는 남아있었다.[* 집정관은 동로마 시절까지 유지되다가 887년에 폐지되었다. 호민관은 세베루스 왕조 시기에 없어졌고, 원로원은 명시적으로 폐지된 적이 없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 칭호가 하나의 초월적인 권력자의 존재를 전제하고 부여되는 칭호이기 때문에 원로원의 아우구스투스 칭호 부여를 공화정의 실질적 폐지의 상징적인 기점으로 보아 이 시기부터를 제정으로 칭하는 것이다. 공화국의 제도는 이 시점 전에 이미 유명무실해지고 한 사람이 통치하는 제국과 같아졌다는 것이다. 로마는 전통을 지나칠 정도로 중시하며 집착하는 국가였다. 아무리 공화정이 유명무실해졌다 한들 공화정의 제도를 직접적으로 폐지하는 것은 로마의 전통을 무시하고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로 여겨질 수 있었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원로원으로부터 받은 종신독재관 자리를 공화정의 근간을 파괴하는 자리로 여겨 2년 만에 물러났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 종신독재관의 자리를 받았다는 이유로 당해에 암살당했다.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 칭호 대신 '세나투스 프린켑스'[* 사실 이 칭호 또한 결코 겸손한 칭호는 아니고, 로마에서 가장 강력한 권위를 가진 원로원 집단 내에서 1인자를 하고 있다는 엄청난 권력의 상징이다. 하지만 세나투스 프린켑스(원로원 1인자)는 아우구스투스가 최초로 만든 것도 아니고 예전부터 존재했던 칭호였다. 다만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만큼 개인을 신격화하는 의미는 아니었으며 기존 공화정에 존재하던 칭호인만큼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티내기 위한 칭호였다.]를 자처한 이유도 아우구스투스가 겸손해서 따위의 이유가 아니라 '아우구스투스'라는 어찌 보면 개인을 신격화하는 칭호가 카이사르의 전례처럼 죽음을 불러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공화국의 대부분의 주요 직책을 장악해 최강의 단일권력자가 된 상태에서 노골적으로 공화정을 부정하는 행위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대놓고 전제정임을 티내기 시작하는 시점은 [[디오클레티아누스]] 시기부터이다. 그렇다고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로마 제국의 첫 황제라고 칭할 수는 없고, 이미 [[아우구스투스]] 시절부터 로마는 제국이나 다를 바 없었기에 아우구스투스를 로마 제정의 첫 황제로 후대에 평가하는 것이다. 즉, 공화정과 제정의 구분은 후대 역사학자들의 일반적인 평가로 나뉘는 것이고 기원전 27년 당시에 '우리나라가 오늘부터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뀌었구나' 라는 인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395년]] 로마의 동서 분열은 "원래 우리는 하나의 로마였는데 이제부터 두 개의 나라를 운영하자"가 아니라 하나의 제국을 두 황제가 통치하는 분할통치 개념이었다. 그리고 이는 395년에 처음 선보인 것도 아니었고 이미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사두정치]]로 선보인 바 있다. 단지 395년에 분할통치를 한 다음 그 분할된 통치권이 두 번 다시는 하나로 합쳐지지 않은 채 서방 황제 직위가 먼저 사라졌을 뿐이다.[* 이후 800년에 교황이 [[카롤루스 대제]]에게 서로마 황제의 지위를 주는 퍼포먼스를 하는데, 이때 주어진 서로마 황제의 지위가 실제로 정통성이 있든 아니든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당시에 이 퍼포먼스를 한 사람들은 셀프로 정당성을 부여했고, 이렇게 부여된 정통성은 1806년까지 신성 로마 제국 제위로 유지되었고 이후 신롬의 마지막 황제가 이 정통성을 명분으로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칭하면서 [[오스트리아 제국]]이 들어서 1918년까지 유지되었다.(제정 붕괴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서로마와 동로마라는 새로운 나라가 건국된 것이 아니었고, 결국 '원래는 분할 통치를 하려고 했는데 서쪽 제위가 사라져버렸네?' 꼴이 된 동쪽 황제의 통치영역이 무려 1000년이나 가면서 고대의 로마에 새로운 문화들이 융합되어 색다른 문화를 꽃피운 동로마 제국, 또는 비잔티움 제국으로 칭해진 것이다. 또한 동로마 제국은 고대 로마의 정체성과 제도의 연속체 자체였으며, 대체로 '그리스적'이면 곧 '비로마'적인 걸로 인식하는 일각의 오해와는 달리 로마는 아예 이탈리아반도를 제패하기 전부터 선진 그리스 문화를 수입하기 위해 열심이었고 그리스인들이 많이 사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갈리아 남부를 제패하면서 이 흐름은 더욱 가속화된다. 동로마 제국 중심지인 그리스 지역도 실은 디아도코이 시절과 비교하면 문화나 정치는 물론이고 아예 정체성까지 로마화된데다 역설적으로 디아도코이 시절에는 각잡고 말살하려 했거나 아예 무시했던 헤브라이즘에 역으로 정신 세계가 정복당하고 만 나머지(....) 굳이 디아도코이 헬라 제국 시절 그리스와 비교하면 역시 뭔가 크게 달라져버린 실체였다. 그러나 역사가 무려 이천 년인 로마 제국을 후세인이 이해하려면 긴 역사를 큰 계기나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분절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그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게 서로마 제국 황제위 상실이었음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본래는 단절 없이 이어진 로마사를 편의적으로 기원후 476년 기점으로 잘라서 이해하다보니 당연한 얘기로 기원전 753년~기원후 476년 고대 로마와 기원후 476년~1453년 동로마 제국을 100% 동일시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고대 로마와의 구분이 필요하여 비잔티움이라는 시대구분 표현이 사용되는 것이다.[* 동로마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비잔티움이라는 표현을 비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제국이 아예 망한 뒤에는 꽤 많았으나, 비잔티움은 비하 표현이 절대 아니다. 이는 고대 로마와의 구분을 위해 많은 학자들이 사용해왔던 표현이며, 동로마 내에서도 스스로를 비잔티온이라고 불렀던 경우도 많았다. ] 약 2200년 간 이어진 로마는 1453년 오스만에 의해 정치적 멸망을 맞이하기 전까지 멸망한 적 없이 유지되었지만, 그 긴 기간 사이에 점진적으로 일어난 정치적 변화는 많았다. 그래서 점진적 로마 정치 변화를 상징적 사건들을 기준으로 후대에 왕국, 공화국, 제국 같은 구분을 사용하게 된 것이며, 이런 구분으로 로마성 여부를 가릴 수는 없으나 분명 필요한 건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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