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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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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의 국경 === 로마는 정복 사업의 정체, [[노예]] 감소로 인한 노동력 감소, 경작지 황폐화, [[은광]] 생산 감소가 겹쳐서 사회적으로 침체된 상태였는데, [[3세기]]에 들어서 북방 [[게르만족]]의 남하가 거세졌고 [[국경선]]에 가해지는 압력이 1, 2세기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져서, 기존의 [[군단병]]을 이용한 선 방어(Limes, 리메스)로 막아 보려다가 물량으로 한 군데 집중해서 우르르 밀고 들어오는 게르만족에게 털리게 되었다.([[3세기의 위기]])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9f0807><tablebgcolor=#ffffff,#1c1d1f><nopad>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e2ddaf0a6ff49848115cdebeeac78a6b.jpg|width=100%]] || 여기서 [[로마 제국|로마]]가 관리해야 하는 국경은 엄청나게 길었고 따라서 한 [[로마 군단|군단]]이 커버하는 길이는 어마어마했다. 군단 하나가 6천 명 정도였는데 이것으로 상당히 넓은 국경을 관리해야 하는 셈이었다. 아무리 무적의 로마 군단이라도 한 군단으로 최소한 10만에서 20만 단위로 남하하는 게르만족에 맞설 수 없었고, 황제가 직접 국경으로 와서 군단을 한데 모아 쳐부수는 방식을 쓰게 되었다. 문제는 로마는 전략 예비대를[* 특정 지역의 방어선이 뚫리거나 한 곳에 적이 집중해 올 경우 추가적으로 증원하는 부대로 [[예비군]]과는 다르다.] 두지 않았기 때문에 군단을 소집하려면 각 군단 기지에서 빼내야 했다. 그쪽 국경을 텅텅 비워 놓아야 해서 이렇게 빈 곳으로 빈집털이를 들어올 경우 로마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기병]] 전력을 늘려 기동력을 향상시켜서 게르만족이 중심부로 들어오기 전에 요격하는 방식을 택하다 보니, 기존의 중보병 중심의 로마군 체계가 뒤바뀌었다. 잘 나갈 때는 기존의 로마식 체제로도 충분했지만, 사방에 적이 늘어나고 업무가 가중화되다 보니까 동방식 [[관료]] 체제와 [[사두정치|4황제 체제]]로 바꿔서 정부 통제와 업무 능력을 향상시켰다. 문제는 이렇게 내세운 4황제들이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로마 황제|황제]]가 넷이라는 건 동일한 계급에 군사 지휘권까지 가진 최고 권력자가 넷이라는 것이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처음 제도를 만들었을 때는 동일한 지위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칭호)|정제(正帝)]]는 2명뿐이고, 나머지 2명은 [[카이사르(칭호)|부제(副帝)]]로서 정제를 보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퇴위하자마자 이 시스템이 무너진다.] 다른 3명을 제거하면 자기 혼자 권력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한 건 다른 황제들도 마찬가지였고 결국 박 터지게 싸운 것이다. 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어느 정도 진정시키지만, 공동 황제끼리의 대립은 완전히 해소할 수 없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란 직책을 [[공화국]] 시기의 [[집정관]]처럼 만들려고 할 수도 있었다. 애초에 [[임페라토르]]가 공화정 시절에는 병사들에게서 인정받은 개선 장군을 뜻하는 말이었고, 그것이 제정 시절 들어가서 군사적인 색채를 짙게 가진 '황제'를 가리키는 명사가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키케로]] 시대를 기준으로 가르치는 고전 라틴어에서는, Imperator(임페라토르)가 '황제'라는 뜻이라고 '''하지 않는다.'''] 로마의 동서 분할 시기쯤 되면, [[서로마 제국]] 황제들은 로마가 아닌 [[라벤나]]에서 거주했으며 통치도 라벤나에서 했다. 이후 라벤나는 사실상 행정적으로는 서로마의 중심이 되었으며 서로마 멸망 이후 [[고트족]]도 라벤나를 수도로 썼다. 물론 [[원로원]]은 아직 로마에 있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9f0807><tablebgcolor=#ffffff,#1c1d1f><nopad> [youtube(0-35KLqC-Us)] || 라벤나가 로마를 대신한 이유는 거의 순전히 군사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라벤나는 [[라인 강|라인]], [[도나우 강|도나우]] 국경에 훨씬 가까운 데다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어 [[지중해]] 동쪽으로 가기도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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